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 없는 성읍을 만들라.

성경 : 스가랴 2 : 1 5  2018. 7.15

스페인은 대체적으로 성이 많은 편입니다. 그 중에 아빌라(Avila)성은 스페인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성으로, 무어인들로부터 영토를 지키기 위해 11세기 건설 했는데, 해발 약 1,150m 위에 성곽을 건설하였습니다. 스페인에 성을 많이 쌓은 것은 전쟁이 많았고, 침략을 많았다는 증거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으로, 스가랴에게 예루살렘에“성벽을 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성벽을 쌓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서 성벽이 쌓지 말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가정 안에 장벽이 없어야 한다.

부모의 편애가 자녀들에게 큰 장벽이 됩니다. 이삭은 활동적인 에서를 더 좋아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조용한 야곱을 더 좋아했습니다. (창25:28)“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흔히 부모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열 손가락 꽤 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다.”며 편애를 부인하지만, 부모도 사람이기에 편애를 하게 됩니다. 과거, 저의 부모님도 “형은 부모 대신이야, 부모가 죽으면 형밖에 없다”며 형님 편을 들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편애를 받고 자란 야곱이 훗날 자식을 편애했다는 것입니다. (창37:3-4)“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야곱이 요셉을 편애함으로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였고, 결국 팔아버렸습니다. 사소한 부모의 편애가 불러온 참상입니다.

 

부모의 과욕이 자녀들에게 큰 장벽이 됩니다. (창25:28)“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가지고 왔을 때에 사랑했다는 말로, 요즘말로 하면, 이삭은 아들이 용돈을 주고, 대접을 하였기에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욕심이 없을 수 없지만, 부모의 과욕은 자녀를 그릇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가 “너는 학교에서 10등 안에 들어야 돼”라는 요구할 때, 자녀들은 참으로 난감하게 됩니다. 어떤 부모는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이 이뤄주기 바랍니다. 그래서 “너는 판, 검사가 되어야 해”, “너는 꼭 의사가 되어야 하고, 목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부모의 무관심이 자녀들에게 큰 장벽이 됩니다. 에서는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에서가 아버지가 원하던 고기를 사냥하러 나간 사이, 야곱이 엄마와 공모하여 장자의 축복을 먼저 받았습니다. 에서는 장자 권이 빼앗기고, 자신의 노력과 수고가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자 반항적이 되고, 극단적인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창28:8-9)“에서가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에서는 두 아내가 있었지만 또 아내를 취하였습니다. 일종의 부모에 대한 반항이며 도전인 셈입니다.

 

믿음의 부모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자녀의 이방결혼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하나님 없는 사람과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위대한 솔로몬과 삼손의 비극이 바로 “이방 결혼”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낳은 자녀는 부모의 말을 잘 듣겠지? 착각입니다. 미운 7살보다 다루기 힘든 자녀가 장성한 자녀입니다. 가정 안에 장벽이 없도록 힘쓰는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1. 교회 안에 장벽이 없어야 한다.

옛날에는 담장이 그리 높지 않았고, 자물쇠나 열쇠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담장이 높아지며, 열쇠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열쇠만 해도 10개가 넘습니다. 열쇠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벽이 많고 높다는 뜻입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의 벽입니다.

 

(엡2: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주님은 사람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사람과의 관계를 소홀히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드린 기도입니다. (21절)“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먼저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자가 하나가 되어야 하나님 안에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하나님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야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로 믿게 되는데, 만약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싸운다면,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13장 아브라함과 롯이 다툰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의 마을에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삼촌과 조카의 목자들이 허구한 날 싸웠습니다. (창13:6-7)“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이것을 가나안과 브리스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지금도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몇 사람들이 모여 교회를 세워 예배를 드리더니, 어젠가부터 서로 욕하고, 다투기 시작합니다. 목사가 잘못했다. 집사가 잘못했다는 말을 합니다. 누가 이것을 봅니까?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봅니다. 교회가 싸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무엇이라 말합니까? “눈뜨고 못 보겠다.”, “저것도 교회라고…”

 

우리가 교회에서 다툰다고 세상 사람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삼하12:12)“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우리가 교회에서 다투고 싸우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욕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벽은 바로 교회와 성도가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분쟁하는 것입니다. (엡4: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우리가 이웃에 대하여, 성도에 대하여 인내하고 참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복음이 세상으로 전진하는데 장벽을 놓는 자가 아닌, 교량역할을 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이 나의 성벽이 되신다.

성벽이 필요 없는 두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격을 받아도 피해가 없는 곳, 즉 사람이 살지 않는 들판이나 중요한 시설에 없는 곳에는 성벽을 쌓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본문 5절에서 성벽이 필요 없는 경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5절)“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다윗은(시31:3)“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시144:2)“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오”라고 여러 차례 고백하였습니다. 마르틴루터는 다윗의 고백을 통해 “내주는 강한 성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루터가 이런 고백을 하게 된 것은 “아젠 나흐” 높은 성안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폴 도브란스키” “사랑에 빠지는 심리적 비밀”이란 책에서 남자가 여자에 대해 진심으로 사랑에 빠지는 4단계 가운데 첫 번째는 여자가 진심으로 남자로부터 보호를 받겠다는 진실한 마음을 보일 때, 사랑에 빠진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이 여자를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내가 없으면 이 여자가 불쌍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남자는 여자가 자기보다 능력이 많아 보이거나,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어 보이는 여자에게는 경계심이나 두려움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자 분들이 사랑을 받으려면 약한 척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룻기 2장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왔을 때, 보아스는 내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고, 일군들에게 “너희들은 저 여인을 건드리지 말며, 목이 마르거든 물을 길러 마시게 하라.”, “곡식을 조금씩 뽑아서 버려서 그에게 줍게하고 꾸짖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말을 합니다.

 

(룻기2:12)“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히 상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이 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왔는데, 내가 그를 어떻게 모르는 척 하겠는가?” 보아스는 룻이 갖고 있는 모든 약점을 한 순간 극복하고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시121:1)“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인간의 본능적인 질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러 갔다가 거절당했을 때 자연스럽게 “나의 도움이 어디에서 올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라” 세상에는 수많은 걱정 근심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보호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143:3)“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가정 안에 어떤 장벽도 없어야 합니다. 온 가족이 화목한 가정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장벽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는 것보다 큰 장벽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성벽 곧 보호자가 되심을 한 순간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