제목 : 믿음의 경주를 잘 하려면

성경 : 빌립보서 3:12-16
제목 : 믿음의 경주를 잘 하려면
2020. 1. 5

시인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를 끼울 구멍이 없어진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시작과 출발의 중요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2020년 한 해가 활짝 열렸습니다. 오늘 성경은 믿음생활을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2020년 새해 첫 주일 “믿음의 경주를 잘하려면”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우리를 붙잡고 있는 과거를 잊어야 한다.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기 전 그의 과거는 기억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잘못된 길로 행하였습니다. 실제로 스스로 (딤전1:13)“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15절)“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선교사가 되고, 전도자가 되어 사역을 하고 있는데, 누가 따라다니며 “당신은 살인자야!, 당신은 선교사 자격이 없어” “과거에 박해를 했으니 앞으로도 박해를 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하겠느냐?”라며 반대를 하고 욕을 한다면 전진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강한 것 같이 보여도 마음이 여립니다. 누가 욕하고, 비난하면 참 견디기 어렵습니다.
바울은 지난 과거의 모든 허물과 실수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앞만 보고 나아갔습니다. 우리 또한 믿음의 경주를 잘 하기 위해서 잊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성공한 것을 잊어야 합니다. 성공하고 잘한 것에 억매이면 안주하기 쉽고 전진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성공에 사로 잡혀 있으면 교만하기 쉽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것들이 있고, 성공한 경험이 있습니다.

과거의 삶이 오늘의 자극제가 되거나, 밑거름이 되는 것은 유익하지만, 과거 지향적이 된다거나, 과거가 오늘의 기준점이나 잣대가 되는 것은 옳지 않는 태도입니다. (전7:10)“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둘째, 실수하고, 잘못한 것을 잊어야 합니다. 과거에 잘못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전진해야합니다. “구겨진 지폐, 찢어진 지폐”라고 해서 버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장 나쁜 교육은 잘못한 것을 방치하거나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가 잠깐의 실수로 아버지 돈 얼마를 훔쳤다고 합시다. 아버지는 그것을 알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잘못에 대해 야단치지도, 그렇다고 용서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아버지 얼굴만 보아도 불안하며 죄책감에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어릴 때 가난하게 살았던 것”, “아버지가 술 먹고 집에 들어와서 가족들을 괴롭힌 것”, “친구에게 배신당한 것.”, “시험에 떨어진 것”, “사업에 실패한 것” 이와 같은 지난 과거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없습니다.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탕자는 실수와 허물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허물을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용서 해 주셨다.”란 확신입니다.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지난 과거의 성공이나, 지난날 실수나 허물에 붙잡혀 있지 말고, 믿음에 확신을 갖고 전진할 수 있길 바랍니다.

2. 목표를 정하고 소원을 갖고 달려가야 한다.
목표가 왜 중요합니까? 축구 선수들이 경기를 할 때 만약 골대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을 잘 차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 열심히 노력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를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보다 축구 경기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축구 선수들이 공을 골문에 넣었을 때 “골”(goal)이라 합니다. 축구선수들에게 “골”이란 “목표”를 말합니다. “골”이란 축구선수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내 인생에 목표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골대 없는 경기하는 같습니다.

(14절)“푯대를 향하여” 본문에 “푯대”란 목표를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비관하며, 낙심합니까?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없으면 무질서하게 되고, 삶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목표의식은 사람을 강하게 하고 확신 있게 합니다.

목표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목표와 소원을 따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빌2:13-14)“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경에도 목표를 가진 사람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의 소원은 눈을 떠는 것이었고, 솔로몬은 지혜를 얻는 것이었고, 다니엘은 그리스도인으로 잘못된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마15:28)“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소원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목표와 소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히5: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는 목표와 소원을 가지고 계셨고 그 목표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목표가 없는 사람이 참 많으며, 가졌다 해도 잘못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잘못된 목표는 사람을 망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이 아니라 목표가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목표와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 무엇을 전공해야 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을 하고자 하는 목표, 사업과 직장, 자녀가 잘 되고자 하는 소원, 아굴같이 “거짓말을 않게 해 주옵소서”“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아주 평범한 소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영적인 일, 우리 믿음의 생활에도 목표를 가져야합니다. 바울의 목표와 소원은 “그리스의 성품을 닮는 것”이었고, “자신에게 맡겨준 직분을 잘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2020년도 우리교회 목표는 (딤후3:14)“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라”로 정했습니다.
왜 배워야 합니까? 우리가 준비하지 않고 유년주일학생들에게 10분 동안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가르칠 수 있습니까? 배우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습니다. 저도 유년 주일학생들에게 15분 정도 가르치기 위해 1시간 이상 준비하고 배운 후에야 설 수 있습니다.

2020년도 우리가 가진 목표와 소원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땀 흘릴 수 있기를 바라며, 동시에 목표와 소원들이 꼭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3. 멈추지 말고 계속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바울은 누구보다 사명감에 사로잡힌 사람이었고,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많은 것을 얻고, 이룬 사람입니다. 경주로 하면 그는 이미 수없이 금메달을 딴 사람이요, 세계신기록을 수도 없이 갈아 치운 사람입니다.

바울만큼 선교여행을 한 사람이 누구며, 바울만큼 많은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울만큼 고생을 많이 하고,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고, 영웅적인 믿음의 족적을 남긴 사람이 또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나는 아직 이룬 것이 없다.”, “쫓아갔고 있다.”라고 고백하며 오히려 지금까지 이룬 업적과 행적, 승리의 순간들을 다 잊어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직 한 일, 앞에 있는 푯대만 향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달리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바울의 인생목표와 신앙의 푯대가 무엇인가 발견할 수 있으며, 그의 겸손과 열정을 배울 수가 있으며, 그에게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수능시험이나 임용고시 준비하는 분들은 아주 긴장이 되고, 합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일단 시험에 합격하여 입학을 하거나 입사를 하면 더 이상 공부하거나 노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푯대를 이미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또한 “지금까지 많이 했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이 없다.”, “이제는 편히 쉬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를 교회 출석하는 것이나, 봉사하는 것으로 정하다보면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푯대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것에 머물 수 없습니다.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그리스도의 보혈을 지나 내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며, 밖으로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복음전파의 사명을 가지고 죄와 싸워 이기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빌2:12)“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 표현은 구원받은 이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은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많이 수고하였지만 그럼에도 부족함을 느끼고 계속 달려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잘하려면 지난 과거의 일을 잊어 버려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잘하려면 소원과 푯대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는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지만 그럼에도 계속 달려가야 합니다.

바울이 믿음의 푯대로 갖고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한 것처럼 2020년 저와 여러분들도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하여 주님께서 약속하신 의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