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잃은 양 비유가 주는 교훈

 

성경 : 누가복음 15 : 1- 7 / 제목 : 잃은 양 비유가 주는 교훈
2019. 8. 4

1991년 3월26일 대구성서 초등학생 5명이 뒤 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한 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있은 후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하고, 군인과 경찰 공무원, 학생, 전 국민이 동원되어 수년 동안 찾았지만, 사건이 일어난 11년 만에 학생들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면서 전 국민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세상에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는데, 잃어버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돈, 직장, 건강, 가족 등이 그러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데 잃어 버린 세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잃은 양 비유”가 주는 교훈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믿음의 기초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다.
본문, 잃은 양 비유는 주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것을 보고 비난할 때 하신 것입니다.(1-2절) 유대사회에서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은 식사를 하는 것 이상의 의미, 한 가족이나 식구, 공동체의 일원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잃어 버린 양은 누구를 가르칩니까? 우리가 보통 “잃은 양” 이라고 할 때 “믿던 사람이 여러 이유로 교회출석하지 않거나, 혹은 예수님을 믿지만 교회 출석을 안 하는 사람, 혹은 예수님을 믿다가 낙심한 사람” 등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잃은 양은(1절)“세리와 죄인”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비난을 받았지만 자신의 부족하고, 죄인인줄 알았습니다. (눅18: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런데 비유에서 목자가 잃어 버린 양을 다시 찾았다는 것은 (7절)“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즉 세리와 죄인들이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잃어 버린 자를 찾으시는 사역이었습니다. (눅19:10)“인자의 잃어 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세리 마태, 사마리아 여인 또한 잃어 버린 자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죄인 됨을 깨달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 시몬 베드로는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할 때 주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눅5:4)“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물을 내린 결과 심히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많은 고기를 잡은 후 “주님! 고기를 많이 잡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기를 많이 잡아 너무 기쁩니다.”하지 않고 (눅5:8)“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바다 속에 있는 고기의 길을 아신다면, 나의 생각뿐 아니라 나의 행위도 아실 것이며, 허물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허물과 죄를 십자가의 피로 용서해 주셨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를 고백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못할 때에 용서 받을 필요를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요일1서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자백”은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이해하겠지?”생각하고 속으로 “미안해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른도, 부모도, 가르치는 선생과 목사도 잘못했을 때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세리와 죄인과 같이 자신의 허물을 자각하고 죄인임을 고백할 때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할 때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성품인 사랑을 교훈하고 있다.
목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99마리를 들에 남겨 두고 찾아다녔습니다. 이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목자가 들에 남겨둔 99마리는 언제 어디에서 곰과 사자와 같은 맹수가 나타나서 희생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목자에게 잃어 버린 양은 100마리 중 하나이며, 경제적인 가치로는 1% 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목자는 “나에게 99마리의 양이 남아 있으니까 한 마리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손실은 겨우 1%일뿐이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보면 “1%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큰일을 위해 몇 사람 정도의 희생은 당연한 거야”라고 한 두 사람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반응입니다. (6절)“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잔치의 성격을 잘 모르지만, “모든 사람을 향해 나와 함께 즐기자”라고 한 것을 보면, 찾은 양의 값보다 잔치 비용이 더 많이 지불 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렇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아닌가? 생각될 수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아 잔치를 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목자는 경제논리로 잃은 양을 찾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 생명을 많은 물질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한 생명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5월 9일, 북한에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3명을 데려오기 위해 미국 대통령이 국무장관을 시켜 특별 전세기와 함께 북한으로 보내 3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세 사람이 공군 기지에 도착했을 때 대통령이 직접 마중을 나가 그들의 귀환을 환영했습니다.

주님은 거라사에 귀신 들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돼지 2천 마리도 아까워하지 않고 희생시켰습니다. 그러자 거라사 사람들은(막5:17-18)“그들이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거라사인은 돼지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주님은 한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잃은 양 비유”는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한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랑을 가장 잘 표현 곳은 고린도전서 13장과 요한일서 4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사랑의 의미를 말한 것이라면, 요한일서 4장은 사랑의 속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의 속성에 대해서 (요일4:7)“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유효 기간이 18개월에서 30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신혼 초에 부부가 밥을 먹다가 방귀를 끼면 남편이 “깜찍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0년쯤 지나 아내가 방귀를 끼면 “냄새난다.” 야단입니다.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며, 사랑의 유효기간이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아야만 합니다. 스마트 폰을 계속 충전해야 하듯이 우리 또한 계속적으로 사랑을 충전을 해야 비로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잃은 양 비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를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길 바랍니다.

3. 교회와 성도의 유기적인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목자가 잃어 버린 양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은 한 생명의 소중함 때문이긴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한 마리 의 양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양들과 분리 될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은 레고나 퍼즐과 같이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 서로 분리 될 수 없는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의 각 지체들은 상호 보완적이며, 각 지체들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잃은 양 비유”는 성도의 유기적인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마리 양은 99마리 양들과 유기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 마리를 잃어 버린 것은 전체를 잃어 버린 것과 같은 것이며, 동시에 한 마리 양을 찾은 것은 전체를 찾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스페인 남부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는 지브롤터 해협은 지리적으로는 스페인 본토 안에 있지만, 영국령입니다. 영국의 통치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땅이었는데 1713년 펠리페 5세가 위트레흐트조약을 통해 왕위를 인정받는 대신 지브롤터를 영국에 공식 양도했습니다.
스페인은 지브롤터를 “발에 박힌 가시”라며 못내 아쉬워하지만, 엄연히 영국의 통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이 손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인체는 살과 피로서 결합되어 있지만, 교회와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상 교회가 부족하고 약하지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지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잃은 양 비유는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죄인임을 깨달은 자”를 “회개한 자”라고 했고, 잃어 버린 자를 찾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주님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우리 사랑의교회를 통해 잃은 자들이 날마다 돌아올 수 있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