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우리를 남겨두신 이유

성경 : 로마서 11 : 1-5 / 제목 : 우리를 남겨두신 이유 2019.10.20

임진왜란(1592-1598) 때, 일본군은 200여척의 배를 동원해 한산도 쪽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당시 선조 왕과 신하와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전의를 상실하고 있을 때, 이순신 장군은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왕이여!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왕이여!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라고 하는 말은 2014년 이순신 장군을 다룬 “명량”이란 영화에 가장 히트한 대사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단 13척의 배로 일본의 2백여 척이 넘는 수군을 대파함으로써 전쟁에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전쟁이나 재난, 대형 사고를 당했을 때 살아남는 사람들을 “생존자, 남은 자”라고 말합니다. 성경 또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살아남는 자들을 “남은 자”라고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님은 노아시대 모든 인류를 물로 멸하셨지만, 노아와 그 가족 8 식구를 남겨 두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노아와 그 가족을 남겨 두었듯이, 시대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남겨두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누구를 남겨 두었으며,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이 시대에 남겨 두신 이유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이삭을 남겨 두셨습니다.

창세기는 크게 4사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리고 요셉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네 사람 중에 이삭에 대한 기록이 가장 적지만 이삭은 우리에게 귀한 것을 남겼습니다. 이삭은 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에 보면 대체적으로 한 남자가 많은 여자를 두었는데 이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리브가 한 여자를 아내로 둔 사람이며, 평생 한 여자와 같이 살다가 세상을 떠난 모범적인 사람입니다. 옛날이나 지금도 모든 가정의 불행과 문제는 1남 1여로 지으신 창조의 원리를 벗어날 때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갈에서 “이스마엘”, 그두라에게서 여섯 명의 아들, 그리고 사라에게서 “이삭”을 두었습니다. 다른 자녀들과 이삭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이삭이 태어날 때 아브라함은 100세였고, 사라는 90세였습니다. 이삭은 약속으로 태어난 언약의 자녀였습니다.

 

(롬9: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이삭이 다른 자녀들과 다른 것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란 “이삭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삭을 남겨두신 목적은 구원자를 보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야구에서 “구원투수”란 것이 있습니다. 구원투수는 팀이 위기를 만났을 때나 팀이 지고 있을 때 감독이 내보는 투수입니다. 구원투수가 중요한 이유는 경기의 승패가 결정짓는 시점에서 등판하기 때문입니다. 구원투수는 감독이 평소 최고의 투수를 아껴 두었다가 팀이 어려울 때 내 보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구원투수 같은 사람”을 필요합니다. 나라와 가족이 어려웠을 때 요셉이 “구원투수” 역할을 잘 감당해 냈습니다. 아버지와 가족이 흉년을 만났을 때 가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에스더 또한 자기 동족이 죽음 가운데 있을 때 건져낸 “구원투수”였습니다.

 

가정이 어려울 때 며느리가 잘 들어옴으로 가정을 회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시대, 이 교회에 남겨 둔 것은 바로 “구원투수”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함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낙심합니까? 한두 사람 남았을 때입니다. 성경공부를 하는데, 한 두 사람뿐입니다. 기도회에 모이는 사람이 불과 다섯 손가락 안쪽입니다. 사람이 적으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한 두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를 남겨두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더욱 우리가 선 자리에서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엘리야 시대 7천명을 남겨 두셨습니다.

아합 왕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깊은 암흑기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대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엘리야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2-3)“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나이다.” 처참한 광경입니다.

 

엘리야는 “저만 남았나이다.”라고 가슴 아파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하십니까? (4절)“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엘리야, 너 혼자만 고난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똑같이 견디며, 싸우고 있는 사람이 “7천 명이나 남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7천명이 어디에 있었는지 말하지 않지만 사렙다 과부나 수넴 여인, 오바댜, 엘리사 등 몇몇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바댜를 남겨 두었습니다. 그는 당시 아합의 신하였지만, 오히려 3년 6개월 기근 중 선지자 100명을 굴에다 숨겨놓고 떡과 물을 먹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선지자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오바댜는 선지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데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사용하였습니다.

 

중국이 공산화 된 것이 1949년입니다. 중국이 공산화되기 전까지 신자가 약 60만 명 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산화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이 한 사람도 없을 정도로 뿌리를 뽑았습니다. 모택동 문화혁명이후 시골벽지까지 기독교인을 깡그리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서방 세계는 “문화 혁명 후 중국교회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기독교 인구가 많은, 8천만 명이나 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공산화 혁명과 박해가 도리어 기독교 인구를 120배 넘게 증가되었습니다.

 

여러분! 북한에 교회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선전용으로 봉수교회 정도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금도 함경도 일대 지하교회들이 수천 개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한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주여! 남한교회를 살려 주옵소서!”눈물로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엘리야와 같이 “주님 왜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볼 때에 온 세상이 악하고, 나쁜 사람들만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지키며 세상과 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되길 원하는 진실한 성도들이 금식하고 철야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도 한국의 교회는 매일 밤마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사람들로 꽉 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사역을 이루기 위해서 시대마다 남겨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나 혼자만이 진리를 지키고, 교회를 사랑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생각은 편협한 생각입니다. 우리들만 성결하고 믿음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우리가 모르는 다수들의 사람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충성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벨이 죽었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의 피는 살아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마다 하나님이 남겨 두신 자들을 통해 자기 교회와 백성을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지켜 가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은혜 받은 자를 남겨 두었습니다.(5)

그러면 오늘 이 시대 남은 자가 누구입니까? (5절)“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은혜 받은 자”란 운동경기는 마지막 남은 우승팀이란 뜻입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남겨 주셨다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은혜 받은 자를 남겨 두십니다.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자들이 무려 7천명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마음을 서로 모으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함께 마음을 모았다면 아합과 이세벨은 상대할 수 없었을 것이며, 엘리야가 그렇게 낙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에 5백여 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마가요한의 어머니 다락방에 기도하러 모인 사람은 120명이었습니다. (행1:15)“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 십 명이나 되더라.” 남은 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남은 자들이 힘을 얻으려면 모여야 되고, 힘을 합쳐야 됩니다.

 

일본에 유명한 교회 지도자였던 “우찌무라 간조”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경건한 목사님으로, 영적인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강조한 것은 혼자 성경을 연구하고, 혼자 기도하는 개인주의적인 신앙을 강조하였습니다. 일본의 기독교는 우찌무라 간조 목사님의 영향을 받아, 지금도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경우보다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혼자 사역하지 않았고, 동역자들과 함께 사역했습니다. 남은 자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10: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러분! 하나와 둘은 숫자상으로 50%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계산 방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18:19)“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시리라” 기도를 했지만, 응답이 없는 것은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마18:20)“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시대마다 필요한 사람을 남겨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이삭을 남겨 메시야를 오게 하였고,

엘리야 시대에 7천명을 남겨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고,

신약시대 바울을 남겨 유럽을 복음화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을 이 땅에 남도록 하여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남겨 두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