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여호와께 찬양하고 감사하라.

성경 : 시편 105 : 1-4

제목 : 여호와께 찬양하고 감사하라.

  1. 11.17(추수감사)

성경 중에 가장 사랑을 받는 책이 있다면 시편일 것입니다. 시편은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 되고 있는 책으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에 수록된 150편은 창조로부터 족장시대, 율법시대와 왕정시대 그리고 포로이전과 이후까지, 구약의 전 과정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시편 절반 정도 73편이 다윗이 지은 시 입니다. 고라 자손의 시가 11편이며, 아삽이 12편), 솔로몬이 2편, 에단 1편, 모세가 1편(90) 그리고 작자 미상이 50편입니다. 오늘은 “여호와께 찬양하고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은혜 받겠습니다.

 

  1. 시편은 우리에게 기도와 찬양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시편의 대부분 기도로 채워져 있는데 150편 중 약 50여 편이 애가입니다. “애가”란 슬픔의 기도를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삶이 힘들고, 아파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권에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2권은 출애굽에서 그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제 3권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제 4권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5권은 바벨론 포로가운데서 하나님의 능하신 역사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찬양과 기도는 분리될 수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곡이 있고, 없는 차이일 뿐입니다. 구약 백성들은 모두 기도를 할 때 음운을 넣어서 기도하였습니다. 시편의 대부분은 기도를 동반한 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보면, 찬송으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을 맺거나, 찬양으로 시작하여 찬양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배 중에 얼마나 찬송을 많이 부르는가를 조사를 했는데, 대개 20분 정도를 부른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여러분 대중가요는 보통 2절 정도만 부릅니다. 그런데 찬송가는 기본이 4절입니다. 좀 더 많으면 6절까지도 있습니다. 옛날 부흥 성가는 무려 10절까지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에만 해도 645장이 실려 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서 부록을 만들고, 또 모자라 복음성가 1000곡, 2000곡을 구입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교회생활 중에 찬송을 많이 부릅니다. 기도한 후에 찬양하고, 찬양한 후에 기도합니다. 설교하기 전에 부르고, 설교 후에 부릅니다. 교회에 왔다고 기도하고 집에 간다고 기도합니다.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찬양하는 것입니까? 졸리니까? 잠 좀 깨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모든 예배 순서는 뜻이 있습니다. 왜 찬양 합니까? 찬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찬양”은 기쁨의 표현입니다. 은혜 받은 자의 마음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기쁨의 표현이 찬양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믿음의 열매이며, 은혜의 열매입니다.

 

찬양에 관한 언급이 신약에 약 48회, 구약에 351회 400회 정도 나옵니다. 그런데 찬양의 대상은 단 한 곳도 예외 없이 모두 “하나님”“여호와께” 고정시키고 있습니다. 즉, 찬송을 들으시고, 받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를 향해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이나 찬미는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찬양이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것인지, 나의 감정의 조절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또한 찬송이 예배 시간 맞추기 위해서 준비로 부르는 것도 더욱 아닙니다. 우리는 기쁨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기억하며 항상 찬송하며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시편은 우리에게 예배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시편은 구약 성도들이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에 사용하였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란 표제가 있습니다. 시편 120-134편입니다. 성전에 예배하러 올라가면서 불렀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갈망한 나머지 “몸이 쇠약해 졌다” 이것은 “상사병이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시편84:1-3)“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셀라)”

 

우리는 얼마나 예배를 사모하며, 주께 나오길 갈망합니까? 시편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했는데, 이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지금 우리가 몸과 마음, 시간과 정성 달란트를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말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굿하는 것을 구경해 왔습니다. 그런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교회에 와서도 예배 보러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배는 즐겁게 받으셨지만,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보러오거나 구경하거나 더욱이 판단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롬12:1)“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거룩”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만 들어도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면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 정도로 생각합니다.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부분적입니다.

 

거룩이란 구별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것을“거룩하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것이 거룩이며 우리 몸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곧 영적인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라고 했을 때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도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제사는 제물을 죽여 드렸습니다. 바울이 말한 산제사, 영적인 제사란 “내 안에 살아 있는 정욕, 교만, 불의를 죽이는 것”을 뜻합니다.

 

신약적인 참된 예배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예배 시간을 통해 내 자아가 죽고 주님이 내 삶을 주관하도록 하는 시간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 밖에서 우리 삶을 통해 드리는 예배입니다. 직장과 가정, 대인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자녀와 제자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당 안에서 드리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 모든 삶이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시편은 우리에게 감사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시편의 대 주제는 감사입니다. 감사하라는 말씀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감사하기를 원한다.”가 아니라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명령한 것이 모자라 또 “감사하라”고 명령하시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명령법”을 사용하여 감사를 요청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감사는 자연적으로나 권유로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하나님은 감사를 통해 주실 은혜와 축복이 있기 때문이며, 그리고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 좋은 일을 당할 때 감사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아! 좋은 일이 있으니까? 내가 한턱내겠다.”라고 합니다.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일과 기쁜 일, 작은 일에서 부터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현대는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부자 청년과 같이 내가 땀 흘려 노력하여 내 힘으로 얻은 열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없습니다.

 

둘째, 평범한 일에도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밥을 먹고, 일하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매주일 두 다리로 걸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합병원에 가보면 이름 모를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손으로 밥을 먹는 것, 두 다리로 걷는 것, 화장실에서 스스로 소변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지금도 지구상에 하루에 단 한 끼 밖에 못 먹는 사람이 20억이나 되며, 세계 인구의 1/10인, 6억이 하루에 1 달러로 살아가며, 전기가 없이 사는 사람이 20억, 식수 시설 없어 하천 물을 마시는 사람이 10억이나 됩니다. 우리가 정수 된 물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알아야 합니다.

 

셋째로, 어려운 일을 당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 기가 막힌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감사를 통해 고난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깊은 뜻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통해 잃어 버린 것 속에 얻은 은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좋은 일이 있을 때, 평범한 일에도 감사제목을 찾아내고 감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감사할 제목을 찾아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은 우리가 어떻게 찬양하며, 그리고 어떻게 예배하며, 감사해야 할 것인가를 모범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찬양과 예배,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찬양을 통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며,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찬양을 통해 평안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그리고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