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이 포로생활에서 깨달은 것

성경 : 다니엘 9 : 1 – 7 / 제목 : 다니엘이 포로생활에서 깨달은 것 / 2019. 3. 3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솔로몬이 그토록 화려하게 지었던 성전을 무너뜨리고, 성전에 있는 금, 은, 보화들을 탈취해 갔으며, 왕자들은 죽이고,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을 뽑은 후 사로잡아 갔습니다. 이 때가 바로 BC 587년입니다.

 

또한 유능한 인재들을 포로로 잡아갔는데, 무려 4,600여명(렘52:28-34)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다1:4)“소년”이라고 했는데, 오늘날로 하면 15살 정도라 생각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이 망할 때까지 살았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70여 년간 살면서 예레미야의 책을 읽고 연구하여 깨달은 말씀을 통해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깨달은 것”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애국과 관련된 성경이 많지만, 페르시아 제국과 관련된 성경만 해도 다니엘,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등 무려 7권이나 되며, 이들 선지자들은 억압받는 자신의 동족들에게 하나님을 굳게 의지할 것을 가르치며, 위로하였습니다.

 

일부 이스라엘백성들은 포로가 된 것에 대해 하나님이 버렸다고 생각하여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5절)“우리는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니…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셨나이다.” 다니엘은 우리가 범죄 하므로 하나님이 징계하셨다고 말하면서 재를 덮어쓰고 슬퍼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이후 남북이 분열 되어, 북이스라엘이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208년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통치자가 한 명도 없었고, 남유다는 겨우 6명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북은 적대적인 관계에서 전쟁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우리가 언제까지 포로로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가운데 예레미야가 기록한 책을 통해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2절)“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 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생활의 기간이 70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자유를 잃고 난 다음에 자유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방종함으로 나라가 망하게 되었고, 포로가 된 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자신들의 허물을 자복하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우리 민족도 일본의 침략을 받아 36년간 나라를 잃어 버린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본은 재산을 빼앗고, 젊은이들을 징용으로 군대로, 여성은 정신대란 이름으로 인권을 말살하여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았고, 언어와 종교까지 빼앗고 인권을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그러했던 우리 민족이 해방과 자유를 맞이했습니다. 미 독립전쟁이나 프랑스 혁명 등은 자유를 얻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이 피를 흘리고 싸워서 쟁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얻은 8.15 해방은 우리 민족이 피를 흘리거나 싸워서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미국과 연합군에 의해 일본이 패전함으로 우리는 덤으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신 것은 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자유와 풍요를 주신 은혜를 잊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바로 사용하고 남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1. 정체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현재 한국 외무부에 따르면, 한국인은 본국에서 5천2백만 살고 있으며, 170개국에서 712여만 명이 살고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외국에 살면서 자녀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을 없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포로생활 중 직면한 문제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자국 언어 문제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 언어입니다. 즉 내가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하지 못할 때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자국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만이 아니라 행동양식과 가치관까지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과거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남미를 정복하면서 자국 언어를 사용하도록 했고, 영국과 프랑스 또한 아프리카를 정복한 후에 자국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결과 500년이 지난 지금도 브라질은 포르투갈을, 남미 여러 나라들은 스페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불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는 프랑스, 영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는 영국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두 번째, 외국어입니다. 다니엘 1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생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 학문과 언어를 3년간 배웠습니다. 우리와 자녀들이 외국에 살면서 힘든 것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유익한 것도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현지 언어와 학문을 쉽게 배울 수 있는 점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스페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특권이며, 외국 언어를 알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자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페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고 더 많이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금 스페인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21개국이 모국어로 사용하며,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더 많습니다. 스페인어는 국제 연합의 6개국 공식 언어 중 하나이며, 미국에서 스페인어는 제 2외국어 이며, 전 세계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5억4천만 명이 넘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이국땅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부모는 다니엘의 이름을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이시다”라고 지어 주었고, 하나냐는 “주의 은혜”, 미사엘은 “강하신 하나님” 그리고 아사랴는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의 이름은 모두 하나님에게 속했다는 이름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이었고, 그들의 존재 가치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그들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외국에서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용기도 하나님이었습니다. 비록 강제적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그들은 본래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처럼 처신하라”고 충고합니다. 대체적으로 젊은이들이 고향산천을 떠나 많은 사람들의 눈길에 벗어나면 자유분방해지기 싶습니다. 부모를 떠났으니 잠깐 자유롭게 살아봐야지! 이런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낯설고 물선 타국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항상 자문자답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비록 우리가 외국 땅에 살고 있지만, 이런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1. 자녀교육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오늘날 회당과 랍비와 서기관, 탈무드 등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은 포로 중 성전예배를 드릴 수 없자 회당 중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회당은 두 가지 역할을 했는데, 안식일에는 예배를 드렸고, 평일에는 자녀를 교육하는 학교로 사용했습니다.

 

대개 10가정이 되면 회당 하나를 지어 랍비를 두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투자였습니다. 그들은 돈은 벌었지만 그 돈을 쌓아 두지 않고, 자녀 교육에 투자를 하였습니다. 부모들은 모든 교육을 랍비에게 전적으로 의탁했고, 랍비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이 가진 소질을 점검해서 인문, 과학, 예능, 기능 쪽을 구분해서 진로를 정해주었습니다.

 

포로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니엘과 느헤미야 같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직이나 상업이나 장사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가령 손재주가 있으면 보석 깎는 기술이나 기계를 만드는 쪽으로 지도했습니다. 지금도 보석 가공이 유대인이 세계에서 최고입니다. 어릴 때부터 전문 분야를 터득해 그 분야에 권위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즉 장인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노벨상의 30% 가 유대인들이 받게 된 배경입니다. 전문화된 기술은 바벨론 포로기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상업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장사의 필수적인 요소는 “신용과 정직”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국제 사회에서 가진 가장 큰 자본은 “정직과 신뢰”입니다. 유대인들이 지금 세계 경제를 장악하게 된 것은 포로기간 중에서 형성된 유대상론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경제 수준은 세계 13위며, 기술력은 11위입니다. 대학 진학 율은 52%(미국53%, 일본42%, 중국7%), 문맹률이 세계에서 제일 적은 나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성은 세계 50등으로 나와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일본이 0.7%, 한국은 20% 이지만 법정에서 무고죄가 일본보다 2352배 높고, 위정 죄가 462배가 높은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한국이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1653년, 하멜의 표류기인데, 하멜은 당시 한국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선 사람은 거짓말 잘하고 도적질 잘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우리가 약해진 것은 우리가 스스로 부정직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민족은 아직도 분단국가입니다. 이 말은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얻은 자유를 다시는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또한 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과제는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합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외국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신앙교육”이며, “신뢰와 정직”입니다. “신앙교육과 신뢰와 정직”은 외국에 사는 우리에게 생명과 같은 것이며, 우리 자녀의 장래와 미래를 보장해 줄 것입니다.

 

우리와 자녀들이 외국 땅에서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믿음으로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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