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고후 3:12-18 / 제목 : 얼굴에 쓴 수건을 벗어라. 2018. 7.22
무슬림국가에서 여성들이 쓰는 수건은 크게 4가지입니다. “부르카”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가리며, 눈 부분은 망사로 가립니다. 다음 “니캅”으로, 부르카와 비슷하나 눈을 가리는 망사가 없습니다. “차도르”는 얼굴만 내 놓고 나머지 부분은 외투로 덮습니다. 그리고 “히잡”은 얼굴만 내 놓고, 상체만 수건으로 가립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수건의 비유를 통해서 당시 고린도교회를 비롯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수건을 벗어야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쓰고 있는 수건이 무엇이며 또한 벗어야 할 수건이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모세라는 수건을 벗어라.
모세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모세는 430년 노예생활 하던 자기 백성을 해방하였으며, 광야 40년 동안 기적을 보이며, 백성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모세는 하나님과 시내산에서 친히 계약을 맺었습니다. (신34:10)“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신34:8)“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위하여 30일 애곡하였더라.” 이스라엘백성에게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였고,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모세는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적인 존재였고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13절)“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수건을 얼굴에 쓴 것 같지 아니하다.”고 말함으로,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할 때 영광스러운 모습만을 보지 말고, 모세의 본래 모습을 보아야한다는 말합니다. 영광스럽게 덮여 있는 모세의 모습이 아닌 본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모세는 실수하고 연약한 인간입니다. 특히 사람을 죽인 살인자입니다. (행7:22)“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모세가 40년간 통달한 지식의 수준은 어떠합니까? (출2:12)“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모세가 40년 갈고 닦은 학문의 수준은 “사람을 살피고, 죽여 몰래 감추는 정도였습니다.
사람이 가진 지식과 경험이 심오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편에서 어리석고 편협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안 보면 괜찮다는 생각은 무신론적 가치관입니다.
광야 백성들이 모세를 향해 원망하며 물을 달라고 했을 때 모세는 (민20:10,11)“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모세가 화를 내며 반석을 두 번 친 일로 인해 (민20:12)“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내가 이 회중에게 준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모세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모세가 두 번 친 반석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고전10:4)“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바울은 모세가 화를 내며 채찍으로 예수님을 두 번 때렸다고 말합니다. 이로 인해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두 돌판을 받아가지고 내려 왔을 때에 백성들은 산 아래에서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모세는 두 돌판을 백성들을 향해 던졌습니다.
모세가 화가 났을 때 지팡이로 내리치고, 돌판을 내 던졌듯이, 오늘날 우리 또한 화가 난다고 내던지고 내리 치기도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부부 싸움하다 아내가 소중히 여기는 그릇을 던졌습니다. 부모가 화가 나서 자녀의 핸드폰을 막대기로 깨버렸습니다. 목사가 화가 난다고 강대상에 있는 마이크를 던져 버립니다. “회복 불가능입니다.”
여러분! 남에게 바보 같다는 소리를 들어도 유순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큰 복을 받은 자입니다. 유순한 아내, 남편, 자녀를 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약1:19-20)“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 율법이라는 수건을 벗어라.
율법에 대한 두 가지 잘못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와 “율법이 필요 없다”입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죄를 깨닫도록 주셨습니다. (롬3:20)“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도록 율법을 주셨습니다. (갈3:25-27)“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주님은(마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분명한 것은 주님은 율법은 “폐함”이 아니라 “완전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셨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짐승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히9: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지성소로 들어가셨느니라.” 구약율법은 실체가 아니고 그림자 일뿐이며, 예수님이 실체로 오셨어 율법을 완성한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롬10: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 “마침”이란 율법의 폐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구원받는 것이 끝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길이 열린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구약율법에 얽매여져 있었기에 (14절)“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바울은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구약율법의 수건을 벗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맛있게 먹는 삼겹살을 먹지 못했습니다. 이방인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고, 절기와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했고, 지키지 못할 때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심으로 율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골2:16-17)“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롬8:1)“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천국에 못 들어가지 않습니다. 거짓말했다고 충성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았다고 버림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하나님이 무서워서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율법이라는 수건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율법을 지킨 것과 신약시대에 율법을 지킨 차이점이 있습니다. (요일1서 5: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나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구약시대는 무서워서 율법을 지켰다면, 신약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무서워서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시126:12)“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생각하며, 주님을 섬길 수 있길 바랍니다.
- 우리 마음에 가짜라는 수건을 벗어라.
요즘 한국에서 “복면가왕”, “복면검사”, “복면달호”, “반칙왕”, “각시탈”, “오페라의 유령” 등 가면을 주제로 한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가면을 쓴 것에 대해 열광합니까? 가면 속에 숨어 있는 진짜가 누구인지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른 사람이 누구지? 약한 사람을 돕고, 불의한 자를 응징하는 의로운 검사가 누구일까? 가면을 쓴 모습이 아닌, 가면 속에 숨어 있는 진짜 사람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2017년 구세군 자선냄비에서 1억5000만원 성금이 나오자, 구세군은 다음과 같이 알렸습니다. “2017년 12월 24일, 롯데백화점 1층에 설치된 자선냄비에서 1억5천만 원 성금을 했는데 자선냄비를 시작한 1928년 이래 가장 큰 금액으로, 익명으로 기부한 것은 모든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주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구세군에서 뉴스를 보낸 후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비록 진짜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진짜의 마음을 통해 감동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감추어진 것이 가짜일 때 반대로 낙심하게 됩니다.
어떤 학생들이 동물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학생은 곰의 탈을 쓰고 곰 우리에 들어가서 곰 흉내를 내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넘어져 호랑이 우리에 떨어졌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호랑이 우리에 떨어진 곰이 죽지 않을까 걱정하였습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곰 가까이 걸어오더니 곰에게 무슨 말을 하였습니다. 호랑이가 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곰 아르바이트를 하면 하루에 얼마를 받느냐?” 동물원에 있는 곰과 호랑이는 진짜가 아니고 가면을 쓰고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이것을 본 시민들의 반응은 “진짜 호랑이가 아니었어! 진짜 곰이 아니고, 가짜 호랑이와 곰 인형이었어!” 감추인 것이 가짜로 드러났을 때 모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16,18절)“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바울은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마10:26)“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얼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혹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오늘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존재합니다. 모세라는 위대함의 수건, 율법이라는 형식적인 수건, 그리고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짜와 거짓이란 수건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함과 허물과 실수를 덮어 놓고 숨길 이유가 없으며, 또한 연약한 믿음 때문에 낙심하고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있는 가짜를 감출 이유가 없습니다.
(전12:14)“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아무 것도 숨길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모습으로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