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과 두 사람, 그리고 세 사람

성경 : 전도서 4 : 7-12 / 제목 : 한 사람과 두 사람, 그리고 세 사람 / 2019. 2.17

12세기 몽골제국을 건설한 칭기스칸은 그가 죽기 전, 다섯 자녀들을 불러 모은 후 다섯 아들들에게 한 개의 화살을 나누어 주며 꺾어 보라고 하자 모두 쉽게 부러뜨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섯 개의 화살을 묶은 후에 꺾어 보라고 하자 아무도 꺾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들이 마음을 합하면 누구나 무너뜨리지 못하겠지만, 흩어지면 쉽게 꺾어질 것이다. 형제들이 서로 화합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한 사람과 두 사람, 그리고 세 사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한 사람은 부족하다.

2016년 한국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27.9%로, 2인, 3인 가구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U 28개 회원국 1인 가구 비율은 34%, 그 중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으로 51%이며, 스페인은 25%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혼밥, 혼술, 혼행, 혼영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여행도 하고, 혼자서 운동과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집에서 혼자 살 수 있지만,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입니다. 가정은 혼자서 이룰 수 없습니다.

 

전도자는 혼자일 경우 가장 치명적인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8절)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수고는 끝이 없고, 그 수고에 만족이 없고,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전도자는 아들이나 형제와 이웃이 없이 홀로 살 때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허무감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불청객이지만, 특히 혼자 살 때, 찾아오기 쉽다고 하였습니다.

“허무주의”(nihilism)란 “어떤 것에도 가치가 없다.”는 사상으로, 남보다도 열심히 땀 흘려 수고 했는데, 모든 게 부질없는 것 같고, 왜 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어렵게 들어갔는데,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신 후(창2:18)“사람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좋지 못하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혼자일 경우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어 주셨습니다.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었다고 해서 기분 나빠 할 것 없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데서 오는 오해입니다. “여자를 돕는 배필로 지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남자를 부족하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남자는 여자로부터 도움을 받도록 했다.”란 의미입니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도울 수 있습니다.

 

대부분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밥 달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혼자서 밥 챙겨 먹는 것도 힘들어 합니다. 밥 먹고 나면 “자자”고 합니다. 잠이 오면 혼자 잘 것이지 같이 자자고 합니까? 잠도 혼자서 자지 못하는 것이 남자입니다. 그뿐입니까? “옷 어디 있나”“양말 어디 있나”합니다.

 

그래서 여자들끼리 모여 남편 흉을 봅니까? “글쎄 우리 남편은 꼭 어린애 같아, 우리 집 큰 애기야, 어떨 때는 생선뼈도 골라 달라고 그래, 우리 남편은 달걀 껍데기도 벗겨달라고 그래” 요즘 저도 집사람이 생선뼈도 골라주어야 먹고 달걀 껍데기도 벗겨주어야 먹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삽니다. 2018년 한국의 남자 평균수명이 78.5세인 반면, 여자는 85.1세 7살 정도 차이가 납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예외 없이 여자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5-6세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 살도록 한 것은 가족과 남편을 잘 돕도록 하신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이유로 전도자는 (잠18:22)“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고 한 것입니다. 남자가 일단 결혼만 해도 여호와께 은총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부부, 배우자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길 바랍니다.

 

  1. 두 사람이 필요하다.

한 사람과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개인과 공동체라는 차이입니다. 최소한의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공동체의 유익에 대해 (9절)“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10절)“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의 유익은 한 사람이 넘어졌을 때 서로 일으켜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넘어져 일어서지 못할 때 누군가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질병이나 재난들이 언제 다가올지 모릅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병원에 데리고 갈 사람도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 병을 앓을 때, 노쇠할 때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11절)“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직접적으로 결혼생활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세상 부귀영화를 누려,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는 “내가 갖고 싶었던 모든 것을 가졌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해보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갖지 못한 단 한 가지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시편 128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이 한 식탁에 모여 함께 식사하고 싶다.” “내가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하고 싶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무슨 이런 소원이 있는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천명이나 되는 아내들과 배 다른 형제와 한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이나 한 집에서 잠을 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습니다. 솔로몬은 가족을 위해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소득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기쁨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하십니까? 그러면 솔로몬보다 행복한 자들입니다. 수고하여 얻은 소득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솔로몬보다 행복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가족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때문에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수고를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셨습니다. 소금 원소기호는 “NaCl”입니다. 나트륨과 염소가 분리되면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됩니다. 나트륨은 폭발물로 염소는 살균제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나트륨과 염소가 합쳐졌을 때 인체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이 됩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유익이 얼마나 크며, 두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자에 사람인(人)자를 보면 사람이 혼자서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는 2년이 되면 수레를 끊고 밭을 갑니다. 그러나 사람은 20년이 되어도 자립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결코 생존할 수 없습니다. “나는 독신자야” “저는 사람이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이기적인 것은 없습니다.

하나와 둘은 숫자상 50%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산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18:19)“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시리라” 혼자서도 기도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이 함께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족과 이웃과 함께 주님을 섬길 수 있길 바랍니다.

 

  1. 세 사람은 유익하다.

우리가 가장 합의가 잘 되었을 때 “삼자 합의”를 보았다고 합니다. 두 사람보다 세 사람이 안전성이 있습니다. 부부 두 사람보다 자녀가 있을 때 가족이 훨씬 더 안정감이 있습니다. 요즘 많은 가정이 흔들리는 이유 중 하나는 가정에 자녀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 “여자 셋이 모이면 그릇이 깨진다.”라는 말이 있고, 독일에는 “독일사람 두 사람이 있으면 조직을 만들고, 세 명이 모이면 전쟁을 한다.”, “프랑스 사람은 둘이 있으면 사랑을 하고, 셋이 모이면 혁명을 한다.” 공자의 교훈 가운데, “세 사람이 모이면 거기에는 스승이 한 사람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12)“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세 겹줄”이란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물은 고기를 잡는데 중요한 도구로, 그물은 하나도 독립되어 있지 않고, 긴밀히 결합되어 있습니다. 미국 금문교 케이블의 두께는 92.4 Cm로, 27,572개 철사가 결합되어 만들어 졌습니다.

 

메뚜기는 훈련된 군대보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곤충입니다. 애굽 바로 왕이 메뚜기 재앙이 왔을 때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출10:15-17)“메뚜기가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 메뚜기가 주는 교훈은 “우리가 함께 일할 때보다 강한 것이 없다.”입니다.

 

바울은 교회를“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몸은 많은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돕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단 하나라도 독립되어 있지 않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체 가운데 불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출18:17)“모세의 장인이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네가 혼자 할 수 없음이라” 이드로는 모세가 혼자 일하는 것을 “옳지 못하다.”했는데, 이것은 “나쁘다”란 뜻입니다. 누가 나쁜 사람입니까? 혼자 일하는 사람입니다. “아내를 모른 채하는 남편”, “남편을 모른 채 하는 아내”, “부모를 모른 채 하는 자녀”,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구약의 삼손이 언제 넘어졌습니까? 삼손은 참으로 큰 능력을 받았지만 그의 약점은 혼자였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그의 삶 가운데 함께 일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역도 혼자 했고, 전쟁도 혼자 했고, 배우자를 결정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혼자 결정했습니다. 삼손에게 큰 힘을 가졌지만 혼자서 일함으로 넘어졌습니다.

 

전도자는 한 사람은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는 “함께” 힘을 모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외면하고 혼자서 해보겠다는 것보다 더 큰 교만은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을 때 못할 것이 없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고, 이웃과 함께 하고, 친구와 함께 하고, 교회와 함께 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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