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향유, 헌신인가? 낭비인가?

성경 : 요한복음 12 : 1-8 / 제목 : 마리아의 향유, 헌신인가? 낭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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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를 부은 사건은 4복음서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향유를 부은 사람은 마태와 마가는 “한 여자”라고 했고, 누가는 “죄인인 한 여자”, 그리고 요한은 “마리아”라고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향유를 부은 장소에 대해 마태, 마가는 “베나니 문둥이 시몬의 집”, 누가는“한 바리새인의 집”, 그리고 요한은 “베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향유를 부은 시기는 마태, 마가는 유월절 이틀 전, 누가는 시기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요한은 유월절 엿새 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향유를 부은 사건 이후 곧바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신 것으로 보아서 고난 받기 직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순절 중인 오늘은 “마리아의 향유, 헌신인가? 낭비인가?”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마리아의 향유, 낭비인가? 헌신인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의 값은 대략 300데나리온 이라 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마20:2)으로, 300데나리온은 노동자 300일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오늘날 1년 연봉 정도라고 이해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는데, “은 30”의 가치는 4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120일치 노동품삯에 해당됩니다. 그러니까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은 향유는 예수님의 몸값의 75배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이런 상황에 사람들의 반응은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26:8)“제자들이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막14:4)“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절)“가룟유다는 이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팔아 나누어 주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대부분은 혹평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람들이 혹평한 것은 마리아가 향유를 “허비”했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허비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1장에서 예수님께서 병들어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라비를 살려 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마르다는 음식을, 마리아는 향유를 붓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의 헌신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헌신과 낭비는 겉으로 볼 때 큰 차이가 없습니다. 헌신과 낭비는 그것이 시간이던 물질이던 노력이던 둘 다 소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낭비는 결과와 목적이 파괴적으로 나타나지만 헌신은 결과와 목적이 생산으로 나타나는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매월 학비를 보내 줍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녀에 대한 헌신입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헌신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녀는 그 돈을 학비로 사용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즐겼다면, 이것은 낭비입니다. 누가는 낭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눅15:13)“둘째 아들이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여러분! 때로 내가 드리는 시간과 물질, 헌신이 낭비처럼 여긴 적이 없습니까? “만약 내가 주일날 가게 문을 열게 된다면 얼마만큼 더 벌 수 있을 텐데?, 만약에 우리 자녀들이 교회 가는 시간에 공부를 더 한다면, 좋은 성적을 얻어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인데” 때로 우리가 주께 드리는 시간과 물질, 달란트, 갖가지 헌신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물질로 계산하는 것만큼 큰 잘못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까운 마음을 극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헌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부터 받은 은혜와 은총이 크기 때문입니다. (시116: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우리는 시인의 고백과 같이 주님께 헌신하는 이유와 가치를 알고 기쁜 마음으로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마리아의 향유, 수학인가? 사랑인가?

요한복음 6장, 주님은 벳새다 광야에서 제자들에게 수학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요6:5)“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빌립을 시험코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빌립이(요6:7)“각 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백 데나리온이 떡이 부족하리이다.”하였고, 안드레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수학적인 질문을 하신 것은 당면한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에 대해 제자들과 가룟유다는 수학적으로 계산하기 바빴습니다. 가장 먼저 향유의 값을 300 데나리온이라고 계산했습니다. 향유의 값을 계산한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유다의 잘못은 마리아가 주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돈과 숫자로 계산한 것입니다. 사랑을 물질적인 것과 숫자로 계산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습니다.

 

제자들의 방응에 대해 주님은 (마26:10)“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룟유다와 제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고 판단하였지만, 마리아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일을 하면 한 달에 2500유로 월급을 주겠다.” 이것이 수학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첫 월급을 타서 부모님에게 100유로를 봉투에 넣어 드렸습니다. 부모님이 봉투를 열어 보고는 “참으로 고맙구나. 너의 땀과 수고가 들어 있구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봉투를 열어 보고 “내가 30년 동안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킨 것이 고작 100유로 뿐 이란 말인가?”, 누구는 첫 월급을 타서 몽땅 부모님께 드렸다고 하는데?”라고 한다면, 사랑을 수학적으로 계산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로부터 조그마한 선물을 받고도 감격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은 계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무엇과 비교할 수도, 계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수학을 잘 해야 하며, 계산도 잘 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이 수학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을 잘못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고와 사랑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늘 손님 4분을 접대하는데 필요한 경비는 100유로 소요됩니다.”고 말하는 것은 수학입니다. 그런데 “100유로 식사대접을 받은 4 사람이 오늘 25유로 식사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식사 준비를 위해 소요되는 경비는 충분히 계산할 수 있지만, 식사 대접한 사랑의 수고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주님께 드리는 헌신과 사랑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 또한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한 여인이 드린 두 렙돈에 대해 (눅21:4)“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하셨습니다. “두 렙돈”은 하루 품삯 1/64에 해당하는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주님은 그것을 수학적인 화폐 단위로 보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수고는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으며, 과소평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수학이 아닌 사랑의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길 바랍니다.

 

  1. 마리아의 향유, 구제인가? 제물인가?

가룟유다가 (5절)“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했을 때 주님은 (7절)“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간직하게 하라” (막14:8)“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함께 드려진 제물”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위해 속죄물이 되셨는데,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속죄물 되신 예수님과 함께 희생 제물로 드려진 것이란 의미입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유향입니다. 마리아가 드린 유향은 제사에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제물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유다와 제자들이 마리아의 향유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혹평했지만, 주님은 희생 제물로 사용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마리아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마리아의 희생이 전파되길 원하셨습니다. (막14:9)“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마리아의 향유는 먼저, 자신의 오라비를 살려 주신 것에 대한 은혜와 사랑, 감사의 표시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희생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에 대해 (빌4:18)“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돈 얼마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로 보았습니다.

 

성경은 물질 자체를 선하거나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 따라 선하기도 악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혼돈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은 육적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영적인 것이지만, 기도가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악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빌립보 성도들로부터 연보를 받은 사람은 바울이지만, 궁극적으로 제물을 받으시는 이는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빌립도 성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희생하며 헌금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연보는 경제적 능력이나 가치 때문이 아니라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향유가 낭비가 아니듯, 여러분들이 드린 헌신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마리아의 향유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듯, 여러분의 사랑의 수고 또한 계산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의 향유가 주님께 드린 제물이었던 것처럼 여러분의 희생 또한 하나님이 받으시는 희생제물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수고하셨습니까? 그것은 낭비가 아니며, 그것은 헌신이며, 그것은 사랑이며,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임을 굳게 믿고,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