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문을 열어라

성경 : 요한계시록 3 :20-22 / 제목 : 마음의 문을 열어라. 2018. 8. 26
저희 집에 있는 문을 헤아려 봤는데, 12개나 되었습니다. 제가 하루에 문을 얼마나 많이 통과하는지 계산해 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과 화장실 문, 공부방 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갑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천국에 문이 몇 개 있는지 아십니까? (계21:12)“열 두 문이 있는데, 동서남북에 각각 세 문이 있으니” 오늘 본문 주님께서 라오디케아교회에 문을 통해 주신 교훈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어라.”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마음의 문이 열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요즘 부모들이 힘든 것 중 하나는 자녀들이 방문을 잠가 놓고 잘 나오지 않을 때입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와도, 밖에서 불러도 듣지 못합니다. 문을 잠그고 있으면 자기 세계에 푹 빠져 밖에 있는 소식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 문 또한 닫혀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라오디케아교회에 마음문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이 말씀은 하나님은 말씀을 듣는 각 사람들에게 반응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상반된 두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2장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행2:37-38)“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며 3천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행7:54)“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9절)“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지만,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돌멩이로 스데반을 쳐 죽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스데반의 설교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들은 반응의 차이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었지만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닫았습니다.

 

라오디케아교회 성도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었을 때 별로 반응이 없었습니다. (15절)“차지도 뜨겁지도”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엡3:17)“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란 주님이 우리 마음에 집을 짓고 거주한다는 뜻으로, 주님이 우리 마음에 주인으로 계시게 해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금번 8월 초에 저희 집에도 손님 몇 분 다녀갔습니다. 제가 손님에게 “저희 집에 손님이라 생각하지 말고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머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인사를 처음 들었다고 하면서 이 말을 듣고 편하게 지날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마음에 모셨다고 하지만, 때로는 주님을 손님처럼 불편하게 모실 때가 있습니다.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주님을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워너 샐먼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그리스도라는 그림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깥에 문고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화가는 각 사람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문고리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철학자 헤겔은 “마음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만 달려있다.”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주님이 우리 마음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은 관용과 포용의 마음을 뜻합니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은 1852년 파리에 개설된 “봉마르셰” 백화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가게와 백화점 차이점은 일반가게는 문이 하나밖에 없지만 백화점은 사방으로 문이 있어 누구나 쉽게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병원, 약국, 주유소 등 24시간 문을 열어 놓은 곳이 많은데 참으로 편리합니다.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우리가 주님을 모시는데 다른 전제 조건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태가 어떠하던 우리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우리와 교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주님은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짓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요7:37)“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13:47)“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모으다”란 “그물이 열리다.”란 뜻이며 (마23:37)“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열다. 품다”란 “관용과 포용”을 나타낸 말로 “통제 하에 있는 힘”을 뜻합니다.

 

관용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팔씨름하여 져주는 것, 엄마가 시집간 딸에게 져주는 것을 말합니다. 빌레몬이 돈 떼어 먹고 도망 친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인 것을 뜻합니다. 위급할 때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간 베드로를 다시 받아 주신 것이 관용입니다. 이길 힘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관용과 포용은 징벌보다 힘이 있고, 사람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가져옵니다. 아버지와 팔씨름하여 이긴 아들이 나중에 “우리 아버지가 용기를 주셔서”, 빌레몬의 관용을 돈 떼먹은 오네시모가 나중 “유익한자”가 되게 했고, 주님의 관용을 받은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 놓았습니다.

 

로마는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랜 제국으로 존속하고 유지된 나라로 기원전 753년에 세워져 기원후 476년 서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장장 1200년이란 세월 동안 지속하였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15권의 책을 저술한 “시오노 나나미”는 그 이유에 대해 “관용과 포용”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일반적으로 유대인과 헬라인, 신분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남자와 여자, 사회적인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지만, 인간이 가진 여러 차이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나이와 성장배경도 다른 사람들이 모입니다. 같은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서로 다른 것을 수용하고 받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수적입니다. 좋은 교회란 남녀노소, 각 층의 모든 사람,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 누구나 찾아 올 수 있는 교회입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서로 관용하고 포용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롬14: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이웃의 연약함을 비판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연약함과 부족함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기뻐하며 받아주셨는데, 큰아들은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받아주셨는데 우리가 받아주질 않습니다. 우리가 이웃에 대해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이웃에 대해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마음의 문은 어떻게 열리는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라는 책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란 질문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컴퓨터 키 하나로 내가 원하는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쉽게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닫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부, 부모자녀, 형제, 이웃끼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왜 공부를 하지 않으려 하는지? 왜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하는지? 왜 얼굴에 근심이 있고, 화를 품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의 답답함을 해결 줄 수 있길 바랍니다.

 

주님은 라오디케아교회에 (20)“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마음의 문을 여는 첫 번째 과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2절)“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을 찌어다.”

 

성경에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벗어나는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요나가 니느웨 백성들에 외친 말씀이 그러합니다. (욘3:4)“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진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5-6절)“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요나 자신도 이토록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 간단한 말씀을 듣고 “성경 최대의 집단 회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12만 명 이상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으니 이보다 큰 사건이 없습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와 최초로 세운 교회가 새문안 교회로, 처음 14명으로 시작된 한국 교회가 134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상숭배와 굶주림과 무지 속에 살던 백성들이 주일이 되면 800만 이상 성경 찬송을 끼고 교회를 나갈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세계에서 선교사를 두 번째로 많이 파송 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 안 됩니다. (히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마음의 문이 열어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관용과 포용의 마음을 가져야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