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창세기 26:26-33 / 제목 :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자 / 2018.11.25
오늘 본문은 이삭을 괴롭히고 재산에 손해를 끼치고 추방한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믿음의 사람 이삭을 향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 믿는다고 괴롭힌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자네를 보니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것 같아!”라고 하는 말과 비슷합니다. 오늘은 이삭을 통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자, 세상 사람도 알고 있다.
성경에 가장 바보 같고 무능해 보이는 사람이 이삭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창세기 26장에서만 이삭이 여섯 번이나 우물을 팠는데, 모두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생명과도 같은 우물을 여섯 번 빼앗겼음에도 낙심하지 않고, 양보하며 다른 곳을 떠나 또 우물을 팠습니다.
중동에서 우물을 팠을 때 물을 얻는 경우는 1%도 안 되며, 혹 물을 얻는다고 해도 기름이 섞여 나와 물을 마실 수 없어 지금도 우물의 가치는 모스크 값어치보다 더 소중하게 취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그 소중한 우물을 빼앗기도 낙망한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블레셋 사람들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삭이 우물을 빼앗기고도 다투지 않고, 쉽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것과 다른 곳에서 우물을 파면 항상 우물물이 솟아난 것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우물을 빼앗은 우리는 항상 쪼들리는데, 우물을 빼앗긴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얻어 농사도, 목축업도 잘 되는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디어 의문이 풀렸습니다. (28-29절)“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음으로”
아비멜렉 왕과 블레셋 사람들이 오래 동안 이삭을 지켜본 결과 여호와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하여 축복하신다는 것과 이삭을 괴롭혔다가 오히려 자신들이 큰 해를 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이삭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화친을 청해 온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로마시대 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무려 250년 동안 박해를 받으며, 화형을 당하거나,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귀족사회가 박해 받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귀족 집안의 아들과 딸들은 방탕하고 문란하데 기독교인 청년들은 올바르고, 성적으로 깨끗하고 매사에 모범적인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귀족 집안에서 아들과 딸들을 시집과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로마인들 가운데서 마땅한 사윗감과 며느리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허랑 방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족 가문들은 앞 다투어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 여자를 며느리로, 남자를 사윗감으로 삼았습니다. 귀족 집안으로 결혼한 이들은 자녀를 낳아 믿음으로 양육하였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로마 귀족사회는 기독교인들이 확산되면서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교회사에서 귀족사회가 먼저 복음을 받은 역사는 로마사회가 유일합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사람은 박해하던 사람조차 잘 알았습니다.
여러분 요셉을 총리로 등용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애굽 바로 왕입니다. 다니엘을 총리로 세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다리오 왕이었습니다. 3년 6개월 기근 가운데 선지자 100명에게 양식을 공급한 오바댜를 누가 왕궁 책임자로 세웠습니까? 유다 왕 중에 가장 악하다고 하는 아합 왕이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머물 곳이 없을 때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블레셋 왕이 보호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헤롯의 쫒김을 받았을 때, 어디로 피신하였습니까? 애굽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세상은 악하고 때로 우리를 대적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무기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5:23)“에녹은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믿음의 사람이란 위대한 업적 남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신앙생활이 어렵고 피곤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갖고 살기를 바랍니다.
-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화평의 사람이다.
아비멜렉이 (29절)“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아비멜렉은 수차례 우물을 빼앗고 괴롭혀 놓고 “우리가 너에게 선한 일만 행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또한 화해를 하려면 그동안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보상을 하거나, 빼앗은 모든 것을 돌려주어야 했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것은 사기이며, 화해가 성립될 수 있는 조건입니다. 나에게 많은 재산의 피해를 입히거나 많은 돈을 빌려간 사람이 빈손으로 찾아와서 “우리 앞으로 서로 다투지 말고 잘 지내봅시다.” 라고 하면 화해가 되겠습니까?
빌레몬의 집에 오네시모란 종이 막대한 재산에 손해를 끼치고 로마로 도망을 쳤습니다. 로마에 간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이 사실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몬1:18)“오네시모를 용서하는데 손해가 있으면 내가 갚겠다.” 오늘날 표현으로, “네 구좌에 돈을 입금하겠으니, 오네시모를 용서해 다오!”라고 하였습니다. 화해를 하려면 적어도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제시했지만,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30-31절)“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 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서로 맹세한 후에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바보입니까? 아니면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까? 아니 생각이 깊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삭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물을 빼앗겼을 때 마음이 아팠고, 쫓겨났을 때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왜 속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습니까?
설교가 이쯤 진행되면 중고등부 학생 정도만 되어도 “목사님! 우리도 이삭과 같이 그렇게 하라는 말씀하려고 그러시지요!”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삭과 같이 하라고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이삭이 바보처럼 행동했는가? 하는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전쟁입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있을 뿐입니다. 즉, 평화가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5: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화평케 하는 사람”이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님께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저와 여러분을 화목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엡2:16)“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화평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주어진 것입니다. 즉, 주님은 화평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이삭은 사악한 아비멜렉과도 화평을 맺고자 한 것은 우리 주님께서 먼저 사악한 죄인들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화평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주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가 일본과 독일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킴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 세계는 2차 대전을 일으킨 일본과 독일이 얼마나 밉고 원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 연합군은 오히려 전쟁에서 패한 독일에 경제 지원하여 부흥을 도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럽 부흥 계획(ERP)또는 마셜 플랜”이라 부릅니다. 당시 미 국무장관이던 마셜이제안한 것으로, 미국은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비롯 유럽에 대해 1947년부터 4년간 총 130억 달러(현재 시가 약 1300억 달러)에 해당되는 경제적, 기술적 지원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서유럽 국가는 물론, 독일까지 20년 만에 유례없는 성장과 경제 부흥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화평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으로, 용서와 양보로 주어집니다. 불화로 가득 찬 세상, 주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세상에서 직장과 가정, 교회에서 화목케 하는 사람, 화평을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자가 받은 축복?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무엇이라 말합니까? (29절)“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아비멜렉은 자기 손으로 이삭의 우물을 여섯 번이나 빼앗고 쫒아냈는데, (32절)“그 날에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여기 “세바”란 일곱”이란 뜻으로, 이삭이 “일곱 번째 또 우물”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아비멜렉이 왜 이삭을 찾아와 “화해하자! 맹세하자!”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이삭을 상대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한 것입니다.
이삭이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26:12)“이삭이 농사하여 그 땅에서 백배나 얻었고” 이삭에게 농사는 부업입니다. 이삭의 본업은 목축업입니다. 또한(창26:12-14)“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더라.”
여기 “마침내”란 처음부터 부자가 되고 잘된 것이 아니고, 실패와 시련을 통해서 결국 잘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닌 많은 노력과 시련을 통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삭의 물질과 범사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26:24)“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에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가정과 자녀의 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은 한 아내와 평생을 같이한 모범적인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이삭과 리브가를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야곱, 요셉, 이스라엘의 12지파,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대 왕들이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이삭은 믿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생에 최대의 축복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삭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삭은 화평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은 물질과 가정, 자녀의 축복, 그리고, 믿음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또한 이삭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이삭이 받은 물질, 자녀, 가정, 믿음의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