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

성경 : 고린도전서 15:12-22 /제목 : 우리가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

  1. 4.21(마드리드 지역교회 제 14회 부활연합예배)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과 소망이 여러분들에게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기독교의 진리 중에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일반상식이나 지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사건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역시 영혼의 존재와 불멸은 믿었으나 헬라사상의 영향으로 죽음이후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고린도 전서 15장 전체를 할애하여 “우리가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삶이 헛되다.

고린도교회는 부활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있었습니다. 한편은 (12절)“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생각하였고, 다른 한 편에서는(35절)“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는가?”생각하였습니다. 전자는 부활 자체를 의심하는 질문이며, 후자는 부활을 믿지만, 어떻게 부활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지식인들이라 불리는 사두개인은 부활을 부인하였고, 3년간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마저도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볼트만은 “부활은 2천년 어디선가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제자들이 지금도 유럽 각지에서 “부활은 신화”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믿습니까?

그런데 만약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고전15:32)“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당시 사람들은 “살다가 죽으면 끝이다.”생각하며 “좀 더 즐기며 살자”라고 향락에 빠졌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할 인생의 삶이 허무하게 됩니다.

한국은 1년 예산의 1/10에 해당하는 돈이 향락산업에 소비된다고 보도한 바 있었습니다. 이것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통계입니다. “내일 죽으면 끝이니 먹고 마시자”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불경기라도 즐기고, 쾌락을 누리는 곳에는 불황이 없습니다.

한국을 시끄럽게 하는 수많은 부정 사건과 뇌물로 인한 부정 축제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욕심이 많기 때문만이 아닌, 내일에 대한 부활 신앙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라 여겨집니다.

내일을 위한 소망이 없으니까 인간의 욕심을 극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는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고, 부도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바울은 (고전15:33)“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부활을 믿고 있는 성도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속지 말라, 속아서는 안 된다.”라고 교훈하였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기에 오늘만 생각하며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일에 대한 아무른 소망이 없기에 본능과 욕심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신앙은 현실의 고난과 아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해답입니다. 부활 신앙을 꼭 붙잡고 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다.

(14절)“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참 믿음은 부활에 뿌리를 두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 믿음의 뿌리일 뿐 아니라 믿음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믿는다!”라고 말할 때 “무엇을 믿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도신경”은 대단히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부활신앙은 가장 나중에 해야 되는 고백이 아니라, 처음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도 가장 먼저 고백해야 하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을 부인하던 자들을 사명자로 만들었고, 낙심한 제자들을 생명력 있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 우리의 믿음이 강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부활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은 기독교의 뿌리일 뿐 아니라 우리 믿음의 뿌리입니다.

그런데, 부활을 믿으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 분은 없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자들도 처음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과학적인 증거 때문이거나, 이성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고전15:20)“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란 “견본”이란 뜻으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과 동일한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미 완성되었지만,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부활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주님! 주님과 같이 나의 부활을 확신하게 해 주옵소서!”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하면 차돌같이 단단한 마음도 변화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부활을 만들어 낸 것이거나 기독교가 부활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부활이 기독교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을 가능케 했습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신 말씀과 같이, 나도 보지 않고 부활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할 때 성령께서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편안 죽을 수 없다.

역사를 보는 두 관점이 있는데, 역사가 순환된다는 사관과, 직선적으로 보는 사관입니다. 전자는 불교가 믿는 사관으로, 윤회설이라고 합니다. 후자는 기독교 역사관으로 기독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음을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은 한번뿐이며, 다시는 기회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모든 인생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고전15:53)“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은 분명 아픈 것이며, 죄의 결과 온 것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이 죽음의 길을 가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풍랑으로 두려워 떨었고, 믿음의 조상들마저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였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초상집에 가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고작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이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죽음 앞에 슬피 울며 통곡하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요11:25-26)“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을 믿지 못하면 죽음 앞에 설수가 없습니다.

부활만이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 할 수 있으며,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자들에게 “울지 말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환난을 이기고, 죽음까지 이기게 합니다. 스데반 또한 부활을 확신하였기에 죽음을 두려워 않고 순교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 누구도 담대하게 선 사람이 없습니다. 왕도 영웅도, 장군도 죽음 앞에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것은 부활신앙입니다. (계14:13)“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도다.”(시116:15)“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한국 초대 선교사인 헐버트 박사가 쓴 “대한 제국 멸망사”란 책에서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한국인들은 사회적으로는 유교도이며, 철학적으로는 불교도이고, 고난을 당할 때는 미신적이 된다.

따라서 한국인의 종교가 무엇인지 알려면 그가 고난에 빠졌을 때에 어느 쪽으로 기우는 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고 한 말은 참으로 놀라운 통찰력이라 생각합니다.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는 당신과 만나지 맙시다.” “나도 만날까 겁나네요!” 교회 성도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은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모여 의논해서 부활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죽음에서 살아남으로 부활이 있게 된 것입니다. 부활이 교회를 탄생하게 했고,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부활 하셨습니다. 믿습니까?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확신을 갖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과 죽음의 문제가지도 극복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