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있는 비밀,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 : 창세기 9 : 20-27

제목 : 우리에게 있는 비밀, 어떻게 할 것인가? / 2019. 1.20

본문은 신체적인 비밀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 후에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포도주를 너무 마셔 취해 벌거벗었습니다. 이것을 그의 아들 함이 보았습니다. 즉,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본 후에 두 형제들에게 폭로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옷으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 주었습니다.

 

노아가 술이 갠 후 함의 행동을 알고 함을 저주했으며, 대신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을 했습니다. 노아가 실수하여 자식을 저주한 것은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아버지의 신체적인 비밀을 폭로한 함의 태도는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함이 아버지의 비밀을 폭로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있는 비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타인에게 있는 비밀, 존중해야 한다.

엄마에게 아무 비밀도 없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엄마에게 숨기려 할 때 엄마는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심지어는 거짓말을 한다고 다그칩니다. 그것은 자녀가 비밀을 숨기려는 것은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성숙한 첫 단계를 내 딛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일기장이나 스마트 폰을 훔쳐봅니다. 어떤 분은 방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보았다고 둘러 됩니다.

 

노아는 자신의 비밀과 수치를 폭로한 함에게(25절)“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저주 하였지만, 수치와 비밀을 덮어준 셈과 야벳에게는(27절)“창대케 되는 축복”을 했습니다. 오늘 성경은 노아가 술에 취한 것을 잘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수치에 대해 그의 아들들이 어떤 태도를 가졌느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어떤 사람입니까?(창6:8,9)“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고,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6:22)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으며, 하나님이 명령하신 모든 것을 준행하였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고, 하나님께서 노아를 끔찍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함은 자신의 아버지의 실수를 폭로 하였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실수를 폭로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연약함과 실수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 중 하나는 호기심입니다. 사람은 숨겨진 비밀에 매력을 느낍니다. 어린 아이들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것은 감추어진 선물의 비밀 때문입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내가 물리학자가 된 것은 전적으로 호기심 때문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잘 발전시키면 유익하지만, 잘못사용 하게 되면 큰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남에게 폭로하고 싶지 않는 비밀이 있습니다. 사람이 수술대 올라가는 것보다, 마취 상태에서 자신의 수치가 드러나는 것이 더 두렵다고 합니다. 끝까지 간직해야 하는 비밀이 있는가하면,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런데 강제적으로 그 비밀을 폭로할 때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가족관계, 어린 시절, 실수 등 숨기고 싶은 과거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심지어 “나이”까지 알리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폭로한 사건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 간호사, 국가 기밀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비밀을 지킬 것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잠11:13)“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 우리가 타인의 비밀을 들었다는 것은 그 비밀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덮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비록 자녀가 가진 비밀, 비록 가족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허물과 약점, 비밀까지 덮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1. 자신에게 있는 비밀, 끝까지 잘 지켜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부부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듯 또 교회가 주님에게 순종하듯, 부부 또한 서로 사랑라고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부부 관계를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비밀”은 헬라어 “뮈스테리온”으로, “입술을 굳게 닫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전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알려고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지만, 알려고 하지 말고, 타인에게 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와 주로 바울서신(20회)에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밀”의 반대말은 “알다.”라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알다”는 “야다”인데, (창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에 사용된 단어가 바로 “알다.”입니다. 또한 (눅1:34)“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성경에서 “알다”는 “부부관계”를 의미합니다. 즉, 바울은 “부부관계”는 “비밀”로, “타인이 알려고 하지 말고, 타인에게 말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신체적인 비밀을 경험하게 됩니다. 5살 때까지 남매가 함께 목욕을 잘 하더니 언젠가부터 따로 하려 합니다. 엄마가 목욕을 시켜 주었는데, 언젠가부터 혼자 하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체가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게 때문입니다.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비밀을 유지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노출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사랑의 발전소”라는 책을 지은 권성수 목사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 특히, 여성들이 자신들의 몸을 잘 보존해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콜라비유입니다. 사람들은 콜라를 마신 후 빈 병을 쉽게 버리는 것처럼 남자가 여자에 대한 감정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녀가 서로 만났다 너무 쉽게 헤어집니까? 그렇게 좋아하다가 갑자기 싫어합니까? 그것은 상대의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 누이 다말을 억지로 범합니다. 문제는 암논이 다말을 범한 후의 태도입니다. (삼하13:15)“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일어나 가라” 암논이 다말의 육체적인 모든 것을 알고 난 후에 그를 미워하여 버릴 뿐 아니라 쫓아냈습니다.

 

둘째, 댐 비유입니다. 스페인 북쪽, 에브로 강의 모체가 되는 “에브로 호수”가 있습니다. 에브로 강은 스페인에서 가장 긴 강으로 930km나 되며, 북쪽 피코 데 유로파에서 시작하여, 사라고사를 거처 “또르또사”를 경유하여 지중해로 들어가는 긴 강입니다. “에브로 호수”는 전체 둘레가 60Km정도로 스페인에서 가장 큰 호수입니다.

 

에브로호수는 댐을 막아 물을 몇 개월 모은 후에 1000km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필요할 때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하도록 수문을 엽니다. 그런데 댐을 중간에서 열어 되면 아래 가옥과 논과 밭은 삽시간 초토화 될 뿐 아니라 황폐화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은 부부에게만 사용하도록 주신 것인데, 성을 남용하면 자신과 타인, 모두를 황폐화 시킨다는 교훈입니다.

셋째, 사과 꽃 비유입니다. 사과 꽃은 보통 4월에 핍니다. 그런데 사과 꽃이 4월이나 5월에 떨어져 버리면 가을에 사과 열매를 맺힐 수 없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우리 몸을 소중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이 결혼을 한 남자와 여자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성적인 에너지를 순간적인 감정으로 중간에서 포기하거나 남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막대한 손실을 가져 온다는 가르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비밀로 남겨 두신 것을 사람이 함부로 드러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호기심 때문에 우리에게 허락한 비밀을 잘못 사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비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삼상 6장)블레셋으로부터 빼앗긴 법궤가 돌아오자 벧세메스 사람들은 그 법궤 안에 무엇이 있는가? 들려 보다 50,070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왜 법궤를 본 자들이 죽임을 당했는가? 궁금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죄인이 하나님을 결코 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사람들이 법궤를 보지 못하도록 “속죄소”로 덮게 했습니다.

구약의 법궤를 덮는 “속죄소”는 예수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덮어주신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덮다.”는 “죄를 속죄하다.”, “죄를 용서하다.”는 뜻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덮어주신 우리의 죄에 대해 누구도 시비할 수 없고, 허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7:1-2)“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23절)“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여기 “덥다.” 또한 “허물을 용납하다.”, “허물을 덥다.”라는 뜻으로, 법궤를 덮는 “속죄소”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궤를 본 이스라엘이 죽임을 당했는지? 함이 왜 저주를 받았으며, 셈과 야벳이 축복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화와에게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되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창2:16-17)“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그런데 아담과 화와는 호기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비밀로 남겨 둔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 비밀들을 자랑합니다. “천국에 갔다 왔다.”“천국을 보았다.”“의사가 고칠 수 없는 병을 내가 고쳤다.”라고 말하므로, 자신이 신령하다는 것을 선전합니다. 심지어 언제 재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24:36)“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보여 주신 은혜들을 남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있는 비밀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비밀 또한 끝까지 잘 지켜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비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호기심 때문에 우리에게 허락한 비밀들을 잘못 사용하거나 폭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비밀을 때가 될 때까지 잘 간수 하고 지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