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치유를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

성경 : 열왕기하 5 : 1 – 6

제목 : 치유를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 2019. 5.26

본문은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병을 고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고백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아만이 질병을 고치는데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지만, 모든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나병을 고쳤습니다. 오늘은 나아만이 극복한 장애물을 통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치유를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불신이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나아만의 가장 큰 약점은 “나병”이었습니다. (1절)“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히브리어로 문둥병은 “회초리”란 뜻으로, 나병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병이란 의미로 이해되었습니다. 레위기에는 나병은 격리하도록 했으며, 마을과 가족을 떠나 살아야 했습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웃시야왕도 나병에 걸렸을 죽을 때까지 격리되어 홀로 지내야 했습니다. 유명한 영화, 벤허에도 벤허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나병에 걸림으로 동굴에서 외로이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나병은 치명적인 병입니다. 한국에서 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에 나병이 불치병이라고 한 말 때문에 나병자들이 항의를 하는 바람에 사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병이라 하지 않고 “한센 씨 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8장에서 가장 먼저 나병을 고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에 나병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병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병을 고치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나아만에게 가장 큰 약점은 나병이었습니다. 이보다 큰 약점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모르는 아픔과 약점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질이 급한 약점이 있었고, 삭개오는 키가 작은 약점이 있었고, 바울은 육체적인 질병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질 급한 약점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바울은 육체적인 가시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큰 근심과 고통 속에 있었던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어린소녀가 여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3절)“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여주인은 어린소녀의 말을 믿고 남편인 나아만에게 전했고, 나아만은 다시금 왕에게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사실 어린소녀의 말을 믿기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어리며, 그가 포로라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엘리사 선지자가 나병을 고쳤다는 어떤 증거도 없었습니다. 철없는 어린소녀의 말만 듣고 무작정 행동하기가 쉽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어린소녀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까? (2절)“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 들더니” “수종”이란 “공경하다.”란 말입니다. 어린소녀는 종이었지만, 평소 말과 행동은 물론 진실한 마음으로 주인을 섬겼기에 여주인이 어린소녀를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흔히 많은 사람들은 “제발 좀 나를 믿어 달라.”고 합니다. “내가 하늘을 두고 맹세할 테니 믿어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신뢰는 간청과 호소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실과 진실의 결과로 주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믿지 못하는 불신”입니다. 우리말에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는데,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도움이 된다.”란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웃”이 사라지고 “불신시대”가 되었습니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며, 친구를 믿지 못하고, 목사를 믿지 못하고, 심지어 하나님도 믿지 못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나병보다 더 큰 장애물은 “불신”입니다. “불신”보다 큰 장애물이 없으며, 불신보다 큰 약점도 없습니다. 우리가 불신을 극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대인관계, 사업, 믿음의 진보, 기도의 응답도 없습니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길 힘씁시다.

 

  1. 지위(자존심)라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나아만은 아람나라를 구한 충신으로, 한국의 이순신 장군과 같으며, 스페인의 엘시드나, 이스라엘의 다윗과 같은 인물입니다. (1절)“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이나”

 

그의 지위는 수행원과 예물에서 나타납니다. (5절)“나아만이 곧 떠날 새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나아만은 엄청난 돈과 수행원을 거느리고 엘리사에게 병을 고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밖에 나오지도 않고 게하시를 시켜(10절)“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깨끗하리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11절)“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발길을 돌리려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데! 나를 이렇게 대접해?”, “아람나라 온 백성과 왕도 나를 존경하는데, 감히 나를 무시해?”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므로 자존심이 상했고 또한 화를 내며 돌아가려 했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스스로 성공한 사람으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가진 지위는 자존심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그가 가진 권력과 힘은 교만이란 이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아만이 가진 자존심과 교만은 어쩌면 나병보다 더 큰 병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자존심과 교만은 나병을 고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가장 필요한 것을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나아만에게 나병을 고치는 것보다 자존심과 교만을 버리는 것이 더 우선적이었습니다. 나아만이 자존심과 교만을 버리지 못할 때,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지위와 권세가 병을 고치는 것보다 우선됩니까? 자존심이 목숨보다 귀합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 왕에게 (사38:1)“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했을 때,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행하고 심히 통곡하며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소위 잘나갈 때, 교만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내가 잘되고 형통할 때, 능력이 있을 때에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기는가를 시험하시는 시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약4:6)“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헬라어로 “교만”이란 “다른 사람 위에 자신을 올려놓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내가 당신보다 경험이 많고, 잘 알고, 나이가 더 많은데, 무슨 충고야!”, 이것이 교만입니다. “내가 제일이며, 타인의 수고를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위해 자존심이 좀 상하면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와 교회를 위해 미움 받을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자존심 다 세우고 예수 믿겠다고 하는 것은 사치입니다. 겸손히 주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 갑시다.

  1. 내 생각이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나아만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장애물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기 원하는 나쁜 습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여호수아의 죽음부터 사무엘까지, 대략 350년 기간을 사사시대라고 말합니다. 사사 시대의 특징은 (삿17:6)“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나아만도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1절)“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신을 정중하게 영접한 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몸에 손을 얻고 뭔가 그럴듯한 종교의식을 행하면서 병을 고쳐 줄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생각과 달랐다고 화가 났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역시, 믿음 생활도 자기 방식대로, 봉사도 자기 방식대로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심지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구원을 받았습니까? (고전1: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우리의 생각과 방식대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대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나아만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돌아가려고 할 때 종이 지혜로운 말을 합니다. (13절)“그 종들이 나아와서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참으로 좋은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여!” 오늘날 나이 많은 어른을 향해 “아버지”라고 하는 말과 비슷합니다. 제가 한 번씩 한국에 방문할 때 “아버지”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인관관계에서 “아버지 어머니”, “형님, 언니”라고 하는 말은 참으로 상대의 마음을 너그럽게 합니다. “아버지여!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면 지위와 체면 자존심, 내 생각과 방법이 중요하겠습니까?”라는 조언입니다.

 

우리는 가족, 이웃, 친구들에게 교회에 왔다가 돌아가려고 할 때에 이런 권고가 꼭 필요합니다. 믿음 생활하다가 낙심이 될 때, 나아만의 종과 같은 권고가 필요합니다. 고집불통인 사람에게 이런 권고가 필요합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종이 하는 권고를 받아들였습니다. 나보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 자녀의 말, 친구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만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많은 장애물을 잘 극복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병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왕하5:15,17절)“나아만이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하나님은 내생각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역사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홍해를 건너도록 했습니까? 다윗이 골리앗을 무엇으로 죽였습니까?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막대기와 돌멩이가 아닙니까?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유치한 방법으로 하셨습니다.

 

축복을 향한 발걸, 치유를 향한 걸음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불신의 장애물이 있습니다. 지위와 자존심이라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 중심적인 생각이라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반드시 믿음으로 극복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