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부르시는가?

성경 : 요한복음 1 : 43-51  / 제목 :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부르시는가?

  1. 2019. 6. 9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동기를 보면 먼저, 부모님에 의해 믿음을 갖는 경우로, 소위 “모태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또는 사람을 통해 복음을 받거나, 여러 환경을 통해 믿게 된 경우입니다. 모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늦게 믿었지만, 뜨겁게 믿음 생활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늦게 믿은 사람은 반대로 모태 신앙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장35절 이후 예수님의 4 제자들이 부름을 받은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드레와 베드로, 빌립과 나다나엘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부름 받은 과정이 서로 다릅니다. 오늘은 4제자들이 부름 받은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부르시는가?”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가족을 통해 사람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부름을 받은 사람은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처음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아 세례요한의 제자였지만, 이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형제로 직업 또한 같은 어부와 동업자였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 가장 먼저 그의 형제인 베드로를 주님에게 인도하였습니다. (41절)“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먼저 찾았다.”라는 말은 “발이 빠르다” “주저함이 없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가장 먼저 “메시야를 만났다.”“구주를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구주가 누구인지 모르며, 구주라는 말을 들은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도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시다.”라는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발 빠르게 가장 먼저 자기 형제를 예수님에게 인도했습니다. 이것은 첫 번째 전도 대상자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에게, 형제들에게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 체험들을 자주 나누어야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가족끼리 함께 나누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기에 다른 사람보다 복음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생각되지만 그러나 가족 구원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성경에도 가족 구원을 온전히 이루지 못한 가정들을 봅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가장 어렵다는 가족을 전도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주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누가복음 16장, 지옥으로 간 부자가 고통 가운데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한 소원은 다름 아닌 가족 구원이었습니다. (눅16:27-28)“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부자는 자신의 형제들이 자기와 같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도록 부탁하였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전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유언입니다. 믿음의 사람, 노아, 아브라함, 야곱, 다윗은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언을 남김으로 후손들이 믿음 안에 살도록 하였습니다. (딤전5:8)“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우리가 가족을 전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좋은 형제, 자매, 부모와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주안에서 믿음으로 맺어진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안드레의 위대함은 그의 형제 베드로를 육신의 형제에서 믿음의 형제로 변화시킨 일입니다. 우리 또한 육신의 관계를 넘어 신실한 믿음의 형제, 믿음의 가족관계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친구와 이웃을 통해 사람을 부르십니다.

본문에 아름다운 두 사람의 만남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과 나다나엘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바돌로매”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이 훌륭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바로 나다나엘에 찾아 예수님께로 인도한 점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나사렛 예수를 만났다.”라고 했을 때 나다나엘은(46절)“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과 나사렛지역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사렛과 나사렛 사람들은 유대에서 시골로, 예루살렘 사람들이 보았을 때 별 볼일 없는 미천한 사람들로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또한 기독교에 대해 아주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성경, 기독교에 대해서 편견을 넘어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쟁이는 독선적이다” “잘난척한다.” 이런 편견 때문에 마음을 잘 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을 일일이 방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하는 친구에게 “자네가 기독교에 대하여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있는 줄 몰랐네!” “자네가 말하는 그런 문제를 갖진 것이 사실이지만 전부가 아니 라네!” “자네!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겠나?”

 

우리는 빌립의 전도방법을 통해 전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어떻게 전도했습니까? (45절)“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46절)“와보라” 빌립의 전도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나다나엘을 찾아갔으며, 와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철수 엄마, 요즘 아이들 키우느라 많이 힘들지 나도 그랬어! 이럴 때 교회로 와서 목사님의 말씀을 한번 들어봐 그럼 많이 좋아질 거야! 힘도 나고!”, “형님, 동생 사업하느라 고생이 많지 교회 한번 와봐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영식이 엄마 아이들을 집에 두지만 말고 친구를 사귀도록 해주야 하지 않겠어! 우리 교회에는 친구할 만한 아이들이 많이 있어! 함께 교회 와봐” 이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전도한 사람이 바로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입니다. 고넬료는 자신이 복음을 전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가족과 친구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 후에 베드로를 초빙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행10:24)“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진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저도 친구의 전도를 받아 교회 출석하였습니다. 학교 친구가 어느 날 저에게 “교회 한번 가보자, 교회에 가면 예쁜 선생님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이 준다.” 이 말을 듣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 목사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전도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한번 와 보라”입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빌립과 바돌로매”이름은 언제나 같이 나옵니다. 그들은 사역에 있어서도 같은 짝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제자로 부름을 받은 이후 항상 함께 했습니다. 좋은 친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만들어야 합니다. 참 좋은 친구란 예수 안에서 만난 친구입니다.

  1. 하나님은 섭리를 통해 사람을 부르십니다.

엘리야는 도망친 로뎀나무 아래서 오히려 새 힘을 얻었고, 요나는 니느웨 백성들이 멸망당하는 것을 보기 위해 박넝쿨 아래서 있었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 쉬고 있을 때 주님을 만났습니다. 본인들은 전혀 계획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이루어 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48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하였습니다. 즉, 나다나엘은 비록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지만, 배후에는 하나님이 세밀하게 지켜보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구약에 보아스와 룻 역시 하나님의 섭리로 만난 사람입니다. (롯2:3)“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이 어쩌다 우연하게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것은 무신론적 해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룻의 발걸음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다.”고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창조한 모든 만물과 피조물을 통치하고 주관하는 것을 “섭리”라고 말합니다. 섭리 신앙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섭리에는 일반섭리, 특별섭리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반섭리란 자연의 질서와 법칙을 통하여 인간과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해가 뜨고 지는 것,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는 것은 일반섭리입니다.

 

기근이 들어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삭을 주우러 간 것이 일반섭리라면, 기근을 통해 나오미가 룻을 만나 결혼하여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그리스도가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한 것은 특별섭리입니다. 특별섭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행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인간이 나쁜 계획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의도하신 계획을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은 20에 팔았습니다. 이것은 아주 나쁜 짓으로 비 인륜적인 행위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창50:20)“당신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여러분! 부모와 가족, 친구, 이웃과의 만남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교회를 통해 만난 것 또한 비록 우리의 의지가 작용했을지라도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란 말은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의 만남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믿는 우리를 통해 가족과 친구, 이웃이 구원받길 원하십니다. 우리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