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

성경 : 누가복음 2 : 25-32   제: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

  1. 12. 1

한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빨리 베스트 10” 뽑은 적이 있었습니다. 1)커피 자판기에서 손을 집어넣어 컵 잡고 기다리기. 3)화장실 들어가기 전부터 지퍼 미리 내리기. 4)삼겹살이 다 익기도 전에 먹기. 5)엘리베이터에서 2초도 못 참고 “닫힘” 버튼 누르기. 6)3분 기다려야 하는 컵 라면 3분도 되기 전에 뚜껑 열기. 9)웹 페이지가 3초안에 안 열리면 닫아버리기. 10.편의점에서 음료수를 구매한 뒤 먼저 마시고 계산하기.

교회력에서 오늘부터 성탄절 전까지 4주간을 “대림절”“대강절”이라고 합니다. 대림절이란 주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참 된 의미를 깨닫는데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 시므온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린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오심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시므온은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구약성경에 흐르는 사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메시야의 약속”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 많은 선지자들이 다윗의 혈통을 통해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또한 메시야는 베들레헴에, 유대인의 왕으로 오실 것까지 구체적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시므온은 선지자들의 약속을 믿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25절)“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시므온은 구약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올 것”이란 약속을 믿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이란 이름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라는 뜻인데, 그의 이름과 같이, 그는 메시야를 기다린 결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믿음의 사람들은 기다리는 시간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며 약속을 이루었고,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을 먹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었습니다.

 

야고보는 (약5:7)“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부는 씨앗이 땅에 심겨지는 순간부터 열매를 맺기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농부는 기다리는 동안 손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를 잉태한 산모는 아이가 출산할 때까지 10개월을 기다립니다. 산모가 아기를 기다리는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습니다. 남편은 열심히 일합니다. 온 가족이 기쁨으로 양보합니다. 이것은 출산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자라게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기다리는 시간은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탐스러운 과일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기다림의 결과입니다. 지금 곁에 있는 자녀는 부모가 잘 먹이고, 잘 입혔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기다림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기다림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약속과 소망이 담겨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약속을 믿고, 소망한 바를 끝까지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안나 할머니가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구약 마지막인 말라기 선지자 이후부터 세례요한이 나타나기까지 400년을 “신구약 중간기” 혹은 “암흑기”라 부릅니다. 400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백성들에게 전혀 들려지지 않았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며, 방종하였습니다.

 

(말1:6)“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400년 후 세례요한은 (마3:7-9)“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메시야를 기다리지도 않았고, 그 결과 방종하며 타락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안나”할머니는 결혼 후 7년 만에 남편을 사별하고, 84년을 홀로 살아왔습니다. 안나 할머니의 연세는 14살에 결혼을 했다면 105세 쯤 되는 셈입니다. (2:36-37)“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지 팔 십 사 년이라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안나 할머니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 때문에 84년이란 긴 세월을 하루같이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안나 할머니 소망하였던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안나 할머니는 요셉과 마리아가 어린아기, 예수를 성전으로 데려갔을 때 만날 수 있었습니다.

 

84년 만에 이루어진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84년 동안 한결같이 성전을 떠나지 않고 메시야를 만나길 바랐던 안나 할머니의 소망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안나 할머니는 곧바로 그가 본 바를 전했습니다.

 

기다림은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아픈 것이며, 기다림은 터널과 같은 어둠을 통과해야 하기에 힘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기다림의 끝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붙잡고, 소망을 갖고 준비하면 반드시 약속과 소망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로마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찾아가는 곳은 원형극장 콜로세움과 지하무덤 카타콤입니다. 이곳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 때문에 맹수와 싸운 곳이며, 지하 무덤은 기쁨으로 예배드렸던 곳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확신해 차 있었던 것은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기다리는 시간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소망”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기다림 속에서 내일을 바라보며, 그 기다림 속에서 오늘의 어려운 고통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이 없어질 때 그것을 우리는 “절망”이라고 합니다. 왜 쉽게 낙담하며, 기다리지 못합니까? “소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기다리고 소망해야 할 것은 다시 오실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줄 날을 소망하면서 오늘에 당하는 아픔과 고난을 견디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 시므온은 주님을 만나고,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눅2:29-32)“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시므온의 찬송(Nunc dimittis)”(눈크 디미티스)라는 찬송입니다. “주재여! 놓아주시는 도다.”는 우리말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로, 시므온은 구원자이신 예수를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종종 “나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거나, 뜻을 다 이루지 못했을 때, 예상치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에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하며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했다.”, “나의 모든 소원을 다 이루었다.” “그 동안 참으로 행복했다.”“나는 큰 복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말입니다.

 

시므온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시므온으로 하여금 이런 고백하며 찬송하게 했습니까? (30절)“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이것이 바로 시므온이 죽음 앞에 담대히 설뿐 아니라, 찬송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화가 렘브란트는 누가복음에 있는 시므온의 찬송을 그가 죽던 해인 1669년에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렘브란트는 이마에 깊은 주름과 흰 수염을 가진 노인, 시므온이 어린아기 예수를 품안에 안은 그림은 바로 렘브란트 자신도 “이제 주님을 모시고 평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는 신앙고백적인 그림입니다.

 

시므온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믿음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시므온은 약속을 믿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은 예수그리스도가 구원자라는 사실을 확신하므로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도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날을 위해 시므온, 안나 할머니와 같이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고난과 역경이 온다고 해도 낙심치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서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보전해 주신다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죽음 앞에서도 담대해 설수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무엇을 기다리는 시간은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진학을 하려면 그냥 나이를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부지런히 놀지 않고 학업을 준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운동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은 단순히 올림픽 날짜가 오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훈련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참고 기다렸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까? 지금까지 땀 흘렸는데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기다리는 것에 대해 무엇을 준비했으며, 얼마만큼 준비했는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 얼마나 기도했으며, 순종했는가?”

 

(갈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낙심하지 말고 잘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