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명절에 무엇을 하셨는가?

성경 : 요한복음 5 : 1- 9  / 2018. 9.23

내일은 한국 명절 추석입니다. 한가위, 중추절 등으로 불리며, 설과 함께 대표적인 명절입니다.   유대인들도 명절을 소중하게 여겼는데, 그 중 3대 명절은 유월절, 오순절(맥추절), 초막절(장막절)에는 20세 이상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한국명절은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가지만, 유대인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의도적으로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명절에 행한 사건을 5-7장, 3장에 걸쳐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명절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주님은 명절에 병든 자를 찾아 고치셨다.(5)

명절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베데스다 연못에 모였습니다. 그것은 베데스다 연못에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면 어떤 병이라도 낫는다는 소문을 듣고 모인 것입니다. (5: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절뚝발이,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들 모두는 소외되고, 아픔을 가진 자들입니다.

 

주님이 왜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베데스다 연못으로 가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많은 병자들 중에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가서 (6절)“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 낫고자 합니다.”고 하면 되는데,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내려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38년 병자는 지금껏 자신이 병을 고침 받지 못한 것이 다른 사람들 때문이란 피해 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38년 된 병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나를 도와 줄 사람이 없다.”라고 한 말입니다. “베데스다”란 “자비의 집”이란 뜻인데, “자비의 집”에 자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38년의 병보다 더 큰 슬픔은 “자비의 집에 자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불행한 것은 고통 자체보다 그 고통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AD 37년경에 살았던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보통 명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군중이 200만 명이 넘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명절에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단 한 사람, 가장 소외된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아플 때 병원에 함께 갈 사람이 있습니까? 슬플 때에 눈물을 닦아 줄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함께 대화하고, 식사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과 외국에서 서로 주안에서 만나 찬양과 기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롬12: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슬픔의 바다입니다. 누구나 상처를 건드리면 눈물샘이 펑 터지는 아픔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은 고통이 많아 슬픈 것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슬픔이 큰 것입니다. 대단한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해주는 것, 그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 잘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의 기도가 응답될 때입니다. 내가 기도해준 대로 친구의 아이가 장학금을 받고 친구 남편이 승진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무겁습니다. 우리 집 아이가 불합격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친구 아이가 합격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모처럼 주일날 예쁜 옷을 입고 온 것을 보면, “아! 지난주간 백화점에서 70% 세일 하던데 얼마 주었어요!” 이렇게 하지 말고 “참 예쁘다 잘 어울린다고 합시다.” “식사한 후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합시다.” “설교 말씀을 들은 후에 목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앞으로 이렇게 해 봅시다.

 

예일대학 총장이 퇴임하면서 새로 부임하는 총장에게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A학점을 받은 학생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십시오! 그러면 훗날에 훌륭한 교수가 되어 모교로 돌아올 것입니다. C학점 이하를 받는 학생들에게는 격려와 용기를 주십시오! 그러면 모교를 위해 수천 달러에 해당하는 기부금을 가져올 것입니다.” 이 말과 같이 예일대학은 수백 년 동안 A학점 받은 학생들뿐 아니라 C학점을 받은 학생들까지 모두 모교를 돕고 있습니다.

 

  1. 주님은 명절에 배고픈 자를 찾아 먹이셨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왔을 때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그러자 5천명이 넘는 군중들이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 왔습니다. 당시 군중들은 유월절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떡을 얻어먹는 편을 택했습니다.

 

주님은 배고픈 군중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기적을 베풀어 떡을 먹이셨습니다. (요6: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주님은 떡과 고기를 원대로 먹게 하셨습니다.

 

4복음서 저자들은 떡을 얻어먹은 5천 명 중에 주님을 영접했다든지, 제자가 되었다든지 하는 기사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이 배불리 먹고 즐거워할 명절에 오히려 배를 곪고 있는 백성들이 안타까워 조건 없이 먹이신 것입니다.

 

(마9: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주님이 명절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우선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명절을 지키기 위해 성전을 찾았지만, 형식뿐이었습니다. (사1: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너희는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번 유월절에 제사를 드리고 왔다.” “비싼 송아지 제물을 드리고 왔다.” 오늘로 말하면 “오늘 교회당에 갔다 왔다.”는 말이고, 회사로 치면 출근 도장만 찍고, 퇴근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언제 감동을 받습니까? 주님께서 그들을 배불리 먹였을 때 임금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부인하고 낙심하여 고기를 잡으러 간 베드로를 찾아 떡과 생선을 구워 놓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하셨습니다. 그 후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삭개오에게(눅19:5)“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겠다.”하였을 때, 삭개오는 (눅19:8)“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주님이 오늘 너의 집에 묵으면서 함께 식사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를 아끼고, 도와주고, 함께 섬기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함께 식사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합니다.

 

동시에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는 영적인 식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3:20)“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께서 명절에 5명을 먹이신 것은 저들을 아끼고 사랑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저들은 병 고침과 떡을 얻어먹기 위해 주님을 따랐지만, 책망하지 않으시고 먹이셨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이 올무가 됩니까? 우리의 삶이 위축됩니까? 주님은 우리가 누리길 원하십니다. (요10:10)“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얼마만큼 누리길 원하십니까? “풍성하게 누리길” 원하십니다.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1. 주님은 명절에 형제들에게 참 믿음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에게는 육신의 형제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마13:55)“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예수님의 형제들은 자신의 형님이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시골 갈릴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 한마디 하였습니다.

 

(3-4절)“지금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이 오고 있는데, 어찌 시골에 박혀 있습니까? 사람들이 모이는 명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이적을 보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보이소서!”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기적을 베풀면 예수님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동생들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5절)“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 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의 형제들이 무엇을 보고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이 행하는 이적을 믿었습니다. (3절)“당신이 행하는 일을”, (4절)“이 일을 행하려거든” 이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말한 것으로, 그들은 오병이어 기적,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은 믿었다는 것을 뜻입니다.

 

이적을 믿는 믿음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신학자들 중 이적조차 믿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넜다고 한 것은 바로 갈대밭이었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 마리를 가지고 5천 명이 먹었다고 하는 것은 함께 자기 도시락을 펴놓고 먹은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 역시 이적은 믿었지만 그럼에도 요한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오늘 우리에게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요20:31)“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고향을 떠나왔기에 명절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명절에 아주 소중한 것을 기억하셨습니다.

 

주님은 명절에 가장 병든 자를 찾아 병을 고쳐 주셨고, 주님은 명절에 배고픈 자들을 찾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명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지 않으시고, 자신의 형제들이 참 믿음을 갖도록 함께 고향에 머물렀습니다.

 

내일은 한국의 고유의 명절입니다. 사람들은 명절에 모여서 무엇을 합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이 명절입니까? 명절에 송편이 없어도, 떡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명절에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