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성경 : 빌립보서 2 : 5-11
제목 :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2019.12.22.

기독교는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나,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가운데 신비 중의 신비는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인 어린아기로 오신 사건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가장 비천하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씀은 (사7:14,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본문(7절)“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심오한 하나님의 계획을 사람이 이해한다는 것이 무리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그 결과 베들레헴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구간으로 내 좇고 말았습니다. 인류의 구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이 그를 처음 맞이한 곳이 고작 마구간이었습니다. 요한은(요1: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당시 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셨지만, 나사렛에서 약 30년 정도 사셨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의 제 2의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기대와 전혀 달랐습니다. (막6: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마리아의 아들 목수”란 예수님의 직업과 가족관계를 무시한 표현으로, 나사렛 동네사람들은 예수님의 직업과 가족 관계를 조롱하며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가장 약한 모습인 어린아기로 오셨습니까? 어린아기는 사람 중에 가장 연약한 모습인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천사가 나타났을 때나 혹 하나님이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무서워했습니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천사가 나타났을 때 무서워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양 치던 목자들도 모두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기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기로 오신 것은 범죄한 인간이 주님께 가장 나아오기 쉽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오셨습니까? 기독교의 귀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왕이나 황제로 오셨다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나, 세리나 죄인들, 그리고 12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또한 주님을 만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님은 약한 자, 가난한 자, 죄를 짓고 어찌할지 모르는 자들이 찾아오기 쉽도록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2.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성경에서 종종 큰 사건과 변화는 아기가 탄생되는 것으로 시작되곤 합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이삭이 탄생된 것이나, 출애굽 때 모세가 탄생된 것, 이스라엘 국가 형성기에 사무엘이 태어난 것,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출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겠다는 표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마1:21)“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성탄절을 기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비교할 때, 마치 사람이 산에 오르는 것으로 비유하곤 합니다.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지만 모두 정상에서 만나는 것처럼, 모든 종교 또한 가는 길이 다르지만 만나는 곳은 똑같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틀린 말입니다.

불교계 학자이며, 승려인 동국대 윤호진교수가 “불교가 본 기독교”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에서 당연할지라도 불교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신의 존재는 당연하지만, 불교인들은 신의 존재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불교인들에게는 신의 존재가 없으며, 불교는 스스로 신의 경지에 오르는 종교입니다.”

불교계의 대학자가 불교는 신을 인정하는 종교가 아니며, 불교인들은 절대자 신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스스로 신이 되고자 노력하고 수행하는 종교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종교와 기독교를 같은 종교라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기독교가 오르고 있는 산과 불교가 오르고 있는 산이 분명 다르다고 불교학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종교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 얻는 종교”와 “은혜로 구원 얻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선을 쌓아야 된다고 가르치며, 회교는 매일 5차례 이상 기도, 자선, 일생에 한 번씩 성지를 순례해야 구원을 받는 다고 가르칩니다.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다 배가 침몰되었을 때 누가 누구를 구해 줄 수 있겠습니까? “타이타닉”호가 침몰되었을 때 밖에서 구조선이 와서 1.500여명을 구조되었습니다. 배 안에 탄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을 구조해 주지 못했습니다.

(행4: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우리가 사람들이 듣기 좋도록 “아무 것이나 믿어도 상관없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오신 성탄에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3.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큰 보배입니다.
한국의 경찰청에서 돈을 보관하면 안 되는 5곳을 발표 했습니다. “침대 밑, 화장대, 세탁실, 스랍 장 그리고 액자 뒤편” 옛날 은행이 없을 때나, 많지 않을 때 사람들은 돈이나 귀중품을 보관할 때는 “땅속”에 보관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물은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보물이 쉽게 보이는 곳에 있다면 힘세고, 약삭빠른 사람이 먼저 취할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유용한 것들, 보배라고 생각되는 것은 죄다 깊이 숨겨놓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전기, 기름, 에너지는 모두 땅속 깊숙한 곳에 있던 것들입니다.

(벧전2: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예수님은 보배 중 보배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보배이신 줄 몰랐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최대의 보화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빌3:8)“내가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 바울은 뒤늦게 예수님이 보화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인생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 고민하다 절에도 가보고, 무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점쟁이에게 점을 치며, 해답을 찾기 위해 10년 20년을 방황하는 가운데, 비로소 주님을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존 뉴턴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죽게 되었을 때, 주님을 발견하였습니다.

반면, 모태신앙으로, 부모와 함께 신앙하는 중 주님을 만나거나, 레위는 세관에서 일을 하다가 주님을 만났고, 삭개오는 주님께서 “삭개오야! 라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최초선교사로 순교한 토마스 목사님을 죽인 박춘권씨는 토마스 목사님이 전해 준 성경을 읽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보배 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발견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보배 되신 예수님을 어렵게 만났다고 해서 억울한 일도 아니며, 쉽게 만났다고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모든 재산이며, 최고의 보배입니다.

“Miller”여사는 찬송가 “예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라고 찬양했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주 예수보다 더 귀한 분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라고 노래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비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비천한 저와 여러분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가장 소중한 분은 지금도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높여 주신 주님,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
우리의 보배 되신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성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