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골로새교회를 섬긴 사람들

성경 : 골로새서 4 : 7-11
제목 : 골로새교회를 섬긴 사람들 2020. 1.19
오늘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재미있는 영화 한편을 소개하겠습니다.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아미스타드”(La Amistad), 스페인어로 된 영화로 “우정”이란 뜻입니다. 아프리카 각 지역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 56명이 1839년 6월27일, 스페인 령 쿠바 하바나 항구를 출발하였습니다.
쿠바를 떠나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노예들이 선상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아프리카 “멘더어 부족의 추장, 싱케이”가 반란을 주도 하였습니다. 추장과 부족사람들은 유럽 노예상인들의 습격을 받아 노예로 팔려온 사람들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흑인들은 모든 선원을 살해하고, 두 명만 살렸는데, 흑인 중에 항해기술을 가진 사람이 없어, 배를 항해하기 위해 살려주었습니다.
추장은 항해사에게 배를 아프리카로, 해가 뜨는 동쪽으로 가자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항해사는 흑인들은 속이고, 두 달 뒤 미국의 코네티컷 해안에 배를 정박했습니다. 순찰중인 경비정에 의해 나포되어 노예들은 다시 쇠사슬에 묶이게 되었습니다. 모든 노예들은 선상반란 및 살인죄로 기소되어 미국 뉴 헤이븐 연방 지방법원을 거쳐 연방대법원까지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무지가 얼마나 위험한가?”, “인도자가 아주 중요하다.”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020년 교회 표어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자”입니다. 무지는 자랑이 아니며, 무지는 위험한 것이며, 무지는 큰 불행을 자초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다수의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두기고, 오네시모, 마가 등이 나옵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살았지만, 한시적으로 골로새교회를 섬긴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세 사람을 택하여 그들이 어떻게 골로새교회를 섬겼는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신실한 일꾼, 두기고
바울은 두기고에 대해 (7절)“사랑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안에서 함께 종 된 자” “두기고”가 어떤 일을 하였기에 이렇게 소개하였습니까? 두기고는 바울이 로마옥중에서 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 빌레몬서를 각 교회에 전달하였으며, (16절)라오디게아교회에도 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거운 두루마리 성경을 지고 수 천 킬로미터 걸어서 전달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그레데 섬에서 목회하는 디도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두기고를 보냈으며(딛3:12) 그뿐 아니라 두기고가 소아시아교회들이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연보한 것을 전달(고전16:3)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두기고 편에 오네시모를 동행하도록 하였습니다. (9절)“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두기고는 마당발이었고 우체부 역할을 했습니다. 두기고가 한 일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행은 위험이 따랐음에도 수천 킬로가 되는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맡은 임무를 잘 감당하였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위해 이토록 힘쓰고 애쓴 두기고를 “사랑받는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 속에 있는 성도를 지칭할 때 자주 “형제자매”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곧 모친이요 형제며, 자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기고는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신실”이란, “믿음, 충성”이란 뜻으로, 두기고는 맡은 일에 충성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충성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부가 가정에서, 직장인이 직장에서,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두기고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 바울의 전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는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신앙고백입니다.
(롬14: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삶의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확신에서 나옵니다. 확실한 가치관을 갖고 있어야 확신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참된 교회와 성도는 주인 되신 주님의 기쁨이 교회와 나의 기쁨이 되어야합니다. 주인 되신 주님의 아픔과 관심이 교회와 나의 아픔이 되어야 하며, 주인 되신 주님의 사명이 교회의 자신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2. 변화된 일꾼, 오네시모
오네시모가 누구입니까? 과거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로마로 도망을 갔습니다. 도망간 오네시모는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게 되었고, 바울의 권고로 두기고와 함께 다시 빌레몬에게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바울은 비록 오네시모가 새 사람이 되었지만, 그가 빌레몬의 돈을 훔쳐 도망친 지난 과거를 모르는 척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돌려보내 용서해 줄 것을 간절히 요청한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결자해지”란 말이 있는데, 당사자가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종종 싸웁니다. 그런데 싸운 아이들은 도망가고 없는데, 엄마들이 나서서 “누가 잘했느냐?”라고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 줄 것을 부탁하였지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주는 몫은 빌레몬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은 비록 잘못이 없거나 적다고 해도 기꺼이 용서를 구하고, 또한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맥아더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아들이 되게 하옵시며, 또한 용서할 줄 아는 아들을 주옵소서!”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옥중에 갇힌 자가 갇히지 않은 자를 위해 이토록 탄원하였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씻어주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용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오네시모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몸1:8)“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담대하게 마땅한 일로 명령할 수 있으나” 바울은 빌레몬에게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자원된 마음으로 해결하길 원했습니다. (몬14절)“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 하노니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않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원된 마음이 명령과 지시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강제적인 것은 외부귀인이라 하며, 자율적인을 것을 내부귀인이라 합니다. 강제적인 것은 순간 강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약하지만, 내부귀인 즉 자율성은 명령보다 강하게 나타납니다.
(창29: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 동안 머슴살이를 할 때에 라헬을 사랑하므로, 7년을 수일같이 여겼습니다. 사랑의 수고는 7년을 수일 같이 여길 정도로 강력합니다.
과거 저의 집 아이들이 꼭 확인하는 말이 있습니다. “명령입니까? 부탁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자원된 마음으로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벧전 5:2)“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여러분! 부모나, 아내, 남편 눈치 때문에 교회 나옵니까? 누구 때문에 교회 출석하고, 체면 때문에 봉사하고, 억지로 인사하고, 억지로 웃습니까? 억지로 하는 것보다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일을 자원된 마음으로 할 때 기쁘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몬1:11)“저가 전에는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한자” 했습니다. 어떻게 무익한 자가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마태와 삭개오를 변화 시켰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변화 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자녀와 아내와 남편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십니다.
3. 유익한자가 된 요한 마가
마가의 이름은 사도행전에서 12장 12절에 처음 등장합니다. 요한은 히브리 이름이며, 마가는 로마식 이름입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의 집은 유명한 “마가의 다락방”으로 오순절 때에 성령이 강림하신 곳이며, 사도와 성도들이 자주 모여 기도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난 앞에 도망쳤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을 때에 모든 제자들이 도망갔다고 기록했으며, 또한 자신도 도망쳤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마가는 선교사역하는 가운데 도중하차를 했습니다.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1차 전도여행에 동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중에서 되돌아왔습니다. 이로 인해 2차 전도여행 때에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다투며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마가는 자신이 사역현장을 떠남으로 두 선교사가 서로 다투고, 헤어지지는 아픔을 겪게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뼈아픈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은 실패한 자들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도 예외가 아닙니다. 마가가 실패를 딛고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마가의 첫번째 지도자는 바나바입니다. 마가가 선교여행 중 도중하차를 했을 때 바울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바나바는 2차 선교 여행 때 한 번 더 기회를 더 주었습니다.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동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입니다. (딤후4:11)“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바울은 옥중에서 마가를 “나의 일에 유익한 자”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보고 두려워 도망갔던 마가, 전도 여행에 포기한 마가였지만,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로마인을 위해 마가복음을 쓰며, 바울의 뒤를 이어 로마인을 위한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한자에 사람인(人)자를 보면, 혼자서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곁에서 받쳐 주지 않으면 넘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사람이 싫어요!” 라는 것보다 이기적인 말이 없습니다.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몸으로 골로새교회를 섬긴 두기고,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오네시모, 두 번이나 실수한 마가였지만, 새 사람이 되었고, 골로새교회 사역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는 분입니다. 2020년 새해에는 충성된 자로, 삶이 변화된 자로, 그리고 유익한 자로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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