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소유한 믿음은

성경 : 야고보서 2 : 1- 6 / 제목 : 우리가 소유한 믿음은  / 2018. 9.30

야고보서는 총 108절로 기록되었는데, 그 중 절반이 넘는 60구절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강력 명령형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표현한 명령어법은 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문체이기도 합니다. 야고보 사도 또한 명령체로 교훈할 때에 사람들이 싫어할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명령형으로 교훈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이 주로 언제 명령을 합니까? 여러 번 말을 했는데 잘 듣지 않거나 아주 급하거나 위험할 때 사용합니다. 남편이 차를 운전 중 졸고 있을 때, “여보! 이봐 조심해” 합니다. 부인이 남편에게 “이봐” 했다고 기분 나빠 하는 대신 고마워 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서신에서 대부분 명령형으로 사용한 것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훈을 잘 듣지 않았고, 상황이 너무 급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야고보 사도가 명령한 말씀을 통해 “우리가 소유한 믿음”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가 소유한 믿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믿음이다.

부모가 외지에서 공부하는 자녀에게 6개월분 학비와 용돈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 후 다시 학비와 용돈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자녀를 믿고 있는 부모는 무슨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며 아무 말 없이 학비를 보냅니다. 그런데 또 한 달 쯤 지났을 때, 학비와 용돈을 보내 달라고 합니다.

 

그럴 때 부모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않습니다. “아! 혹시 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게임에 빠진 것이 아닌가? 나쁜 친구와 어울린 것이 아닌가? 유흥비로 탕진한 것이 아닌가?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에 부모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때 명령형으로 말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수고로이 복음을 전하며 가르쳤는데 성도들은 잘못 믿고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욕하고 싸우며, 방탕하고 사치하고 말로만 믿고 행함이 없습니다. (2:14)“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9절)“네가 하나님을 한분이신 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드느니라.”

 

이 때문에 야고보 사도는 참된 믿음에 대해 명령하고 있습니다. (1절)“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니…(13절)심판이 있으리라.”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고 할 때 무엇을 말하는가?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제가 매 주일 축도할 때 사용하는 용어와 동일합니다. 주인이란 뜻입니다.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주”라고 부르며, 신하가 왕을 부를 때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라 부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면서도 마음대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신 “구원자”란 뜻입니다. (행16:31)“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고 “그리스도”란 이름은 예수님의 직함, 직분명입니다.

 

김학우는 개인 이름이고 목사는“직함”입니다. 예수는 개인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직분명입니다. “그리스도”란 이름은 히브리어는 “메시야”인데, “구세주”란 뜻으로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 “구원하기 위해 직분을 감당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고 할 때에,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적어도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구세주이시며, 나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인이신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구원자이심을 믿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아 계시며, 장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롬10: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믿음을 소유하길 바랍니다.

 

  1. 우리가 소유한 믿음은 사람을 통해 나타난다.

오늘 본문 2-4절을 쉽게 말하면, 우리교회 집사님들이 교회당 입구에서 안내할 때 비싼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을 때와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대하느냐 묻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가진 믿음은 두 경우의 사람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먼저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합니까? 친절하고 공손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면접을 보러갈 때, 소개팅을 할 때, 상견례를 할 때,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장에 갈 때에 값비싼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을 들고 갑니다. 빌려 입고 가기도 합니다.

 

반대로 가난해 보이고,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을 어떻게 대합니까?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아침에 장애자를 만나면 제수 없다고 침을 뱉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대충 옷을 입고 외출했다가 이유 없이 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제법 괜찮은 옷 한 두 벌 정도는 필요합니다. (잠31:22)“자기를 위하여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면접을 보러갈 때, 소개팅을 할 때, 상견례 할 때, 외출할 때 좋은 옷을 입고 가려면 좀 괜찮아 보이는 옷이 필요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금욕주의 종교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치와 낭비를 장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후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였습니다. 풍부하되 절제하며, 가난하지만 인색하지 않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어도 된다. 안 된다.” 말씀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 또한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과 남루한 옷을 입은 것 때문에 책망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자체를 보지 않고, 그 사람이 입은 옷을 보고 판단하는 것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사람도 남루한 옷을 입으면 사기꾼으로 취급하며, 사기꾼이라도 아름다운 옷을 입으면 천사처럼 대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으면 소중한 남편과 아내가 되고, 남루한 옷을 입으로 천한 남편과 아내 취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로마 백부장이 자신의 종을 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칭찬하였습니다. (눅7:2)“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당시 노예는 연장에 불과 했고, 짐승보다 나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자신의 종을 “사랑하는 종” 한 인격체로 보았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사람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심부름하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운전하는 사람”등으로 대할 때, 비참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 부하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자녀를 어떻게 대합니까? “공부하는 사람”, 나이 드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합니까? “고집불통”, “꼰대”로 보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참 믿음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주님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고, 어린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셨고, 어린소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신분, 배경, 겉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자체입니다. 그 사람이 가진 신분과 배경과 상관없이 사람 자체를 소중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우리가 소유한 믿음은 물질을 통해 나타난다.

야고보 사도는 5-6절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를 비교한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이 가진 돈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조건 부자에 대하여 정죄하지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6절)“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업신여기고 힘이 없다고 법정으로 끌고 가는” 부자에 대하여 경고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돈에 대한 교훈이 많은데, 대표적인 두 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주님은 돈이 주인이 되면 동시에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돈의 종이 된다.”라는 말은 하나님보다 돈의 지배를 더 많이 받는 것을 말하지만, 쉽게 말하면 집에 불이 났다고 했을 때 가족을 구하기보다는 장롱 속에 있는 보석과 돈을 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딤전6: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돈을 첫번째 자리에 둔다.”는 것을 뜻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향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란 말은 “나는 당신을 최고로 생각한다. 당신보다 우선되는 사람이 없다.”란 뜻입니다. 즉,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가족, 부부, 자녀, 믿음, 사랑보다 돈이 우선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반면에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에 대해 말하길(빌4:18)“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했습니다. 바울은 단순히 돈 얼마를 드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드리는 제물로 보았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돈을 송금해 줍니다. 그런데 부모님에게 그 돈은 사랑과, 눈물, 괴로움이 얼룩져 있는 부모님의 분신과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달란트, 물질을 주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내가 주님의 권위아래 있음을 타나내는 신앙고백입니다. 내가 물질의 종이 아니며, 하나님의 종이며, 내가 돈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며, 주님을 사랑하는 행동입니다.

 

미국에서 두 가지 재판결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떤 부부가 어머니를 집에 두고 휴가를 갔다가 왔는데,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무죄였습니다. 이유는 본인이 움직일 수 있음에도 굶어 죽었기에 본인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는 개를 집에 두고, 휴가를 갔다가 돌아 왔을 때 개가 굶어 죽어 있었습니다. 그도 재판을 받았는데,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개는 스스로 먹을 수 없으므로 주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부모가 굶어 죽은 것에 대해서 아무 죄가 없고, 개가 죽은 것에 대해 죄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소중한 믿음을 물려받았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믿음은 사람을 통해 나타나야 하며, 또한 물질을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올바른 믿음을 끝까지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