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는 ?

성경 : 누가복음 7 : 31-35  / 2018.  6.17

한국에서 “베이비 붐 세대”라고 하면 1955년에서 1963년에 태어난 사람을 칭합니다. 6.25 전쟁이후 정부에서 출산장려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7080세대” 70, 80년대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70년대와 80년대 대학과 청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제가 바로 7080세대입니다.

“386세대” “30대, 80년대 학번, 60년, 생인 세대”를 말하는 것으로, 주로 1980년대 학생운동을 통해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세대를 말하며, “N세대” 인터넷과 함께 시작한 세대, “X세대” 럭비공 같은 행동을 잘 알 수 없는 세대, 그리고 요즘은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사포세대 (+인간관계)”란 말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세대를 (행2:40)“패역한 세대”라고 하였으며, 바울은 (빌2:15)“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가 어떤 세대인가를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잃어 버린시대에 살고 있다.

여러분이 어린 시절 소꿉놀이를 해보셨지요! 제가 가장 많이 한 소꿉놀이는 전쟁놀이인데, 서로 장군을 하겠다고 실제 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장군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엄마와 시장놀이”를 많이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어린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즐겨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어린이들은 특별한 놀이가 없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시장에 갑니다. 어른들이 시장을 보는 동안 아이들끼리 모여 소꿉놀이를 했는데, 가장 흔한 놀이가 결혼과 장례식 놀이였습니다. 결혼과 장례는 자주 목격하였기에 배역을 맡으면 연습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 놀이 절정은 피리를 불 때 모든 사람이 기뻐하며 춤을 추었고, 장례식의 절정은 진행자가 곡을 하면 모든 아이들이 함께 슬퍼 우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몇 차례 소꿉놀이를 하다보면 식상해서 결혼식 때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았고, 장례식에 곡을 해도 아무도 울지 않게 됩니다.

 

오늘 본문 예수님께서 (31)“이 세대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말씀하시면서 이 세대는 마치 (32절)아이들이 소꿉놀이 하다 감정이 식어진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세대는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무 감감, 감정을 잃어 버린 시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물이 말라버린 시대, 웃음이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오늘 이 시대를 “무관심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누가 불행한 일을 당해도, 기쁜 일을 당해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알게 뭐야!”, “나와 상관없어.”, “관심 없어!”, “난 몰라”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 비유의 핵심은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책망한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 또한 이웃이 강도를 만나도 무관심할 뿐입니다.

 

주님은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곳 나에게 한 것이고, 작은 소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2:15)“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성도의 가정에 축하할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정말 축하한다.”라며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정말 안됐다.”“빨리 어려움이 극복되길 바라며, 함께 기도하겠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이며, 각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장기가 고장이 나면 감각이 없듯, 우리가 타인의 즐거움과 슬픔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영적으로 고장이 났다는 증거입니다. 성도는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 줄 알아야 합니다. 기쁨과 슬픔을 이웃과 더불어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1. 우리는 가치가 왜곡 된시대에 살고 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세례 요한을 싫어하며, 비난하였습니다. (33절)“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이것은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금욕 생활한 것을 두고 귀신들렸다고 한 것입니다.

 

반면, 저들은 주님에 대하여 (34절)“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비난하였습니다. 주님은 세례요한과 달리 일반 사람과 똑같이 먹고 생활하였습니다. 특히 약한 자들과 가난한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저들은 먹지 않는 세례요한을 향해 귀신들렸다 해 놓고, 약한 자들과 함께 잡수시는 예수님을 향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 비판했습니다. 먹으면 먹는 대로,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비난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비난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백성들을 선도하는 자들인데, 그런데 너희들이 감히 백성들을 가르치다니, 자격이 있어! 율법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의 몫이야!”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자기가 정한 왜곡된 기준으로, 타인의 의로움을 비난하였습니다.

 

뉴욕 타임스에서 20세기 20명의 영웅을 선정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더 테레사, 안네 프랑크, 헬렌 켈러 등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온갖 풍문을 몰고 다닌 마릴린 몬로, 동성연애자 하비 밀크 등이 선정되었는데, 오늘 시대는 인기만 있으면 영웅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죄인이나 악인”을 말할 때 “기준이 없는 사람”, “자기가 기준”이란 뜻입니다. 한 부자는 (눅12:13)“내 곡간, 내 곡식,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내 영혼에게 이르되 내가 평안히 머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나”라는 말을 7번이나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기준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라 하셨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오래 동안 목사님을 모시지 못하였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젊은 목사님을 모시자고 하자, 나이든 사람들이 경험이 부족하여 안 된다고 하였으며, 반대로 나이든 목사님을 모시자고 하자, 구시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잘 생긴 목사님을 모시자 하니 제비족 같다고 했고, 뚱뚱한 목사님은 교회 얼굴로 적합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신앙 기준으로 타인을 폄하하거나 비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율법교사들 처럼 사람들은 열심히 봉사하면 혼자 잘 믿는 척 한다고 하며, 손을 놓고 있으면 무능하다고 합니다. 크게 기도하거나, 손을 들고 찬양하면 시끄러워 함께 못하겠다고 하고, 조용히 기도하면 염불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함께 믿음의 생활하다보면 서로 다른 점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기도하지?” “광신도가 아닌가?” 라고 비난하기보다 “나하고 다른 방식으로 은혜를 받았구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혹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넓은 마음으로 수용하고, 용납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시대에 살고 있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저버려 놓고, 세례요한을 향해 “귀신들렸다.”라고 하였고, 예수님을 향해(34절)“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하였습니다.

 

(29-30절)“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 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하되 바리새인가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면서, 아무른 거리낌도 없이 율법교사 노릇을 하였고, 백성의 선생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아우, 유다는 구약에서 어그러지고 패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세 가지 사건과 세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유1:11)“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화 있을찐저,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화 있을찐저,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가인은 자신의 아우를 죽인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을 죽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통로로 삼으신 가정을 파괴한 사건입니다.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인가를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 발람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모압 왕의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으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지게 했습니다. “발람의 어그러진 길”이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여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럽 중세교회가 철저하게 발람의 길로 갔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고라의 길입니다. 고라는 레위지파 고핫 자손으로 모세의 사촌으로 고라는 다단, 아비람, 온과 족장 250명을 규합하여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자신이 가진 힘을 가지고, 공동체를 위협하고 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인의 행위가 가정 공통체를 파괴한 것이라면, 발람과 고라의 행위는 교회 공동체를 파괴한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보낸 편지 가운데서 (빌2:15)“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나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잃어 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족과 교회, 더불어 살고 있는 이웃에 대하여 기쁨과 슬픔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치가 왜곡 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판단의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며, 척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시대에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