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요한복음 15 : 1- 5
제목 : 내 아버지는 농부라.
2019. 6.30( 경기 감리 연회 감리사님 내외분 50명 예배 참석(1부 예배)
유대인 신학자 마르틴 부버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고 말함으로 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취급하였습니다. 본문, 포도나무 비유의 강조점은 “열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열매보다 선결되는 것이 “관계”임을 말씀합니다.
1. 아버지는 농부다.
1절,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라.” 농경사회에 농부란 봄에 논밭에서 씨를 심고, 여름에 김을 매고, 가을에 추수하며, 집에서 가축과 과수원을 재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농부는 대체로 일이 많고 바쁜 것이 특징입니다.
한자 쌀미(米)자를 보면, “팔을 두 번 곱한 것으로, 팔십팔이란 숫자인데, 이것은 농부가 여든 여덟 번의 손을 거쳐서 비로소 거둔다고 해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88세를 ”미수“(米壽)라고도 하는데, 인생의 88번의 과정을 거쳐 왔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장(21-39)에서 마가는 예수님의 하루 일과를 기술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 해질 때까지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면서 (막3:20)“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주님은 참으로 부지런한 농부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농부”란 말씀이나, 주님께서 “식사할 겨를도 없이 사역하신 것”을 보면서 나는 아직 농부의 자세가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귀농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농사를 짓겠다고 귀농하는 자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부모님이 갖고 있는 땅과 재산이 탐이 나서 귀농을 결정하거나, 정부보조를 타먹기 위해 귀농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언제가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유럽에 목사님들이 섬기는 교회는 부럽지 않지만, 자녀교육은 부럽습니다. 미국도 보내고, 영국도 보내고”, “한국에서 1000명 교회를 목회해도 자녀 한 명을 유학보내기 어렵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유럽에 목회하러 온 것이 자녀교육이나 문화혜택을 염두에 두고 온 것 아닌가? 유럽에 목회하는 우리가 마치, 부모 재산을 탐내어 귀농한 사람이 아닌가하는 말로 들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변명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부모의 땅을 탐내 귀농했다는 누명을 받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터에서 농부처럼 땀 흘려 일하는 길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2. 농부의 관심은 열매이다.
2절에서 농부인 하나님 아버지는 열매를 맺는 나무와 맺지 못하는 나무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목회 사역에서 가장 큰 관심은 아무래도 열매입니다. 목회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열매란 교인이며, 정확하게 말하면 교인의 숫자 아니겠나 생각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요즘 한국교회 목회하시는 목사님들 중 젊은 목사님의 고민과 60세 이상 된 목사님들의 고민이 이것이다.”라고 쓴 글 내용입니다. 젊은 목사님의 고민은 당회에서 “목사님, 그런 식으로 목회하면 우리 교회에서 계속 목회 못합니다.”라는 말이고,
60세 이상 된 목사님들의 고민은 “목사님 교인들이 지난해보다 5% 줄었고, 헌금은 15%나 줄었습니다.” 라는 이야기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은 한국대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해외교회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드리드 땅덩어리는 서울지역보다 두 배 정도 넓습니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 고신목사로 한인 사역은 저 혼자입니다. 이 넓은 지역에 제가 열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다 모아도 3천여 명이 되지 않습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한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교인 한 사람과 한국에 있는 교인 한 사람을 1:1로 계산하는 것은 잘못됐다. 달러 환율대로 계산해야 한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누가 그랬는지 제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 유럽에서 목회하는 우리는 교인 수를 말할 때 유로화 환율로 계산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줄 알면서, 제가 우리교회 교인을 유로화 환율을 곱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십만 명이 훨씬 넘더라고요!
언제가 주일예배 때 찬양대에서 찬양을 하고 있는데, 제가 강단에 서서 교인이 몇 명이 참석 했나 교인 숫자를 헤아리고 있더라니까요! 교회 전체 의자가 110개데, 빠진 것만 계산하면 되는데, 일일이 숫자를 세었습니다.
독일철학자 니체가 한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 그러자 당시 독일교회는 니체를 향해 미쳤다고 손가락질하였습니다. 그러자 니체는 내가 신이 죽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 “교회에 가봐라 그러면 신이 죽은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교회는 신의 무덤이다.”라고 했습니다.
농부에게 열매란 자식과 같은 것입니다. 쌀 한 톨, 과일 한 개, 아깝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농부의 심장을 가지고 사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4:15)“내가 복음으로써 너를 낳았음이라”, (갈4:19)“내가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참으로 산모의 고통을 경험한 “참 아버지”란 생각이 듭니다.
35년 넘게 사역을 하면서도 “교인들을 바라볼 때, 내가 낳은 자식들인가?” “내가 이들을 위해 어떤 수고와 고통을 감수했는가?” 의문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내 아버지는 농부라”는 말씀은 “목사인 저에게 열매는 해산의 고통으로 얻게 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3. 열매보다 주님과의 관계가 우선이다.
열매보다 선결되는 것이 있음을 5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5절)“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석가 헨드릭슨은 “그 안”에 대해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주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아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란 “Nothing”이란 뜻입니다.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 5절 이후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7절)“말씀과 기도”라고 말하며, 9절“사랑의 관계”, (10,12절)“계명을 지키는 관계”임을 확인 시켜주셨습니다.
(16절)“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며,” “열매는 말씀과 기도, 사랑의 수고, 계명을 지킬 때” 맺힌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맺히는 과정을 말씀하셨을 뿐 “이것이 열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과 기도 사랑과 주님의 교훈에 충실할 때 자연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때때로 내가 열매를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알다시피 열매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맺히는 것이며, 결과물인데 말입니다.
레아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야곱에게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겠다.”고 했을 때 야곱은 “내가 어찌 하나님을 대신 하겠느냐?”라고 대답했습니다.
생명과 열매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권한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고전3:6-7)“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라”
부인들이 자녀를 갖고자 하는 열망이 넘칠 때에 상상 임신을 하는 경우가 있듯이, 목회현장에서 열매에 목말라 하는 목사에게도 상상의 열매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을 교훈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사역자인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열매보다 우선되는 것이 바로 주님과의 관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목회 현장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함으로 우리가 갈망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