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

성경 : 열왕기하 1 : 1 – 8 / 2018. 7. 8

이스라엘의 7대 아합 왕이 죽고,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아합의 죽음으로 국력의 약화되었고, 아하시야는 난간에서 떨어져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하시야는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 사신을 에그론에 있는 신, 바알세붑에게 보내어 물어보게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엘리야는 왕의 사신에게 아하시야의 잘못을 책망하며, 왕이 낫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왕의 신하들이 왕에게 이 말을 전하자, 왕이 신하들에게 (7절)“너희에게 이렇게 말한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느냐?”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은 왕에게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습니다. (8절)“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나이다.” 그러자 왕은 그는 바로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왕의 신하들이 본 엘리야의 모습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그는 털이 많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사역을 감당한 얼굴]

(8절)“그는 털이 많은 사람” 많은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얼굴이 희거나,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장인들과 같은 얼굴이 아니라, 주름살이 깊이 파인 얼굴, 햇볕에 거슬린 얼굴, 일그러진 얼굴, 한마디로 “고생을 많이 한 얼굴”이란 인상을 갖게 합니다.

 

엘리야에 대해 열왕기상 17장에서 처음 소개되고 있는데, 고향 정도만 소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17:1)“길르앗에 우거하는 디셉 사람 엘리야” “길르앗”이란 “울퉁불퉁한 땅”이란 뜻으로, 요단 동부지역으로, 하나님이 모세에게 느보산에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여 주셨습니다.(민32:26)

 

(민32:1)“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아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 적 그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 그가 험준한 산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아합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사역하였습니다. 아합은 바알을 숭배하던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바알을 숭배하게 되었고, 대신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이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이 일로 인해 하나님은 엘리야를 아합과 이세벨에게 보내어 “앞으로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와 이슬조차 없을 것이다.” 선포한 후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농작물이 말라죽었고, 가축들도 죽어갔고, 모든 사람들이 기근 속에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범죄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엘리야 자신도 고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신의 고난보다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이 더욱 고통스러웠고, 백성들이 배고파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가운데 어떻게 자신의 얼굴을 손질하며 수염을 깎을 수 있었겠습니까? 엘리야는 나라와 민족, 백성들을 생각하는데 시간을 보내느라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얼굴을 통해 자신이 지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 운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의 얼굴을 기억하십니까? 들판에서 수고하는 농부들의 얼굴을 보았습니까? 지난 주간 여러 선교사님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대부분 검게 탄 얼굴이었고, 여윈 얼굴이었고, 병색인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저들의 얼굴을 통해 저들의 사역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요8:57)“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하였습니다. 50세는 성전봉사 직무가 끝나는 나이로, 오늘날 정년퇴직의 나이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20살 정도 더 많이 먹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사야는(53:2-3)“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기독교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예수님의 얼굴”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지금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얼굴은 주름이 지고, 수염이 가득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이사야는“그는 우리를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했으며,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얼굴은 인격과 삶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은 고운피부가 아니라, 땀 흘려 수고한 얼굴, 주님을 위해 고생한 얼굴입니다. 부끄럽지 않는 얼굴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길 바랍니다.

 

  1. 그는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검소한 생활한 모습]

“가죽 띠를 띠었다.” 세례요한과 비슷합니다. (마3:4)“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얼마 전 신문에서 “삼성전자도 허리띠를 졸라매다.”, “현대기아차도 허리띠를 졸라매다.”란 신문 기사가 나왔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다.”라는 말은 “검소한 생활을 하다.” “고통이나 배고픔을 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몸가짐을 새롭게 하고,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물도 없는 그릿시내에 숨어 까마귀를 통해 물과 양식을 공급받았습니다. 또한 사르밧 여인으로부터 양식을 공급받았습니다. 엘리야는 까마귀도 모자라, 사르밧 여인의 마지막 양식마저 먹어야 할 만큼, 극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배고픔을 참았고, 역경과 고난을 견디어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창43:1,2)“그 땅에 기근이 심하매 그 아비가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라”고 했습니다. “큰 기근”과 “적은 양식”은 서로 대조적인 말입니다. 야곱의 가족은 70명으로 큰 기근 속에서 많이 양식이 필요했겠지만, 야곱은 오히려 적은 양식을 원했습니다.

 

요셉은 칠 년 풍년 때, 다가올 흉년을 대비했습니다. (창41:48)“요셉이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각 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중에 저장하매” 보통 사람들은 사업이 계속 잘 되면 시설을 확장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기존 시설물을 이용하여, 곡식을 저장하였습니다.

 

바울은(엡6:14)“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했으며, 예수님도(눅12:35)“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으라.”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마음을 가다듬고,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녀가 잘 되었을 때 가장 기뻐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부모입니다. 부모가 가장 고생을 많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찬양할 때 누가 가장 은혜를 받습니까? 찬양 인도자입니다. 가장 많이 애썼기 때문입니다. 누가 음식이 가장 맛있습니까? 식사당번입니다. 가장 수고를 많이 하였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가치를 못 느끼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 중에 어려운 시험이나, 고난을 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중에 실패하고 싶어 실패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병들고 싶어 하는 사람은 더욱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했음에도 여전히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있고, 역경이 왔을 때 야고보는 (약1:4)“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는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하기 위함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련을 통해서 그 부족한 것을 깨닫게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하자 겁을 먹고 브엘세바까지 도망쳤습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에서 120Km 떨어진 유대 땅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왕상19:4절)“한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대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참으로 약해 빠진 모습니다.

 

그리고 (왕상19:10)“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과 싸울 사람이 아무도 없고 자신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열심히 특심했다고 자랑했습니다.

 

엘리야는 지금 마치 장난감 사주지 않으면 유치원 안 갈래!”, “여행 안보내주면 시험 안 볼래!”

유치원, 초등학생보다 훨씬 더하게 투정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담대함이나 선지자의 모습 같은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나약한 인간, 실패하고 낙심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약5:17-18)“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우리와 성정이 같다.”란 우리와 똑같이 약함과 허물, 두려움과 염려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저는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다.”는 말에 공감됩니다. 엘리야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아파하고 낙심하고, 원망하고, 실패한 존재라는 사실을 통해서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우리와 같이 약함과 아픔과 고난을 당하며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히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고, 우리의 필요를 알고 채워 주시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이 약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힘들였기에 하나님께 나아갔고, 혼자서 할 수 없었기에 나 혼자라고 투정을 부린 것입니다. (약5:17)“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면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는 선지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힘을 다하였습니다.

엘리야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역경과 고난을 잘 견디어 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이 약함과 염려와 실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도로 참고 이겼습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때로 어렵고 힘들고, 낙망할 일이 있어도

엘리야처럼 기도로 극복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