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요한계시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성경 : 요한계시록 1 : 1- 7 / 제목 : 요한계시록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 6.16

요한계시록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도요한이 박해 받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용기를 주기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그럼에도 계시록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두렵다.”생각되기도 합니다. 실제 계시록을 혼자 공부하는 것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개혁자이며, 성경학자인 칼뱅도 모든 성경은 강해하고 주석 했지만 계시록만큼은 남겨 놓았습니다.  저 또한 다른 성경에 비해 많이 전달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덮어 둘 수 없기에 오래 만에 계시록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한계시록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요한계시록은 계시와 예언, 서신서이다.

계시록의 내용을 말해 주는 세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계시”(1:1)와 “예언”(1:3), “서신”(1:4)입니다. “계시”란 “감추어진 비밀을 드러내다.”란 뜻으로, 계시록은 하나님의 약속들과 비밀을 상징과 비유를 통해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6장부터 예수그리스도께서 인봉된 비밀을 하나씩 떼시며, 감추어진 비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창세기에서 시작한 하나님의 약속들이 계시록에서 종결된다는 점에서 마지막 예언서이며, 사도요한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서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계시와 예언, 편지에 대하여 3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요한은 하나님의 감추어진 비밀과 약속을 알 수 있기에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에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답변은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입니다. 이것을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경전입니다. 타종교에서도 경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 종교, 유교의 사서삼경이나, 이슬람교의 코란도 종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기독교에서 경전은 절대적입니다.

 

예를 들어 불교에서 8만 대장경은 아주 중요한 경전이지만, 경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중요한 경전을 굳이 읽고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경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보관해 놓는 것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신도에 따라 생각과 믿음의 정도가 서로 다릅니다.

 

이슬람교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만 간추려 이슬람 체제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에 비해 기독교는 성경이 절대적이며 성경을 빼 버리면 기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타 종교와 달리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믿었던 하나님과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동일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동일하게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을 떠나면 샤머니즘과 철학, 괴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에 뿌리를 두어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세워진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1. 요한계시록은 숫자와 상징, 비유를 통해 진리를 드러낸 책이다.

계시록의 특징은 상징과 숫자에 대한 비유가 많이 등장합니다. 촛대, 인, 나팔, 대접, 짐승, 용, 뱀 등 상징적인 용어들이 무려 54개 이상이나 되며, 숫자 또한 많이 나오는데, 144,000, 666 등이 있으며, 특히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일곱 눈, 일곱 교회 등 일곱 숫자가 많습니다.

 

숫자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은 14,4000명입니다. 144,000명은 무엇을 말하는가? (계7:4)“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침을 받은 자들이 십 사 만 사천이니” 이단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144,000명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여, 구원받을 숫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14,4000명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인 맞은 자가 1만 2천 명으로, 12지파에서 인 맞은 숫자는 모두 14만4천명에서 나온 숫자입니다. 144,000에 대해서 (7:9)“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14,400명이란 이스라엘 12지파를 포함하여 각 나라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구원 받은 백성들을 지칭한 것으로 요한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라고 하였습니다. 14,400명은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는 구원 받은 많은 백성”을 상징한 것입니다.

 

또한 666에 대한 의미입니다. 사탄의 표로, 요즘 모든 상표에 붙어 있는 바코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13:17)“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말씀을 가지고 사탄이 모든 경제를 손아귀에 넣었다.” 말하며, “666”은 “사탄의 수”라고 규정하기도 합니다. 마드리드 리바스 전화번호가 “666” 번호가 많은데, 이것을 사탄의 수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666”에 대해 (13:18)“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라.”, 많은 학자들은 “666”은 사도요한이 당시 기독교를 박해하여 맹수의 밥이 되게 한 네로 황제와 로마제국을 “짐승 같은 존재”로 해석하고 있으며, 동시에 앞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는 세력들이 출현할 것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에 대한 해석입니다. (11절)“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성경에 일곱이란 숫자가 약 564번 나오는데, 완전, 충만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일곱 교회에 주신 교훈이나 책망

은 지난 과거의 교회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있을 지상의 모든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먼저, 에베소 교회를 향해 (계2:4)“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책망하였으며, 라오디케아교회는 (3:16)“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즉, 이중적인이고, 구분이 되지 않는, 불확실한 믿음을 책망했습니다.

 

반면 서머나 교회에 대하여 칭찬을 하셨습니다. (2:9)“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서머나 교회는 황제숭배와 우상의 신전에서 예배를 강요받았지만 기꺼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신자라는 이유로 시민의 권리를 박탈당했고, 직업 선택, 의식주에 제약을 받았지만 오히려 믿음은 부요했습니다.

 

동일하게 사도요한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서머나교회와 같이 역경 중에서도 믿음을 지킬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을 통해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은 오늘 우리와 우리 시대 모든 지상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계시의 말씀은 과거의 사건에 대한 교훈만이 아니라, 과거의 말씀을 통해 현재 나에게 주시는 직접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현재의 책이고, 살아 있는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요한계시록은 주님의 재림과 최후심판, 그리고 영원한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요한계시록은 사람의 호기심이나, 미래에 대해 추측하는 책이 아닙니다. (1절)“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에 대해 계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영원한 세계”에 대해 분명하게 밝혀 말씀한 책입니다.

 

역사관을 보는 두 관점이 있는데, 계속 반복된다는 사관과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적사관입니다. 기독교적 역사관은 후자입니다. (창1: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역사는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어 (계22:21)“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는 말같이 역사는 끝이 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 출생부터 죽음까지입니다. 둘째, 죽음부터 부활까지입니다. 이 때 육신은 땅에 있고, 영혼은 천국에 있는 상태입니다. 셋째 부활 후 영생까지입니다. 주님의 재림으로 육신이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최후심판이 있게 됩니다. (마25:46)“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먼저, 사도요한은 계시록을 시작하면서 마무리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7)“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22:30)“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거늘,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1992년10월28일 다미선교회 이장림이 주님이 재림한다 해서 큰 소동을 일어난 적이 있었지만, (행1:11)“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승천할 때와 동일한 모습으로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초림은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은 심판 주로 오십니다.

 

재림하신 주님께서 심판하시는데,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계20:12-13)“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두 가지 기준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행한 대로 심판을 하십니다.

 

(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가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심판은 행위대로 받습니다.

 

심판 후 영원한 세계가 주어집니다. (계21: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27)“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1. A 무어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어도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사람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살며,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가십니까?” “그거냐 잘 모르지? 이 땅에 일어날 일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사도요한은 계시록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 죽은 몸이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세계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도요한은 (계14:13)“주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 어디로 갈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