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람들이 잘못 알고 가고 있는 길

성경 : 요한복음 14 : 1- 6 / 제목 : 사람들이 잘못 알고 가고 있는 길 / 2018.12. 9

우리가 성경에서 잘못 알고 있는 내용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때,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쳐서 갈라 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성경에는 (출14:21)“모세가 바다위로 손을 내 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토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에 예수님께서 출생하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세 사람이 찾아와 경배했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성경은 세 사람이라고 기록한 곳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동방박사들이 드린 세 가지 선물을 통해 세 사람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도마는 솔직하게 “주여 우리는 어떻게 천국에 가는지 잘 모릅니다.”라고 물었습니다. 반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기보다 추측이나 자기 생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잘못 알고 가고 있는 길”에 대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종교는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사람들이 여러 종교를 비교할 때 마치 사람이 산에 오르는 것으로 비유하곤 합니다.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지만 모두 정상에서 만나는 것처럼, 모든 종교 또한 가는 길이 다르지만 똑 같은 곳에서 만난다.”

여기에서 말하는 모든 종교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교와 이단과 샤머니즘과 같이 종교행세를 하는 하급 종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행복을 추구하는 고등종교를 말합니다.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 “고등종교란 개인의 사리사욕을 일삼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행복 추구를 목표로 삼으며, 높은 도덕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등종교라고 해서 모든 종교가 같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더 많습니다. 제가 종교가 서로 다르다고 말하는 것보다 다른 종교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 불교계 학자이며, 승려인 동국대 윤호진교수가 “불교가 본 기독교”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와 불교 두 종교 간에는 넘을 수 있는 벽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신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불교인들에게 신의 존재를 아무리 설명해도 기독교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신의 개념에 도달시킬 수 없습니다.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신이 되고자 노력하고 수행하는 종교입니다.” 불교계 대학자가 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해 불교와 기독교를 같은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또한 불교와 함께 힌두교는 범신론과 윤회 사상을 믿고 있습니다. 범신론이란 모든 자연과 사람이 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신이기 때문에 남을 믿고 의지할 필요가 없으며,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이미 정해진 것이므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윤회사상이란 사람이 태어나 악한 일을 하면 다음 세상에는 짐승이나 나쁜 미물로 다시 태어나며 선한 일을 하면 다음 세상에는 귀족이나 높은 신분으로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윤회사상은 “이번 세상은 불행했지만, 다음 세상에서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죽음을 환상적으로 생각하게 하며, 범신론 사상은 “내가 불행하게 된 것은 모두 숙명이야!” 현실에 대해 무책임하게 합니다.

불교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이며, 유교는 조상을 섬기는 도덕 종교이며, 힌두교는 인간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현세적인 행복과 도덕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반면 기독교는 죄인 된 인간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게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지만 모두 정상에서 만나는 것처럼, 모든 종교 또한 가는 길이 서로 다르지만 만나는 곳은 똑같다.”라고 하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1. 사람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다.

맨손으로 올라 갈 수 있는 산이 있는가하면 히말라야 K2 봉이나 에베레스트 산은 쉽게 올라 갈 수 없습니다. 지구상에는 해발 8,000m가 넘는 거봉이 14개가 있는데, 많은 등반가들이 “8,000m 산 등정에 뛰어들었지만,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작은 산에 오르는 것처럼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종교가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구제, 성지순례, 하루 5번 기도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코란에 “기도는 사람을 낙원의 중간에 데려가고, 금식은 그 문 앞에까지 이르게 하며, 구제는 그곳에 들어가게 한다.”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교리에도 “극락을 위해 적선이 필요하다.” 불교에서는 선행으로 지은 죄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을 “과응보설”이라 하는데, 기독교에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거나 인정받는 공로설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왜 선을 행하느냐?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마10:41)“냉수 한 그릇이라도 내 이름으로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하셨습니다. 구원은 선행으로 말미암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축복과 상으로 보답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로마교 역시 그들이 믿는(토빗경 12:9) “구제는 죽음에서 사람을 구원하고 죄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그래서 수녀는 처녀로서 평생을 보내기도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처음 신부였습니다. 그는 고행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행과 금식, 기도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로마서에 있는 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는 말씀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종교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력 종교요, 다른 하나는 타력 종교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자신이 스스로 길을 찾아갑니다. 찾아가는 방법도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요한복음(요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육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타이타닉 영화가 개봉되어 흥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개봉 20주년을 기념하여 2018년 2월1일에 3D로 만들어 재개봉하였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되었을 때 1514 명이 죽었고, 706명이 구조되어 살았습니다.

 

706명은 스스로 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구조대원들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구조대원들이 건져 주므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원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갈수 있다.” 말하지만 기독교는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대 전제입니다. 오늘 주님은 예수그리스도께 유일한 구원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1.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죽음과 죽음 이후의 문제는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주제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도마는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 질문합니다.

 

(5절)“도마가 가로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니까” 도마는 죽음이후의 문제에 대해 알고자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잘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나쁜 태도가 아닙니다.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나사로 사건은 죽음 이후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눅16:22-23)“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사람이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죽어 간 곳이 서로 달랐습니다. 부자가 간 곳을 (요16:23)“음부”라고 했고, (마9:47)“지옥”, (마8:12)“고통스러운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간 곳은 “아브라함의 품”, (요14:2)“아버지의 집”, “천국”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강원도에 황지라는 탄광촌이 있었습니다. 탄을 캐는 사람들은 자신을 막장인생이라고 합니다. 탄을 캐려면 수백 미터 지하에 들어가 40℃가 넘는 곳에서 하루 8시간을 일을 하면 탄가루가 폐 안으로 들어가는데 많은 광부들이 진폐증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광부들은 아이들에게만은 그 직업을 물려주지 않으려 합니다.

“어느 광부의 아들이 쓴 시가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신다. 나는 공부를 못 하니까 나도 커서 광부가 되겠지. 그런데 아버지는 절대 광부가 되지 말라 하신다.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너는 광부는 절대로 되지 말라하신다.” 광부 아버지는 자녀에게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탄을 캐는 광부가 되지 말라 합니까? 광부의 최후가 어떻게 끝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재미있게 사는 우리를 한사코 버려두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곤히 단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깨워 이곳에다 데려 놓게 합니까?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없는 인생의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상징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지옥에서 천국을 바라본 부자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눅16:24)“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우리가 힘써 전도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옥을 피해야 하며, 천국을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길은 혹 잘못 갔을 때 한 두 시간 돌아서 다시 돌아올 수 있지만, 잘못 간 인생의 길은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다 같습니까?” “사람이 스스로 구원의 길을 갈 수 있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끝입니까?” 모두 틀렸습니다.

 

오늘 주님은 바른 인생의 길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6절)“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유일한 바른 길입니다. 주님과 함께 우리 인생길을 경주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