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갈라디아서 4 : 1-9 / 제목 : 죄의 종이 되지 말라. / 2019. 7.21
자유를 상징하는 두 개의 큰 상징물이 있는데,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과 파리의 에펠탑입니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 프랑스가 미국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에 기증한 것이며, 파리 에펠탑은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1889년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하여 만든 것입니다.
미 독립 전쟁 때 패트릭 헨리는“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고 했고, 프랑스 혁명 인권선언 제 1조에서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와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또한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언급하면서 다시금 자유를 빼앗겨 종노릇 하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 초등학문에 종노릇 하지 말라.
오늘날에는 “종”이란 개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많은 것들에 의해 속박당하거나 종노릇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세상의 아주 초보적인 것들에 의해 종노릇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절)“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초등학문”이란 글자를 배울 때 ㄱㄴㄷ, 영어를 배울 때 ABC, 기초를 뜻합니다. “초등학문”에 대해 성경 아래 부분에 주가 달려 있습니다. “고대의 우주관과 운명론 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운명론은 숙명론과 같으며, 내가 병이든 것, 성공하는 것, 가난한 것은 이미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사상으로 “체념관”이라고 말합니다. 숙명론은 고대 그리스 사상을 지배하였고, 이슬람의 근본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슬람교는 인간의 행, 불행은 자신의 몫이 아닌 알라가 정한 것이 기에 원망하지 말라 가르칩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날과 달과 절기” 등 자연을 섬기는 자들도 있습니다.(9-10절)“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오늘날 사람들은 “미신, 사주, 궁합, 운세” 같은 것에 빠져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산이나 바닷가를 찾아 떠오르는 해를 향해 소원을 빕니다. 집을 짓거나, 이사, 결혼 날짜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에서 오늘의 운세를 보고, 좋아하고 걱정합니다.
유럽인들은 금요일과 한국인들 가운데 배 사업하는 분들은 13일의 금요일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13일 금요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출항하지 않습니다. 또 출항할 때는 되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냅니다. 바울은 “세상의 미신은 약하고 천박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삼상 4장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해 4천 명 가량 죽임을 당하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면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고, 언약궤를 앞세워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그 결과는 3만 명이 죽임을 당했고, 언약궤까지 적군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성도들도 미신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십자가만 가지고 다녀도 마귀가 도망갈 것처럼 생각하고 십자가를 부적처럼 생각하고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책상 위나 머리맡에 두기만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미신적으로 믿지 않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라.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살기 좋은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차이는 법이 얼마나 바로 시행되고 있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오늘날 이슬람국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의 가장 두려움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법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사시대의 특징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삿17:6)“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법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보다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은 완전하며 거룩하며 흠이 없습니다.
(롬7:12)“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구약의 계명을 꼭 지켜야 하는가? “무법주의”입니다. 이단들, 특히 구원파는 (롬6:14)“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구원 받았기에 더 이상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계명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지 못함으로 인해서 정죄 아래 있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어도 법을 지킬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요14: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또 다른 하나는 “율법주의”입니다. 바리새인은 누구보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셨는데 그들이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계명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며, 구원 받는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죄를 깨닫도록 주셨습니다. (롬3:20)“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고, 죄가 확산되지 못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스페인의 법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럼에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은 법을 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은 주신 목적도 범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주신 것이지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속박하기 주신 것이 아닙니다.
둘째,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도록 계명을 주셨습니다. (갈3:24)“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초등교사란 안내자란 뜻으로, 여행을 할 때 우리를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가이드와 같은 역할을 말합니다.
계명은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해 주는 소중한 지도와 나침반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율법의 정죄와 형벌과 저주에서 구원한 것이지 율법의 교훈과 윤리적 규범에서마저 해방시킨 것이 아닙니다. (마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요일5:2-3)“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 아느니라.”
여러분!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계명은 얽매이게 하는 쇠사슬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우리를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교사와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인과 같이 여호와의 계명을 묵상하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죄의 종이 되지 말라.
모든 성경은 죄의 문제를 소홀히 취급한 곳이 없으며, 로마서는 참으로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죄는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갈 뿐 아니라, 죄는 우리가 가진 모든 특권과 축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갑니다. 죄는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시51:5)“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다윗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그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실망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롬7:23)“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이것은 노예를 끌고 가는 모습입니다. 죄는 단순히 추상명사가 아니라 큰 힘이며, 권세입니다. 사슬에 끌려가는 노예의 모습, 그게 바로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8:34)“죄를 범한자마다 죄의 종이니라.” 죄를 짓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형벌을 받습니다. 예수님도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 무서운 십자가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죄인”이란 말입니다. 세상에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죄인 된 고백 없이는 믿음이 시작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죄인이라는 확신이 없다고 할지라고 다음과 두 가지 증상이 있다면 시인해야 합니다. 첫째, 모든 인간은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죄인 된 증거입니다. (창3:10)“내가 두려워 숨었나이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첫번째 나타난 반응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두려움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삶 속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죄인임을 시인해야 합니다. 법을 어겼을 때, 남을 속이고 거짓된 일을 하였을 때, 죄를 지었을 때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죄인이란 뜻입니다.
둘째, 죽음을 두려 운 것은 내가 죄인 된 증거입니다.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교통사고이든, 재난이든, 자연적인 것이든 모든 죽음의 원인은 죄입니다. (창2:17)“선악을 알게 하는 마무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내가 죽는다는 것은 “죄인”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롬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것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세상의 천박한 초등학문과 미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율법의 종에서 자유하게 해 주셨고, 죄의 종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종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의 후사로 유업을 받을 자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자유, 은혜와 축복을 남용하지 않고, 복음과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