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구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

성경 : 마태복음 2 : 1-12
제목 : 구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
2019.12.25 [ 마드리드 교회 성탄 연합예배 설교 ]

Feliz Navidad, 성탄의 기쁨과 평강이 여러분과 가정에 넘치길 기원합니다. 본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시대적인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구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에”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구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 온 세상이 소동하였습니다. (3절)
유대의 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가 출생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특히 당시 최고지식층인 동방의 박사들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가지고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까지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사람들은 “도대체 그 아기가 누구이기에 지체 높은 박사들이 경배하러 왔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크게 소동했습니다. (3절)“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소동”이란 “뒤흔들리다. 흥분하다.”란 뜻입니다. “특히 헤롯은 내가 왕인데!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고! 이게 무슨 소리냐?” 헤롯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은 B.C 587년 바벨론에 패망한 이후에 메데 바사, 알렉산더와 로마에 의해 차례로 약 600년간 지배를 받았습니다. 오래 동안 로마지배를 받던 유대인들에게 “새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보다 흥분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새 왕이 과연 우리 민족을 해방 시켜 줄 것일까?”“이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인가?”소동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 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헤롯은 최악의 수단으로 두 살 아래 모든 사내들을 죽였습니다. (16절)“헤롯이 심히 노하여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최초의 성탄은 기쁜 성탄, “메리 크리스마스”가 이 아니었습니다. 살육과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일어났습니까? 당황한 헤롯이 (4절)“왕이 모든 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5절)“유대 베들레헴”이라 답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시험문제를 가르쳐 주는 것과 같았으며, 흥분되어 있는 헤롯에게 기름을 붓는 것과 같았습니다.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헤롯에게 예수님의 출생 장소를 알려 주자, 헤롯은 두 살 아래 어린아기들을 죽이게 한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정보를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악의 도구, 즉 권력자의 체제를 강화해 주는데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명예와 지위, 돈에 눈먼 종교인들, 지식인들이 헤롯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렵게 배우고 습득한 경험과 지식, 재물, 재능을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재능을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과 소유,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오신 성탄에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축복, 능력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구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 사람들은 구주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경찰청에서 돈을 보관하면 안 되는 5곳을 발표 했습니다. “침대 밑, 화장대, 세탁실, 스랍 장 그리고 액자 뒤편” 옛날 은행이 없을 때나, 많지 않을 때 사람들은 돈이나 귀중품을 보관할 때는 “땅속”에 보관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보물은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유용한 것들, 보배라고 생각되는 것은 죄다 깊이 숨겨놓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전기, 기름, 에너지는 모두 땅속 깊숙한 곳에 있던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보배 중 보배입니다. (벧전2: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요한은 보배 되신 구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1: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누가 또한 (눅2:7)“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 이것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몰인정하고 냉정했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주를 맞이한 곳이 고작 마구간이었습니다. 또한 임산부가 해산할 장소조차 얻지 못하여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아야 만큼 세상이 몰인정했습니다. 요즘도 성탄 카드에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볼 수 있는데, 구유는 그렇게 낭만의 장소가 아닙니다.

오늘의 성탄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성탄은 특수를 누리는 절기며, 먹고 마시고 즐기는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로이 스미스”는 “자신의 마음속에 크리스마스가 없는 사람은 결코 나무 밑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의 성탄절은 산타클로스나 선물이 주인공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마1:21)“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우리는 적어도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성탄절을 기뻐해야 합니다.

미국사람들은 “1세기에서 20세기까지 2천년 동안 이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사건은 “1969년 7월21일11시56분 20초에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착륙한 사건”이라고 답했습니다. 미국 대통령도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위대한 순간은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명한 전도자 빌리그레함 목사님은 이 말을 바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인간이 달나라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이 이 땅위에 사람으로 오신 그 순간이다”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감추인 보화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오신 성탄에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 되길 바랍니다.

3. 구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 경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2절)
(11절)“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이 성경구절을 근거로 지금껏 수많은 화가들이 “동방박사들의 경배”란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루벤스, 안젤리코, 지오토, 벨라스케스, 뒤러 그리고 렘브란트 등, 내 노라 하는 유명화가들이 앞 다투어 동방박사들의 경배라는 명작을 남겼습니다.
작품의 공통점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값비싼 황금과 유황과 몰약보다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학자들은 동방의 박사들이 베들레헴까지 약 800Km를 3개월 동안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멀고 험한 길을 무릅쓰고 온 것은 구주께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위에서 오신 주님께 경배하는 날이란 사실입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은 헤롯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예루살렘 백성들처럼 예수를 잃어 버린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과 같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