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윗의 위대함이 무엇인가?

 

성경 : 삼하 1 : 11-16  / 제목 : 다윗의 위대함이 무엇인가?
2019. 7.14

사무엘하는 사울이 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울은 충신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많은 음모를 꾸몄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고 어떻게 반응합니까? (11절)“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기뻐해야 될법한 상황에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함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이뿐이 아닙니다.

1. 다윗은 거짓에 속지 않는 위대함이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사울 왕이 전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말렉 병사가 지나가다 왕이 죽을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사울 왕을 죽인 것처럼 꾸며 왕의 왕관과 팔찌를 벗겨 다윗 앞에 가지고 왔습니다. (10절)아말렉 사람은 자신이 사울 왕을 죽인 공로로 상을 받을 줄 알고 거짓을 꾸민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정보가 전혀 없었음에도 아말렉 병사의 말에 속지 않았던 것은 사람의 근본과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죽음을 보고한 병사에게 (5절)“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8절)“너는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병사는 “우연히”, “아말렉”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우연히”라는 말입니다. 천지 만물이 어떻게 존재했느냐? 성경은 (창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니라.” 그러나 세상의 과학자들은 “아주 오랜 전에 우연히”라고 말합니다.

검사가 일반 사람들에게 “당신은 어떻게 죽은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았느냐?”고 물으면 “저는 매일 아침 그곳을 등산하기 위해 그곳을 지나가는데, 그 날 그곳에서 죽은 사람을 보았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살인자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 가다가 죽은 사람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아말렉병사의 말이 거짓임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라는 근거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보다
(14절)“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죄를 지은 사람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아말렉 병사는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서 두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쉽게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인인 확실한 증거는 “두려움”입니다. (창3:9)“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내가 두려워 숨은 나이다.”

오늘 우리는 속고 속이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업을 위해서라면 거짓말할 의사가 있는가?” 53.7%가 “취업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이라도 하겠다.”라고 답했다. 학력이나 경력을 속이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직장을 얻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은퇴자들이 거짓에 속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전문가들은 경험이 없는 은퇴자가 새로운 창업을 해서 5년 동안 살아남는 경우는 불과 1% 밖에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투자를 하면 많은 돈을 번다는 속임수에 넘어가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고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거짓말하는가?”라는 조사에서 나온 결과는 “보통 사람은 8분 동안 말하는 가운데 한 번꼴 거짓말을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가 남을 속이지 말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에게 속지 않아야 하며, 타인의 속임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속이지도 말고 말지도 맙시다.2. 다윗은 영광을 혼자 취하지 않고, 함께 나누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의 원수이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쓰임 받은 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 대해 (19절)“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23)“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다윗은 사울의 치적에 대하여 높이 평가했고, 그의 장점을 모든 사람 앞에서 칭찬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칭찬했을 뿐 아니라 공로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강자의 모습니다.

다윗이 시글락을 공격할 때 600명 중 400명만 전투에 나가 싸워 전리품을 획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전리품을 나눌 때는 600명이 똑같이 같이 나누도록 하였습니다. (삼상30:24-25)“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일반일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은혜의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레23:22)“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객과 가난한 자들은 노력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분깃에는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이란 책은 복음 전도용으로 많이 읽혀진 책으로, 우리가 이웃과 더불어 좋은 것을 나눌 때 인생의 최고 값진 선물을 얻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미우라 아야꼬”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를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장사가 잘되어 손님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점점 일이 많아 집안일도 교회 일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가게가 잘 되는 것은 좋지만, 이웃가게가 잘 안 되는 것이 걱정되어 가게를 전과 줄였습니다.

가게를 줄이다 보니 손님도 줄어들었고 시간도 많았습니다. 남는 시간에 틈틈이 글을 썼습니다. 그 틈틈이 쓴 원고가 바로 빙점이란 소설입니다. 그 후 “미우라 아야꼬”가 쓴 이 소설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고, 최초 일본 기독교 작가로서 최고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그의 일생에 가장 빛날 때는 100세에 아들을 얻었을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을 순종했을 때입니다. 베다니 마리아 생애 절정은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나누어야 합니까? 첫째 슬픔을 나누어야 합니다.(롬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우리말에도 기쁨을 나누면 배로 늘어나고, 슬픔을 나누면 배로 줄어든다는 말과 같이 어려움을 나누어야 합니다.

둘째, 좋은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갈6:6)“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셋째, 기도를 나누어야 합니다. (욥42:10)“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언젠가 L. A.에서 흑인폭동이 크게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한인들이 평소 흑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들의 가게는 오히려 보호해 주었지만, 구두쇠 노릇을 하며, 번 돈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며 사치한 사람들의 사업장들을 골라가며 모두 파괴시켰습니다. 흑인 폭동이후 미국 한인사회는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애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입니까? 필요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 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신 것이 아니라 맡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3. 다윗은 어려울 때 사람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인 후 백성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백성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을 때, 이스라엘의 상비군은 겨우 3천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다윗은 전쟁에 뛰어 들어 골리앗을 죽임으로 승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백성들이 다윗을 칭송하자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대적하기 위해 백성들의 힘을 빌리거나 백성들을 자기편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없는 아둘람 굴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세 편의 서정시를 썼습니다. 그 중(시57:1)“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그가 처한 환경은 초라한 곳이지만 “내가 주의 날개 아래”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피하였을 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압박당한 자, 빚쟁이, 원통한 자”, 즉 밑바닥 인생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들을 받아 주었으며, 그들이 가진 아픔을 함께 공감해 주었습니다. 공감의 힘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 가운데 “공감”, “이해”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말하지 않고 생각을 말합니다. 영화를 보고 “참 재미있었다않고, 참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야! 경치가 정말 아름답구나!” “야! 물 많구나!”라고 생각을 말합니다.

“시험에 낙방한 사람에게 참 안되었다. 마음이 아프구나!”하면 대화가 됩니다. 이것을 공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안됐다고 생각한다.”“마음이 아프다고 생각한다.”라고 한다면 이보다 실망스러운 말이 없습니다.

다윗은 어려울 때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어려울 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문제조차도 해결하기 어려웠지만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의 문제들을 씨름하는 가운데 자신의 문제가 극복된 것입니다. 이들은 나중 이스라엘을 건국하는데 영웅이 되었고, 다윗 왕에게 일등공신들이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약하고 어려우면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자기를 도와줄 가족이나 친구를 찾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기대하면 실망밖에 돌아올 것이 없습니다. 친구에게 실망한 사람은 “그가 어려웠을 때 내가 얼마나 도와주었는데!” 하는 섭섭한 마음이 생깁니다. 자녀에게 실망한 부모는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여러분! 사람은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사람은 용서하고 사랑해야 상대자이지 의지할 대상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려울수록 사람을 의지하다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해답을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