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콤플렉스[열등감]

성경 : 마태복음25 : 24-30

제목 :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콤플렉스[열등감] / 2019. 1. 13

2019년 마음가짐 즉 실천사항은 “내게 주신 은사, 주를 위해 잘 사용하자”로 정했습니다. 분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은사와 재능을 주셨음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한 달란트 콤플렉스(열등감)”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타인과의 비교의식을 갖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 중 95% 이상이 열등감 혹은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외모, 재능, 학식, 재물, 은사, 지위, 직책 등에 대해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본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2달란트, 5달란트 받은 자와 비교할 때 열등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5달란트, 2달란트를 주었는데 “왜 나에게는 1달란트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금 한 달란트”는 약 34Kg 정도로, 노동자 20년 연봉에 해당하는 엄청난 것으로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비교의식 때문에 “작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열등의식과 우월의식은 모두 “비교의식”에서 나옵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불만은 상대적인 빈곤에서 출발됩니다. 불만은 상대적인 비교의식에서 오는 것으로, “나는 키가 작다가 아니라, 나는 영자보다 키가 작다.” “나는 공부를 못한다가 아니라 영식이보다 못한다.”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금수저, 은수저라는 말은 모두 비교의식의 산물입니다. 비교의식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비판하고,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누가 좋은 차를 타면 “허영심이 많아!” 얼굴이 잘 생긴 친구를 보면 “성형한 얼굴이야!”라고 말합니다.

 

가장 나쁜 교육방법은 “비교의식 ”입니다. “너는 형이면서 동생보다 못하냐?” 비교하면 그때부터 힘들어 지며, 공동체가 파괴적이 됩니다. 비교의식에서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고,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한 이유는 편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노래하는 백성들의 환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

 

(고전12:21)은사를 비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눈이 손더러 쓸데없다고 무시하고 머리가 발더러 쓸데없다.”라고 구박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월감의 표현입니다. 우월감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과장되게끔 인식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삼가 할 것은 내 자녀와 남의 자녀를 비교해서 안 됩니다. 나의 부모와 남의 부모, 내 아내와 남의 아내, 내 남편과 남의 남편을 비교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집과 남의 집, 나의 직업과 남의 직업을 비교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비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십, 수백 배 존귀한 존재입니다. (시8:5)“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주셨으니” 하나님은 사람을 만물을 다스리는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가치가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반면 바울은 우리 육체를 질그릇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질그릇을 향해 “야 ! 이 질그릇 잘생겼다 못생겼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야 ! 이 질그릇 참 사용하기 좋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보다 귀한 이유는 신분이나 재산, 입고 있는 옷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로,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며,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바로 알고 잘 사용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주인에 대한 편견의식을 갖고 있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24절)“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했는데 “완고, 강퍅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또한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거둔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불로소득을 일삼는 투기꾼이란 뜻입니다. 즉,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주인을 강도, 무자비한 사람으로 오해했고,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 한 달란트, 34Kg, 노동자 20년 연봉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을 맡긴 주인을 향해 어떻게 “강퍅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인이 종에게 한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은 그를 신뢰했다는 증거입니다. 주인은 종을 신뢰하고 맡겼는데, 종은 주인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대인관계 속에서 많은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에 한국 여성들은 천대를 받았습니다. 여자가 조금 나서면 “여자 주제에”라고 기를 꺾기 일쑤였고, 직장에서 좀 아는 체하면 “그러니까 아직 시집도 못 갔지?” 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집에서조차 “네가 뭘 안다고 나서!” 라는 견디기 어려운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2014년 한국이 여성차별 지수가 세계에서 117등으로 나왔습니다. 맥킨지 조사에서, 한국 기업에서 여성이사의 비율은 겨우 1%밖에 안 되며, 최고경영진 여성비율은 2% 이며, 무엇보다 한국 여성 75%가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스페인은 남녀 임금의 차이가 7%로, 세계에서 가장 차별이 적은 나라로 조사되었습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대한 편견 또한 적지 않습니다. 기성세대는 젊은 사람들에게 “너는 어려서 인생을 잘 몰라!”라고 말합니다. 마드리드에 계신 어떤 목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나이 작은 것이 죄가 됩니까?” 왜 그러느냐? 했더니? “교인들이 말끝마다 목사님은 어려서 잘 몰라! 라고 하는데 참 기분이 나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역사를 바꾼 사람들이 젊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요셉은 삼십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다윗도 3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 역시 젊은 나이에 총리와 장관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30세에 공 사역을 감당하셨고, 12제자 또한 30세 때 가장 활발하게 일했습니다.

 

학벌이 있어야 한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 이보다 큰 편견이 없습니다. 1940년대에 마라톤에 관한 기록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마라톤 42,195 미터를 2시간 30분내에는 결코 달릴 수 없으며, 2시간 30분보다 빠르게 달리면 심장이 파열된다.” 지금은 세계 마라톤 신기록은 2시간 5분입니다. 스스로가 한계를 지어 낙담하는 것은 옳지 않는 태도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편견입니다. 오늘 달란트 비유에서 말하는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왜 우리를 광야로 인도 했느냐?” “왜 우리를 광야에서 목마르게, 배고프게 했느냐?”

하나님에 대한 피해와 편견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고통과 시험을 주시는 분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약1: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시지 아니하시느니라.” (롬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생각한 것 같이 하나님은 무자비한 주인이 아니며,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편견이 생기면 우리의 믿음은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시34:8)“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은 선으로 결론을 맺게 하시는 분이심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달란트의 소중함을 잘못인식하고 있었다.

주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달란트를 잘못 사용하게 했습니다. (25절)“두려워서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었나이다.” “땅에 감추다.”란 말은 “사용하지 않다.”, “버려두다.”란 뜻으로, 주님은 이 부분에 대하여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28절)“그 한 달란트를 빼앗았고”, (29절)“무익하고 악한 종”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

 

달란트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첫 번째는 화패단위로, 돈을 의미하며, 둘째는 우리에게 주신 “재능, 은사”를 뜻합니다. 즉, “돈과 재능, 은사는 사용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으며, 돈과 재능을 버려두는 것보다 악한 것이 없다.”라는 교훈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지 않을 때 그 은사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내용입니다. 끔찍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있는 것이 언제 강제로 넘어가거나 빼앗깁니까? 세상을 떠날 때입니다. 나의 이름으로 된 모든 등기 문서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타인에게 넘어갑니다. 빚을 졌을 때, 그리고 전쟁에 포로가 되었을 때입니다. 남북 이스라엘이 전쟁에 해하여 포로가 되었을 때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금은보화를 모두 빼앗아 갔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늘 본문, 사용하지 않을 때입니다. 은사가 빼앗긴다는 것은 영적 죽음을 의미하며, 전쟁에서 포로를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2019년 실천 사항으로, “내게 주신 은사, 주를 잘 위해 사용하자”로 정한 것입니다.

 

은사에 대한 잘못된 3가지 편견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받은 은사가 최고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은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은사를 서로 비교하므로 남을 비방하며, 멸시하며 은사를 바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나는 모든 은사를 받았다.”(고전12:29-30)“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셋째, “나는 아무 은사도 받지 않았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은사를 주셨으며,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은사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 달란트를 주신 이유를 바로 알고 잘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는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유익을 위해 쓰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벧전 4: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2019년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 능력과 축복을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위해 잘 사용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