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있는 짐,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 : 마태복음 11 : 28-30  / 2018. 9.16

우리가 공항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짐을 들고 다녔는데, 요즘은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다닙니다. 우리도 며칠간의 여행을 위해서도 제법 큰 가방을 채워가지고 갑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주님을 따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지고 있는 짐이 무엇이며, 그 짐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나는 하루 평균 5.4시간 잠을 자고, 하루 11시간 3분 공부한다. 나는 일주일에 5일은 아침식사를 거르며, 점심과 저녁은 보통 햄버거나 페스트 푸드로 식사를 대신한다. 나는 일주일에 아빠의 얼굴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나는 한국에 있는 고 3이다.”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입니다.

 

“취업포털 잡 코리아”가 직장인 1,461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의 평균일상”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직장인들은 하루 평균 10시간46분을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전 6시48분쯤 일어나며, 잠은 평균 6시간 12분자며, 직장인의 절반 이상은 출근 시간에 쫓겨 아침식사를 못하며, 30% 정도는 출근 후 간식정도로 식사를 대신 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퇴근시간은 저녁 7시8분이며, 일주일간 야근횟수는 평균 3.5일이며, 정시에 업무를 마치는 경우는 1.5일 정도며, 일주일에 평균 2.5차례 회의를 하고, 1.4번 외근을 나가며, 한 달 평균 1.3회 회식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포함, 우리 인생은 모두 무거운 짐을 진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짐을 지고 있습니까? 학생들은 여러분의 아빠가 어떤 짐을 지고 있는지 아세요? 부모님들은 여러분의 자녀가 어떤 짐을 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사람은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보통 8시간은 잠으로, 8시간은 일, 그리고 8시간은 일할 준비로 시간으로 보냅니다. 어릴 때와 노쇠할 때를 제외하고 일이 삶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스페인어로 일을 “트라바호”, 프랑스어로 “트라바이”, 독일어 “아르바이트”(알바)라고 합니다. 그 뜻은 “세 마리의 말을 묶는 것”을 뜻합니다.

 

일이 왜 힘든가에 대해 성경은 인간의 범죄에 기인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창3:17-19)“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네 식물을 먹으리라” 그러나 성경은 일 자체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범죄전보다 일에 대한 좌절감이나 어려움이 가중되긴 했지만 일자체가 저주가 아닌 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오늘날 일로 인해서 당하는 고통보다 일이 없음으로 당하는 고통이 더 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도 (갈6:5)“각자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져야 하는 짐이 있고, 자녀가 져야 하는 짐이 있으며, 부부가 져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학생이 학교에서 치는 시험은 부모나 다른 사람이 대신 져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짐”은 “포르티온”으로 “혼자서 운반할 수 있는 작은 짐”, “핸드 캐리” 정도를 말합니다. 등산할 때 지고 가는 짐은 무겁지만 꼭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 있는 짐 또한 때로 무겁게 느낄 때도 있지만, 꼭 필요한 것이기에 지고 가야하는 짐입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지워 주신 짐을 잘 감당할 수 있길 바랍니다.

 

  1. 모든 사람은 죄의 짐을 지고 있다.

1849년 12월 22일, 28년을 살아온 어느 사형수가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형장에 도착한 사형수에게 5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에게 최후의 5분은 비록 짧았지만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쓸까?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이 사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2분 동안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작별의 기도를 하려고 했는데, 눈물을 삼키며 가족들을 생각하는 동안 벌써 2분이 지나버렸습니다. 친구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2분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려 했는데, 갑자기 “아 ! 이제 3분이 지나면 내 인생도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잠겨 또 2분이 지났습니다. 이제 내 인생이 겨우 1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후회를 하는 순간 벌써 5분이 모두 지나버렸습니다.

