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성경 : 출애굽기 10 : 24-29 / 제목 : 우리에게 자유를 달라. 2019. 8. 11

사육사가 동물원에 갇혀 있는 침펜치에게 카드로 글자를 가르쳤는데, 얼마간 글자를 익힌 후에 침펜치가 사육사에게 처음으로 표현한 글자가 “나에게 자유를 달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동물도 자유를 갈망한다면 사람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 앞에 나아가 “내 백성을 보내라.”고 자유를 달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5장과 10장 사이에 7차례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오늘은 광복 기념주일로, 대한민국이 일본의 압제로부터 해방된 지 7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에게 왜 자유를 달라고 요구했는가?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절기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달라.

모세와 아론이 애굽을 떠나야 할 이유, 즉 자유를 달라고 한 이유는 (5:1)“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많은 절기들이 있습니다. 그중 3대 절기라 불리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은 의무적으로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러 절기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 가운데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됨으로 지키게 된 절기입니다. (출12:2)“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 하던 역사를 빼고, 자유를 얻은 유월절부터 다시 역사를 시작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달부터“이스라엘의 달력을 다시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종살이의 역사, 자유가 없는 역사는 의미가 없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가치 없는 역사, 잊어버린 역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살았을 때입니다. (고후5:17)“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밖에서 살았던 역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또 이스라엘에게 부림절 절기가 있는데, 이스라엘이 페르시아에 지배를 받을 때 모든 백성들이 통째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 에스더로 말미암아 극적으로 죽음에서 면케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부림절을 국가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애국과 관련된 성경이 많지만, 페르시아 제국과 관련된 성경만 해도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 무려 7권이나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예레미야, 에스라, 느헤미야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조국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8.15를 통해 얻은 해방과 자유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사실 3. 1운동이나 8.1 5광복절은 엄밀하게 신앙운동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비인도적이고 강제적인 한반도 점령에 대한해방운동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동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찬송가에 국가 기념에 관한 교독문을 삽입해 놓은 것은 자유와 해방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딤전5:8)“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깝게는 우리 가족과 이웃, 멀게는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님 앞에 바로 살도록 기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1.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섬기도록 자유를 달라.

모세가 처음 “내 백성을 보내라.”고 했을 때 바로 왕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강이 피로 변하고, 애굽 온 땅이 개구리와 이로 뒤덮이고, 파리와 메뚜기 떼로 애굽 온 땅에 뒤덮게 되자 바로 왕이 모세와 아론에게 (8절)“하나님을 섬기러 갈 자가 누구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세와 아론은(10:9)“우리가 남녀노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11절)“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하면서 “어린 아이와 사랑하는 여자는 살기 좋은 고센 땅에 남겨두고 남자만 가서 하나님을 섬겨라.”말합니다. 아주 설득력이 있고, 현실적인 것 같이 보입니다.

바로는 “너희들은 광야가 어떤 곳인지 잘 알지?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아니냐? 황량한 모래와 거친 바람이 불지 않느냐? 광야는 물과 양식이 없다. 쉴만한 그늘도 없다. 어떻게 너희들이 사랑한다고 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그 험난한 길을 가겠느냐? 그러니 너희 남자만 가라.”

사실, 먹고 마실 물이 없는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편안하게 고센 땅에 있으면 되지, 왜 어린 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그 험난한 길로 같이 데리고 가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느냐? 실로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남자들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한 바로의 타협안에는 무서운 함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가족들을 볼모로 잡아 두겠다는 동시에, 가족을 파괴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가족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무슨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과거 바로 왕이 남정만 가라한 말에 대해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여기에 속고 있습니다. 아내나 가족 입장에서 볼 때, 남편이 직장에서 일주일 동안 일하느라 파김치기가 되었는데, 주일날 좀 쉬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자녀들이 시험 공부하느라 일주일 동안 고생하는데 주일 하루 좀 잠 푹 자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 안에는 학생들과 젊은 청년들이 점점 사라지고, 나이 많은 분들만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남자는 사라지고 여자만 남아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현대 교회는 바로 왕이 제안한 타협안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가 되 버렸습니다.

과거 한국 교회당에는 가족석이 있어,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렸지만, 지금은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 따로, 여자 따로, 아이들 따로, 모두 따로 따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타협하지 않았고, 바로의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9절)“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하나님은 가족 대표가 아닌,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길 원하십니다.

“주 예수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받으리라”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고넬료와 루디아의 가족처럼 온 가정이 함께 나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길 원합니다.

  1. 희생 제물을 드리기 위해 자유를 달라.

바로 왕이 모세와 아론에게 요구한 것은 (24절)“너희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은 너희와 함께 가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자녀를 두고 가라 했다가 이번에는 양과 소는 머물러 두라고 합니다.

여기에 엄청난 함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 제물과 함께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왕이 “양과 소를 두고 가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함은 물론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5대 제사 가운데, 제물이 없는 유일한 제사는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인데, 대신 소제에는 세 가지를 반드시 첨가해야만 했습니다. 기름과 유향 그리고 소금입니다. “기름”은 짐승을 죽였을 때 얻을 수 있는 재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제물과 함께 제사 드리도록 했습니다.

신약 제사의 특징도 동일합니다. (롬12:1)“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희생 제물이 되었고, 우리 또한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 신약의 예배의 특징은 모두 동일하게 희생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몸과 마음, 시간과 물질의 희생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9:22)“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사탄은 바로와 같이 끝임 없이 우리를 유혹하며, 타협할 것을 요구합니다. “교회에 꼭 가서 예배드릴 필요가 있느냐? 집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 담임목사 보다 더 잘하는 목사의 설교를 들을 수 있는데 굳이 왜 교회에 나가야 하나”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가려는 사람에게는 또 이렇게 요구합니다. “교회 가기는 가는데,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좀 열심을 내면, 가족이나 주변에서 “너무 충성하는 것 같다. 너무 무리하게 하는 것 같다. 남들과 같이 적당하게 신앙 생활하라.”합니다. 지금도 사탄은 바로와 같이 끝임 없이 우리를 유혹하며 타협할 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우리 민족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게 베푼 은혜를 기억하고 지키도록 자유를 주셨습니다. 지금도 정치적으로 속박되어 있는 북한은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방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다시는 자유를 빼앗기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 가족과 함께 예배드리도록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족 대표가 아닌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이의 예배, 젖먹이의 예배까지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제물과 함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자유를 주셨습니다. 바로 왕은 이스라엘을 빈손으로 보내려 했지만, 하나님은 물질과 함께 출애굽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희생 제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 자유와 특권을 남용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