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인 없는 마음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성경 : 누가복음 11:21-26
제목 : 주인 없는 마음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
2019.12.29

2019년이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지난 1년을 뒤돌아볼 때 후회되는 일도, 보람된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잊고 싶은 일들이 있는가하면, 또한 기억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주께서 빈집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마음이 악에게 침노 당하지 않도록 비유하신 말씀입니다. “주인 없는 마음보다 위험한 것은 없다.”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주인 없는 마음보다 위험한 것이 없다.
본문 주님께서 빈집의 비유를 통해 빈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교훈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출타나 여행을 마친 후 집으로 왔을 때 집안에는 먼지는 기본, 거미줄이나 벌레들까지 집안에 들어 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보다 도둑이 들어온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악한 귀신이 들려, 그 귀신 하나를 쫓아냈는데, 얼마 후 나간 귀신이 일곱 귀신을 데리고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악한 귀신이 나간 후 마음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빈 마음, 주인 없는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교훈해 주셨습니다.

고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은 진공상태를 싫어한다.”란 말을 하였습니다. 밭에 아무 것도 심지 않고, 그냥 비워 두면 잡초로 무성하게 되듯, 사람의 마음 또한 그대로 두면 흰 종이처럼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잡다한 것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즉, 마음은 비워두면 나쁜 것으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을 비우는 일에 집중합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비워야 하는 것들이 무려 108가지나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시기와 욕심, 원망 등 108가지나 되는 많은 욕심과 욕망들을 제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령 수행을 통해 마음을 비웠다고 해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비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주인이 없을 때 악한 영들이 자신의 처소로 만들려고 합니다. (24절)“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우리의 마음에 주인이 없을 때, 악한 영들의 놀이터가 될 수밖에 없으며, 악의 도구로 사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들렸습니다. (엡3:17)“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며…”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18개월 사역한 교회였고, 성도들 역시 초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까? 죄와 욕심, 유혹 등, 강력한 세력들이 우리의 마음을 침노해 올 때에 스스로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기가 쉽지 않는 것은 마음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는 몇 개 키로 수많은 것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한꺼번에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단히 바꾸지 못합니다. 기독교의 교부였던 어거스틴은 마음을 바꾸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주인으로 섬긴 마니교보다 더 강한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결국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집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집니다. 왕이 살면 왕궁이라 부릅니다. 무당이 살면 무당집이고, 귀신이 살면 귀신의 집이 됩니다. 반면 그 사람의 마음에 성령이 계실 때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고전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여러분! 사탄은 주인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먼저 공격합니다. 우리가 사탄의 유혹과 공격으로부터 이기려면 항상 기도와 말씀으로 채워야 하며, 성령으로 채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주인으로 계실 때보다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주인임을 다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마음보다 위험한 것이 없다.
(23절)“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주님은 미온적인 태도를 경계하셨습니다. 집을 청소하고 수리하는 한 이후에 그 집을 비워두지 말고, 새 것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에 묶여 있지 말고 “하라”의 삶으로 전환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은혜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시작일 뿐입니다. 은혜 받았으니 이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가 아닙니다. 은혜를 받은 후에 새로운 것으로 채우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채우는 종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채우라고 교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진리로 채우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지점장이 본사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습니다. “지난 해 적자를 내지 않았습니다. 어떤 지점은 -10% 적자가 났고, 또 문을 닫았는데, 저의 지점은 지금같이 어려울 때 적자내지 않고 운영하였습니다.”라고 했다면 본부에서 칭찬할 것 같습니까? 본부는 적자를 내지 않은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 보다 내가 무엇을 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교육할 때 “하지 말라”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을”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거짓말을 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말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낳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자녀는 집에서 주는 밥 먹고, 학교에 갔다 오는 것만으로 만족할 부모는 없습니다.

우리가 매주일 결석하지 않고 출석하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 혼자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와 아직 복음을 받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리세인의 실패는 소극적 것에서 출발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지 말라 강조했지만, 결국 외식과 위선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맥카트니 박사가 쓴 책, “마귀가 사용하는 7가지 책략”에 소개 된 글입니다. 누구나 하는 것을 내가 했다고 큰 죄가 되는가? 아직 기회가 있는데 지금부터 믿음생활 잘할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아주 사소한 것인데, 양심에 가책을 가질 필요가 없어? 이번이 처음이니까, 괜찮아!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문제없겠지? 여섯째,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조금 잘못된 방법이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기회임이 틀림없어!

주님께서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책망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것에 대한 책망이며, 열 처녀 비유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들과 지혜 있는 다섯 처녀의 차이점은 “기름을 준지 하지 않은 사소한 차이”입니다.

마라톤 선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경쟁자도 아니며, 더위도 아니며, 신발 안에 들어 있는 작은 모래 알갱이라고 합니다. “내일 하지” 미루는 마음, “이 정도는”소극적인 태도는 전부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미루지 말고 바르게 잘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방치한 마음보다 위험한 것이 없다.
성경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마음을 “사랑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라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입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방치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길거리에 방치된 차량이나 쓰레기를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잡초와 가시로 덮여진 방치된 밭은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방치된 밭에는 식물이 자라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 또한 무관심하게 버려두면 땅과 같이 황폐하게 되며, 악한 생각과 허망한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사람의 마음은 5분만 방치하면 악을 만드는 공장이 되고 만다.”라고 했습니다.

청소하고 수리한 후에 사람이 살지 않고, 방치된 집은 더욱 파괴적이었습니다.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모든 분들에게 해당되지 않지만, 혹 온 가족이 즐거운 휴가를 보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회사로 돌아옵니다. 그러면 모든 가족이 얼마만이라도 기분이 좋고, 즐거움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토록 즐겁고 기분 좋았던 것도 잠깐 집에 돌아오기 전에 부부싸움을 하거나 가족 중 기분이 상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혼한 기쁨, 성공한 기쁨, 믿음 충만한 상태 등, 기분 좋은 마음, 즐거운 마음을 순간 가졌다고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 두면, 더 악화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방치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4장,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그러합니다.
옳고 그릇된 것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 38년 된 병자가 그러하며, 누가복음 15장 탕자가 그러하며, 5천명의 무리들이 그러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은 정욕에 방치되었고, 38년 된 병자는 질병에 방치되었고, 그리고 5천명 무리들은 형식적인 종교와 가난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마음에 주인을 찾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주인이 없는 것보다 공허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집이 미온적일 때 세상의 유혹과 욕심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으며, 그리고 우리 마음이 방치 될 때 세상의 온갖 잡다한 것들에 의해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21절)“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우리 마음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강한 것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이 우리 마음에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세상의 유혹과 적들로부터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기꺼이 내어 드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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