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까마귀를 생각하라!

성경 : 누가복음 12:22-26 /  2018. 6.10

한국에서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새라고 해서 “길조”로, 까마귀는 흉한 소식을 전해주는 흉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까치가 울면 “오늘은 좋은 일이 있겠다.”라고 하지만, 까마귀가 울면 “오늘은 좋지 않는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 하였습니다.

 

신명기 14장에 까마귀를 부정한 새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17장에서는 까마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3년 6개월 동안 매일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먹고 사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자들에게 까마귀를 통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주시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노아가 방주에서 내 보낸 까마귀를 생각해 보라.

창세기 8장, 노아는 홍수 후 물이 감한 여부를 알기 위해 방주에서 까마귀를 날려 보냈습니다. (창8:8)“또 비둘기를 내 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노아와 8식구는 6개월이 넘도록 방주 안에 있으면서 “우리가 언제 방주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생각하며 물이 얼마나 줄었는가를 알고자 까마귀를 내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창8:7)“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러자 노아는 이번에는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창8:9)“비둘기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러자 7일 후 다시 노아는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저녁때 홍수 후에 돋아난 것으로 보이는 새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노아와 가족들은 비둘기가 물고 온 새 감람 잎사귀를 보고 물이 감하고 땅이 드러난 소식을 알고 노아와 그 가족들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비둘기는 노아와 가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지만, 반면 까마귀는 노아와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노아가 방주에서 내 보낸 까마귀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몰랐거나, 잊었거나 행하지 않았습니다.

 

방주에서 나간 까마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습니까? (창8:7)“까마귀를 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렇다면 까마귀는 시간적으로 일주일 동안이나 쉬지 않고 물 위로 계속 날아서 다녔다는 뜻이 됩니다.

 

주님께서 까마귀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을 때, 노아가 방주에서 날려 보낸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은 사실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에게 “노아가 방주에서 보낸 까마귀는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잊고 있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 시켜 주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17장,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어린 다윗이 전쟁에 나가겠다고 하자, 사울왕은 자신의 갑옷을 주려 했지만 다윗은 사양하고 물매 돌 다섯 개를 가지고 전쟁에 나가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오는 다윗을 본 사울 왕은 신하 아브넬에게 (삼상17:56)“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기억을 못하고 잘 잃어버리는 사람을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고 말합니다. 사울은 건망증을 넘어, 기억 상실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혹 까마귀와 사울 왕처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방주인 교회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신 뜻을 망각하거나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까마귀를 생각해보라!”고 하신 말씀은 다름 아닌, “우리가 까마귀처럼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라는 말씀입니다. 까마귀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잃어 버렸지만, 비둘기는 노아와 가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 보내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바랍니다.

 

  1. 엘리야에게 양식을 공급한 까마귀를 생각해 보라.

“까마귀와 물병”이란 이솝 우화가 있는데, 목이 마른 까마귀가 물병을 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부리가 물에 닿지 않자 까마귀는 물병 속에 돌멩이를 하나씩 집어넣어 물이 위로 올라오게 하여 마시는 이야기입니다.

 

까마귀는 딱딱한 호두를 까먹을 수 있는 유일한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까마귀로 차들이 다니는 도로에 호두를 갖다 놓고, 차가 지나가길 기다린 후에 호두알을 먹을 정도로 머리가 좋습니다.

 

열왕기상 17장 까마귀가 엘리야를 3년6개월 동안 먹이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상17: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 왔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까마귀는 먹기를 탐하는 새로 자기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 입에 있는 음식을 엘리야에게 주었습니까?

 

주님께서(24)“까마귀를 생각하라?…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동물의 욕구와 본능, 충동까지 통제하면서까지 자기 백성을 먹이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시시각각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해 모든 피조물들을 동원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지키기 위해 사자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도망가는 요나조차 보호하기 위해 물고기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나귀를 통해 발람 선지자를 꾸짖고 돌이키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파격적인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30년 전에 저는, 내일 먹을 양식조차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 또한 스페인으로 오실 때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끔찍할 정도로 어렵고, 걱정을 안고 오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여기까지 저와 여러분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까마귀로부터 양식을 공급받은 엘리야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엘리야는 이때보다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함을 깨달았던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까마귀를 통해 생존한 엘리야는 어떤 우월감이나 자존심도 남아 있을 수 없었으며,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는 최악의 구걸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까마귀에게 얻어먹는 것보다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직면한 것은 단순히 먹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죽기보다 더 하기 싫은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게 하였으며, 인도하심을 몸소 체험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한 곳이 어디입니까? 가장 비천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리, 친구들이 멸시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도하심을 깨닫기 위해 낮은 곳으로, 비천한 자리로 안내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난의 자리는 비천한 자리가 아니라,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자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은 “말 못하는 까마귀 뿐 아니라, 이방인과 심지어 대적자들을 통해서 보호하시고 먹이신다.”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곤궁한 자리는 가장 비천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도록 주신 자리임을 기억합시다.

 

  1. 공중 나는 까마귀를 생각해 보라.

제가 어릴 때 제가 살던 마을에 낯선 사람이 동네에 오면, 동네 까마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시끄럽게 울어 대는 것이 기억납니다. 마치 “낯선 사람이 들어오니까 조심 하세요!”라는 생각이 정도로 시끄럽게 짖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까마귀는 시각과 청각이 뛰어나 마을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며, 외부인이 마을에 들어오면 그것을 알리느라 몹시 시끄럽게 울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같이 질문하였습니다. (욥38:41)“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매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그러자 욥은 (욥42:2-3)“주께서 못할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성경에서 새에 대해 표현할 때는 항상 현재형과 날아가는 새,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움직이는 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하니 하고.” 이것은 저축이나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매일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양식을 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소극적으로 게으르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교훈 해 주셨습니다. 직장에 나가면서, 사업 터로 나가면서, 학교에 가면서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주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25절)“또 너희 중에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고 더할 수 있느냐?”는 말씀은 “까마귀처럼 열심히 일하고, 까마귀처럼 움직이고 활동하면 염려가 물러가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염려가 찾아오는 원인 중 하나는 몸을 움직이지 않을 때입니다. 집안에 가만히 있을 때, 혼자 있을 때 염려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할 때 염려는 물러가게 됩니다. 기독교는 일하는 종교입니다. (살후3:10)“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열심히 일할 때 염려는 극복됩니다.

 

1964년 한국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나라를 상징하는 새를 공모하였는데, 까치가 “나라 새”로 뽑혔습니다. 그런데 50년이 되지 않아 지금은 천덕꾸러기로 전락되었습니다. 지금은 정부가 까치는 포획하여 죽이도록 각 지방 자치 단체에 내려 보냈는데, 이유는 전봇대에 집을 지어 정전사고를 일으킬 뿐 아니라 조류독감을 유발하는 새로 지정하였습니다.

 

반면 까마귀는 일약 귀빈 예우를 받고 있는데, 그것은 생태환경을 보존해 주고, 천적을 없애 주는 새로, 분류되어, 각 지방 자치단체들은 까마귀가 서식할 수 있는 시설 및 공간을 확장하고 있으며, 초등학교에서도 “까마귀 생태교실”도 운영하는 등 정부가 장려하고 있습니다. 까치와 까마귀의 신분이 역전됐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내 보낸 까마귀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엘리야에게 까마귀는 3년 6개월 떡과 고기를 공급하였습니다.

공중 나는 까마귀를 먹이신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기꺼이 먹이시고 보호하십니다.

지금껏 우리를 지켜주시고, 먹여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