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빵, 숟가락과 젓가락, 나이프와 포크

밥과 빵, 숟가락과 젓가락, 나이프와 포크

역사학자들 가운데 세계의 문명을 나눌 때에 식사법으로 나누는 경우가 있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권,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는 문화권, 그리고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권이다. 사람은 누구나 매일, 그것도 하루에 세 번 삼시 세끼를 위해 식탁에 앉을 때마다 반드시 대면하는 것이 있다. 동서양을 망라해서 밥과 빵,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이다.

따뜻한 밥이 만든 정서와 차가운 빵이 만든 정서

쌀은 한국민족의 오랜 친구이자 식생활의 주식이었다. 그런데 요즘 신세대들은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한다. 햄버거와 피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들 때문에 집집마다 쌀독이 줄지 않는다. 쌀은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 3대 곡물로, 전 세계 쌀 생산량의 90%가 아시아에서 생산된다. 그에 비해 유럽에서 쌀이 생산되는 곳은 이탈리아의 룸바디 지방과 스페인의 발렌시아 지역 두 곳 정도뿐이다. 밥과 빵의 차이는 외형적인 면에서 쌀과 밀, 보리라는 재료의 차이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많은 차이를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우선 빵은 슈퍼마켓이나 빵집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가족 중 누구라도 사서 먹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밥은 만드는 과정부터 다르다. 밥은 타이밍이 중요한 음식이다. 밥은 때마다 따뜻하게 해서 먹는 음식이다. 요즘은 보온밥통이 있긴 하지만, 과거에는 어머니와 아내가 매일 정성스럽게 지어주는 밥을 먹고 등교하거나 출근했다. 한국여성들은 가족에 대한 마음이 남달랐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여성들이 아무리 가족을 사랑한다고 해도 한국여성들과 같이 하루에 두, 세 번씩 따뜻한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밥과 빵의 개념도 같지 않다. 일반적으로 “빵은 만드는 것”이지만, 그에 비해 “밥은 짓는다.”라고 한다. “짓다.”라는 말은 “집을 짓다.”, “시를 짓다.”라고 하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작업을 뜻한다. 한국인들은 밥은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지었다.

빵과 밥은 동서양인의 감성과 체질까지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지 모르겠다. 단순히 식생활의 차이 때문만은 아닐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따뜻하고 정성이 담긴 밥을 먹는 한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차갑고 딱딱한 빵을 먹는 유럽인들보다 더 인정이 많고 감성적인 것이 사실이다. 반면 차갑고 딱딱한 빵을 먹는 유럽인들은 따뜻한 밥을 먹는 한국인들보다 성격이 더 딱딱하거나 차가운 편이다. 음식과 성격, 식생활과 습성이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정이 많은 사람은 딱딱한 빵으로, 성격이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사람은 빵 대신 어머니와 아내의 사랑이 듬뿍 담긴 따뜻한 밥으로 식생활을 바꾼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국을 위한 숟가락과 저린 음식을 위한 젓가락

한국에서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남의 권한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취하려 할 때에 쓰는 말이다. 또한 “우리 집에 숟가락이 넷이다.”라고 말하면, 식구가 넷이란 뜻으로, 숟가락은 식구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처럼 숟가락은 생활 속에서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모두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숟가락을 동시에 사용한다. 세 나라가 서로 닮은 듯 보이나 결코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숟가락이다. 그것은 탄수화물인 밥을 먹으려면 국물이 필요했고, 밥과 국물 두 가지를 동시에 먹는 데는 숟가락보다 유용한 것이 없었다. 또한 김치와 젓갈류를 먹는데 젓가락보다 편리한 도구는 없다. 한국에서만 숟가락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대체로 한국인의 밥상에는 국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국을 먹지만 손으로 국그릇을 들고 입을 대어 마시므로 숟가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인의 밥상 메뉴는 대체로 숟가락을 필요로 하는 음식이 많은 편이다.

