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제자에서 드러난 제자가 되다.

성경 : 23:50-56 / 19:38-42 / 제목 : 숨은 제자에서 드러난 제자가 되다.

  1. 4.14 (고난주일)

주님의 생을 요약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눅9:58)“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라는 말씀과 같이 짐승과 가축은 거처할 곳이 있지만, 구주가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그에게 누울 자리조차 제공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세상을 떠났을 때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이 묻히기 위해 준비해 놓은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53절)“요셉이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두니” 예수님의 출생 때와 아주 비교가 되는 말씀 입니다. 오늘은 “숨은 제자에서 드러난 제자가 되다.”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아리마대 요셉이 오래 동안 숨은 제자로 살았다.

아리마대 요셉의 사건은 4복음서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4복음서에서 공통적인 내용은 “그가 선하고 의로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부자로, 높은 관직에 있었고, 도덕적으로 선하고 의롭게 살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그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는 평소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변에 동료나 이웃 사람들에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요셉은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밝히지 못하고 “숨어 있는 제자”로 살았습니다. 어쩌면 과거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19:38)“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요셉은 왜 주님의 제자인 것을 숨겼습니까? (요9:22)“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 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더라.” 출교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출교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추방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문과 직장과 사회, 신분과 소유를 잃고 추방되는 무서운 형벌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의 제자인 것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은 편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삭사하기 전 기도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그러나 직장이나 식당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기도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고개부터 숙이고 기도 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부담이 되어, 차라리 혼자서 밥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취향보다 집단문화에 따라야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강요당하하거나, 또 억지로 상대의 분위기를 맞춰 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부담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믿고 난 후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워진 일들이 생기는 것이 아주 정상적입니다. 문제는 이런 경우 나의 정체를 계속 숨길 것인가 아니면, 비록 불편하고 부담이 될지라도 나의 정체를 담대하게 밝힐 것인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는 “사람에게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을 통해 또 한 가지 더 숨길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숨긴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며,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때로 그리스도인임을 숨기는 것 중 하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러했고, 유대인의 선생인 니고데모와 베드로와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드러냈습니다. 여러분! 아직까지 숨어 있는 제자입니까?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을 나타낼 수 있길 바랍니다.

 

  1. 아리마대 요셉이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제자임을 드러내다.

공회는 “쉬네 드리온”이라 불렀으며, 유대 최고 재판기관으로 입, 사, 행정, 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회원은 구약 장로 제도에 따라 70명이었으며,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로 구성되었으며, 대제사장이 의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국회의원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로마는 산헤드린 공회에 사형에 처하는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무혐의라고 했지만 대제사장 가야바는 (막14:64)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했습니다. 공회가 불법을 자행한 것입니다. 훗날 초대교회를 무참히 박해하고, 베드로와 요한을 투옥하며,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살인 단체가 산헤드린 공회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70인 공회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요셉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51절)“요셉은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요셉은 공회원의 한사람으로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습니다. 그가 반대하였지만 공회는 요셉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비록 요셉은 불법재판을 막지 못했지만, 자신의 책무를 잘 감당했습니다.

 

한국에 한부선 선교사님이 계셨는데, 저도 신학교 때 공부를 배웠습니다. 1938년 9월10일 조선 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모여 신사참배를 가결하였습니다. 조선 총독부는 미리 파송된 목사와 장로 총대들을 협박하여 신사참배에 찬성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부선선교사님은 혼자 일어나 총회장에게 “신사참배 결정은 불법입니다.”라고 항의하자 경찰들이 선교사님을 회의장 밖으로 끌어냈습니다. 한부선선교사님은 끌려 나가면서도 “나는 하나님께 상소합니다.” 소리치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한국의 모든 목사 장로님들이 일본의 총칼 앞에 침묵할 때 선교사님은 잘못된 결의에 대해 “아니요”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그는 9개월 투옥되었다 포로교환으로 미국으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런데 8.15를 맞이하여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선교사역을 계속하시다가 은퇴하신 후 미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불의가 난무한 시대 요셉과 한부선 선교사님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한 환경과 주변이 불의한 곳이라고 외면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악하고 부패하다고 세상을 도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사회와 동화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 일찍이 요셉은 악의 상징인 바로의 왕궁에 거하며 총리가 되었고, 모세 또한 바로의 왕궁에서 생활하며 학문을 배웠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벨사살 왕의 신하로서 자문역할과 총리가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왕의 신하로 있으면서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악하다고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신앙의 불모지인 직장과 학교,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하셨는가?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직장으로 나를 보내셨는가? 믿는 사람이 없는 이웃들과 함께 살게 하신 이유를 알고, 그 자리를 피하거나 도망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드러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곳이 직장이든, 사업장이든, 학교이든, 가정이든 그곳이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그곳이 아무리 악하고, 음모가 있어 견디기 힘들다고 해도 그곳에서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곳에서 요셉과 같이 우리에게 맡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1. 아리마대 요셉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제자임을 드러내다.

(막15:48)“날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당돌히”는 “겁 없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이후 공회원들과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이후입니다. (요19:38)“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 일 후”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로 이것은 요셉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의미를 깨달았다는 미합니다.

 

요셉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이때야말로 내가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내가 지금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나는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죽인 그 예수의 제자이다.”라고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함과 동시에 자신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요셉과 같이 자신의 신앙을 숨긴 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니고데모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로 인정받았지만, 유대인들의 시선이 두려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 역시 주님의 제자인 것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19:39-40)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 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1 리트라는327 그램)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요셉의 용기와 결단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요셉과 함께 예수님을 장사하였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판 새 돌무덤을,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주께 드렸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숨어 있는 제자입니까? 두려움 없는 제자로 나타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직장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때로 미움과 손해를 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숨은 그리스도인으로만 살수 없습니다.

 

우리도 아리마대 요셉처럼 “이때를 위해 하나님이 나를 준비하신 것이다.” “지금 가만히 있을 수 없다.”각오가 필요합니다. 나의 믿음을 공개하는 것이 부담이지만 동시에 기회입니다.

 

이제 우리도 세상과 주변 상황이 두려워 숨어 있는 제자가 아닌 요셉처럼 떳떳하게 주님의 참된 제자임을 밝히며 용기 있는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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