 

집행관이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황제의 특사가 나타나 “사형을 중지하시오!”라고 사형을 중지 시켰습니다. 황제의 특사로 죽음 직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이 바로 러시아의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그는 반체제의 누명을 써 사형명령을 받았지만 혐의가 풀려 사형을 면하고, 4년간 시베리아에서 노역한 후에 풀려났습니다. 그 후 그는 비록 누명을 썼지만 죄의 무서움과 죄의 대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가를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죄와 벌”이라는 작품을 썼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이란 작품에서 “죄를 지은 만큼 고통과 형벌을 받게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다윗은(시32:3)“내가 입을 열지 않았을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우리는 가장 큰 고통을 “뼈를 깎는 듯하게 아프다.”라고 합니다. 죄는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며, 가장 소중한 기쁨과 사랑을 송두리째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롬6:23)“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죄를 짓고 두려워하는 자를 향하여, 죄로 인해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향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도,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도, 삭개오도 용납해 주셨고, 저와 여러분 또한 용납해 주셨습니다. 허물과 죄를 주님께 가져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길 바랍니다.

 

어떤 아이가 고무줄 새총으로 장난하다가, 아버지가 아끼는 오리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당황한 나머지 오리를 땅에 파묻었고, 오리를 찾는 아버지에게는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아이가 감추고 있는 비밀을 알고 괴롭혔는데, 물을 길어 오게 하고 청소를 시키는 등 아이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책감에 시달려 견디다 못한 아이가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빠가 오리를 좋아하지만 너보다 좋아하겠느냐? 아빠는 네가 무슨 잘못을 해도 다 용서할 수 있단다하며 모두 용서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그날 이후부터 무거운 죄책감과 죄의 짐을 벗고 해방감을 누리게 되었고, 아주머니의 종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롬8:1-2)“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들이 병을 고치고, 마음의 평안을 주기도 하지만 결코 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죄 용서”입니다. 주님은 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지고 있는 죄의 무거운 짐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무거운 죄 짐을 담당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주님은 우리에게 온유와 겸손의 짐을 지라고 하셨다.

주님은 죄의 짐은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그런데(29절)“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메라고 하셨습니다.

“온유와 겸손”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분리될 수 없는 성품입니다.

 

“온유”는 약함과 다르며 “자기를 통제하므로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뜻합니다. 마치 야생마가 주인 앞에서 순한 양이 되지만, 주인과 함께 거친 벌판을 달릴 때는 누구도 폭주를 감당할 수 없듯이 주인의 요구에 따라 양이 되기도, 불같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에 온유란 말씀은 많이 나오지만, 온유하다고 불린 사람은 딱 두 사람 뿐입니다. 예수님과 모세입니다. (민12: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온유한 모세였지만, 백성들이 하나님 아닌 송아지 우상을 섬겼을 때 (출32:19-20)“모세가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하니라.”

 

주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겸손의 멍에를 메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함부로 화를 내지 말고, 내 기분 따라 감정을 표출하지 말고, 내 마음과 생각, 감정과 의지를 철저하게 통제하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 앞에는 양과 같이 순해야 하며, 하나님이 맡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달려가야 할 때는 야생마처럼 두려움을 모르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교계가 제기한 문제로, 5가지 중 한 가지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다.”였습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안타깝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좋지만, 교회가 싫다.” 즉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밝히지 않는다.”는 숫자가 절반이 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겸손”은 “땅, 흙”이란 단어에서 파생한 것으로, 땅은 사람과 짐승이 살며, 식물들이 자라며, 모든 것을 수용합니다. 겸손이란 땅과 같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동시에 자라게 하는 능력을 가르칩니다.

 

제가 한 달 전에 4개 화분에 열무와 상추 호박을 심었습니다. 햇볕이 약해 호박은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열무와 상추는 잎을 내며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겸손이란 기쁨과 사랑이 자라게 되는 토양을 뜻합니다. 겸손한 마음 위에 믿음도 자라고 사랑도 자라게 됩니다.

 

우리가 겸손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겸손은 사람을 자라게 하고, 성장하게하고, 세우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벧전 5:5)“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온유와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하는 그릇입니다.

 

모든 사람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지만, 지고갈 수 있는 짐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 짐을 지고 있습니다. 죄의 짐은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온유와 겸손의 짐은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긴 짐 잘 감당할 뿐 아니라, 온유와 겸손의 짐을 잘 지고 갈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