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왕상 3 : 5-10 / 제목 : 솔로몬의 소원 이야기 / 2018. 8. 5
여러분에는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소원이 꼭 이루지 길 바랍니다. 성경에도 “소원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디매오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 원하느냐?”물었을 때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합니다.”고 말하였을 때 주님은 바디매오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수로보니게여인 또한 예수님에게 딸을 고쳐 달라고 하였을 때 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본문,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소원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솔로몬의 소원은 물론, 구하지 않은 부귀와 권세까지 주었습니다. 오늘은 솔로몬의 소원이 무엇이었으며, 그 소원으로 무엇을 했는가? 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솔로몬의 소원은 “내가 할 일을 가르쳐 주소서!”
솔로몬은 다윗의 19명의 아들 중 10번 째 아들로 서자였지만,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3대 왕이 되었습니다. 한국과 유럽 역사를 보면, 왕위를 물려줄 때 아버지의 소원을 잘 알고 있는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조선 왕조 27명 왕 중에 장남이 왕위를 계승받은 왕은 7명(26%)뿐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될 때 나이는 겨우 20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세상 물정도 몰랐고, 왕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7절)“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작은 아이”란 “경험이 미숙하다.” 자신의 부족을 표현한 말이며,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란 “어떻게 임무를 수행할지 모른다.”는 겸손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종”이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였습니다. “하나님! 종이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종이 어떻게 백성들을 섬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옵소서!” 참으로 기특하지 않습니까?
공자에게 3천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중 특출한 제자를 72현(賢)이라 하며, 그중 세 사람, 안회와 자공과 자로는 공자의 수제자였습니다. 논어 “위정” 편에서 공자는 자로를 비롯한 세 제자에게 이렇게 훈계합니다. “자로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함이 진정한 앎이니라.” 소크라테스 역시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솔로몬은 20살 나이에 공자의 세 제자가 깨닫지 못한 것을 이미 깨달았고,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평생 통해 깨달은 지식을 이미 깨닫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은“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소원 같지 않은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3년 다니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고등학교 때는 “공부 외에 할 것이 없는가?” 신학교에서 “목사가 될 수 있을까?”였습니다. 질문을 받으면 귀를 기울이게 되고, 생각을 깊이 하게 됩니다. 질문을 통해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교육 방법 중 하나가 질문입니다. 제자들을 변화 시킨 예수님의 3대 질문이 있습니다. (마16:15)“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요11:26)“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21:17)“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제자들은 질문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제가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좀 가르쳐 주시요!”
“목사님! 제가 믿음생활을 10년 넘게 했지만 교회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님!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1순위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정말 기특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배우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물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끊임없이 묻고 질문하여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찾고 찾았습니다. 우리에게도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성도로써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배우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솔로몬의 소원은 “듣는 마음을 주옵소서!”
(9절)“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듣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순종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역대하 1장에도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병행문”이라 합니다. 성경에 이런 병행문들이 많은데,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본문과 역대하에 기록된 내용도 좀 차이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것과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물어보시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대답한 것은 좀 다릅니다. (왕상3:9)“듣는 마음을 달라 종에게 주사”라고 하였는데, 역대하 1:10절에는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열왕기상에는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고, 역대하 1장에는 “지혜와 지식”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이 구한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듣는 마음과 지혜와 지식”은 같은 것입니다. 히브리말 “듣는다.”(동사)와 “순종”(명사)은 같은 뜻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만 아니라 “순종한다.”는 뜻으로, “순종”은 “듣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듭 “들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삼상15:22)“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은 “듣는 것은 제사와 제물보다 우선되며, 듣는 것은 최고의 제물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 재판관들은 피고나 원고의 말을 잘 안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말하려고 하면 “당신이 뭘 알아? 내가 판사인데” 하고 말을 막습니다. 그리고 자기 말만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께 백성들을 재판을 잘 할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 예수님을 눈으로 봄으로 믿은 분 있습니까? 예수님을 손으로 만져 보았기에 믿는 분이 있습니까? 진리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짐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으로 전달됩니다. (롬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이 입은 하나, 귀는 둘을 주셨습니다.
실제로 보통 사람은 1분에 약 150개의 단어를 말하는 반면, 약 500개의 단어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가 반복적으로 잘 들어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약1:19)“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함께 부모 가르침에 귀 기울일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잠4:1)“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잠4:4)“아버지가 가르치는 말을 네 마음에 두라 그리하면 살리라.”
요즘 자녀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우습게 생각하며, 부모의 가르침을 “잔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향해 “꼰데”라 말합니다. 1960년대 탈선한 10대들이 아버지를 “꼰대”라 불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 많은 어른, 구식인 직장 상사를”, KBS연속극 “수다스런 계절”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을 낮추고 무시하는 말로 사용되면서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Conde”는 백장을 뜻합니다. 참으로 훌륭한 언어를 한국에서는 아주 고약하게 사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부모의 가르침을 무시한 데서 온 참사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들음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비록 앞을 볼 수 없었지만, 귀를 통해 들음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부모의 가르침을 잘 듣는 것이 얼마나 큰 보물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8-9)“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여러분! 우리 자녀들에게 매일 면류관과 목걸이를 걸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은 빛나는 면류관과 아름다운 목걸이를 항상 걸고 다니길 바랍니다.
- 하나님의 소원이 “솔로몬의 소원이 되소서!”
사람은 누구나 꼭 이루고 싶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목표, 사명”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왕위에 즉위하자 가장 먼저 성전건축을 하였습니다. 성전건축은 자신의 과업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유언이자 하나님이 원하고 계신 과업이기도 합니다.
(왕상6:1)“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 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성전건축은 솔로몬이 왕이 된지 4년, 출애굽 후 480년(BC 962년)에 착공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최대 과업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전을 완공한 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상9:3)“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솔로몬이 끼운 첫 단추는 바로 성전건축이었습니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다는 뜻이며,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파악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의 놀라운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과 눈이 성전에 있을 것을 알았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승부를 걸고,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솔로몬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13절)“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리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 없으리라.”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을 가져할 이유입니다. “하나님 ! 나의 소원이 곧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소원이 되게 하옵소서!” 얼마 멋진 소원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나의 소원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솔로몬의 소원은 “내가 할 일을 가르쳐 주소서!” 솔로몬은 “듣는 마음 주옵소서!” 아주 겸손한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이 “솔로몬 자신의 소원”이 되길 갈망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진 소원이 무엇입니까? 꼭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