미역국, 된장국, 해장국 등이나 찌개류나 고기와 함께 먹는 설렁탕, 곰탕 등도 숟가락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숟가락을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에 과식은 물론 국물에 녹아있는 소금과 지방을 많이 먹게 되는 단점이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일본은 일찍부터 식탁에서 숟가락을 없애 버렸다. 아시아 계통에서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젓가락도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나무젓가락은 굵고 두툼하며, 길게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일본은 생선이나 초밥 등 먹기 용의하도록 나무젓가락이 짧고 끝이 뾰족한 특징이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짧고 가는 쇠 젓가락을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예로부터 쇠 젓가락을 사용해 왔기에 섬세한 기술과 함께 식사 예절 교육이 이루어져 왔다. 젓가락질을 할 때 입에 넣고 씹거나, 젓가락으로 그릇을 치지 못하게 하였고, 식사 후 젓가락을 X자로 엇갈려 놓지 못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가지런히 놓도록 하였다. 또한 찬을 집을 때 젓가락질을 두세 번하거나 집고서 털지 못하게 했다. 과거 대부분의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과 달리 다섯, 여섯 살 정도면 젓가락으로 콩자반도 집어먹을 수 있고, 조금 나이가 들면 새우 젓갈의 눈알(?)까지 빼어먹을 수 있는 실력을 가지게 된다. 젓가락이 가늘고 짧다는 것은 그 만큼 손가락이 섬세하고 정교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바로 한국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손재간이 남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개성대로 먹는 나이프와 독립적으로 먹는 포크

유럽에서 나이프가 언제, 어떤 이유로 식사 도구로 사용되었는지 그 역사를 모른다고 해도 나이프를 통해 유럽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다소 읽을 수 있다. 기사(騎士)들이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었던 중세기부터 식사 중 나이프를 사용하는데 주의 사항이 많았던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식사예법 가운데 “식사 중 나이프의 끝을 상대방의 얼굴로 향하게 잡지 말라”고 했는가 하면 “나이프는 항상 손에 잡고 있지 말고 사용할 때만 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럽인들은 무기(武器)로 식사를 하는 야만인들이다.”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고기가 주식인 유럽인들에게 나이프와 포크보다 더 적합한 식사도구는 없었다.

동서양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식사도구들 또한 밥과 빵과 함께 서로 다른 특징과 사고의 차이를 가져오게 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숟가락과 젓가락은 이미 밥상 위에 있는 음식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집어먹을 수는 있어도 내가 원하는 대로 자르거나 크기를 변형시킬 수는 없다. 본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이미 처음부터 부엌이나 음식점에서 규격화되어 나오기 때문에 집어먹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에 숟가락과 젓가락은 음식을 어떻게 먹을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다만 얼마나 먹을까만 생각하면 된다.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 가운데 획일적인 것이라든지, 평준화 의식은 한국인의 식사방법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반면 유럽의 식사는 처음부터 생선이나 고기류가 덩어리 채로 나오기에 나이프와 포크를 필요로 한다. 통째로 나온 고기를 크게도 혹 작게도 자기 취향과 개성대로 먹을 수 있다. 식사방법의 차이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기술의 차이만이 아니고 라이프 스타일에까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의 구조는 이미 차려진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되듯이 업무방식에서도 개인의 개성이나 창의력이 우선되기보다 조직이나 상부에서 정해진 방식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유럽은 음식문화에서 볼 수 있듯이 조직사회에서 업무나 행동양식에서도 개인의 취향과 독립성이 존중되고 있다.

밥과 빵, 젓가락과 숟가락, 포크와 나이프는 재료와 음식을 먹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지속적으로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서 행동양식과 습관, 나아가 개인의 사고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한국에서 식사법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밥을 중심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식사한다. 그런데 유럽에 살면서 식사방법이 다양해 졌다. 밥과 빵,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나이프와 포크 모두를 사용한다. 식사 방법과 상관이 있는지 몰라도 유럽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대체로 한국적인 사고방식과 유럽인의 사고방식을 동시에 갖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