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성경 : 사도행전 17 : 10- 15   2018. 5.27

지난 5월 둘째 주간에 유럽고신 총회가 바울의 제 2차 선교지역인 데살로니가에서 모였습니다. 총회 중 바울이 2차 선교한 지역 중, 이틀 동안 세 곳,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역을 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총회 기간 중 돌아 본 세 지역을 중심으로 “복음에 대하여 그 지역 사람들의 반응”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빌립보, 루디아와 간수의 가정이 믿다.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은 사도행전 15장36절에서 18장2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대는 대략 AD 50-52년, 약 2년 반 정도 걸렸습니다. 제 2차 선교행의 첫 지역은 빌립보입니다. 빌립보는 주전 42년, 로마초대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예수님 출생 때 황제 (재위BC27-AD 14)때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어 로마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아시아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네압볼리 항구에 도착하여 빌립보로 갔습니다. (사진 1-네압볼리 항구)

 

바울과 실라는 안식일에 기도하기 위해 강가에 나갔는데, 그곳에서 옷감장사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하였는데, 루디아와 온 가족이 믿어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이것이 유럽에서 최초로 세워진 빌립보교회입니다. (사진 2-빌립보 강가총회원 성찬식 거행)

 

또한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준 일로 인해 고소를 당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행16:25-26)“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굳게 닫힌 옥문이 열렸습니다.

옥문을 지키던 간수가 옥문이 열려 죄수들이 도망친 줄로 생각하고 자결하려했습니다. 로마법에는 죄인을 놓친 간수는 죄인의 형벌을 대신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간수는 “내가 책임을 지는 것보다도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자결하려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면 절망할 때가 있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 바울과 실라는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하자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향하여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물었습니다. 그 때 바울은 (행16:31)“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간수와 온 가정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사진 3-빌립보 감옥(단체사진)(사진 4-감옥 확대)

사진 3, 빌립보 감옥

지금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유효합니다. (롬1:17)“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복음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구원 얻는 능력의 복음을 우리에게 맡겼습니다.

 

저희들은 바울과 실라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네압볼리에 있는 기념교회와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빌립보 감옥도 직접 보았습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가 안식일에 기도한 강가에 세워진 루디아 기념교회와 강가에서 저희 총회 참석한 일행들이 성찬식을 거행 하였습니다.

 

빌립보교회가 세워지기까지는 바울과 실라는 수천 킬로가 되는 거리를 달려왔으며 옥에도 갇혔습니다. 그러나 루디아를 만나게 되었고, 루디아가 마음을 열어 그와 온 가정이 주님을 영접하였고, 또한 간수와 그의 가정이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이로부터 10년 후, 주후 61-62년경, 빌립보교회가 바울은 로마옥중에 갇힌 소식을 들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선교비를 받은 후 감사한 마음과 함께 편지로 답례를 표합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옥중에서 쓴 빌립보서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두 가정을 통해 빌립보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한 두 사람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1. 데살로니가, 방해를 받았으나 야손의 가정이 구원받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약 160Km 떨어진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알렉산더의 고향이며, 현재 지명으로 “테살로니키”로 불리는데,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530Km 떨어진 곳으로, 현재 인구는 120만 명 정도이며, 수도 아테네 다음으로 큰 제 2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바울일행은 먼저 회당을 찾아 3주 동안 성경을 강론했습니다. (17:3)“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바울은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였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자 복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4절) “짧은 기간 동안 적지 않는 사람들이 믿었고 특히 경건한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믿었습니다. “적지 않다.”는 것은 “아주 많다.” 겸손의 표현입니다.

(사진 5 데살로니가 회당 위에 세워진디미트리우스 교회당)

 

오늘도 여전히 귀부인이 예수 믿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주님도(눅18:25)“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자들, 귀부인이 얼마나 거만한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복음은 가난한 자들뿐 아니라 부자에게도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시장에 있는 불량배들을 고용해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불량배들은 바울에게 집을 제공한 야손의 집에 들어가 행패를 부렸고, 야손과 형제들을 잡아 읍장에게 끌고 갔습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를(6절)“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해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10절)“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밤에 베뢰아로 보내었습니다.”

(사진 6)-데살로니가 항구 이곳에서 배타고 베뢰아로 건너감

 

(눅23:1-2)“무리가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예수님을 시기하여 고발하여 죽게 한 유대인들이 바울 일행에게도 동일한 고발을 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3주 동안 복음을 전하였을 때, 크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형제여 우리가 어찌 할꼬 하며” 회개하여 하루 3천명이 세례를 받았지만,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자들은 (행7:57-58)“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 새”

 

살아 있는 나무에 물을 주면 싱싱하게 되지만,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 썩게 되듯 동일한 말씀을 받았지만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아침에 내린 이슬을 소가 먹을 때는 우유가 되지만,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는 것과 같이, 말씀을 받는 마음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합니다.

 

바울의 일행이 빌립보에서는 루디아의 집에서 머물렀던 것처럼, 데살로니가에서는 “야손”의 집에서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일할 사람을 붙여 주셨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훗날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향해 (살전2:20)“너희는 우리의 소망과 기쁨이며 자랑의 면류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3주간 복음을 전함으로 빌립보교회에 이어 유럽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로, 박해 가운데서 든든하게 세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말씀의 능력 때문입니다.

 

  1. 베뢰아, 신사적이었고 귀부인들이 돌아왔다.

바울과 실라는 불량배들을 피해 밤중에 그곳에서 약 80Km 떨어진 베뢰아로 향했습니다. 바울이 베뢰아 베뢰아에 도착하여 회당에 들어갔습니다. (10절)바울이 들어간 회당은 지금도 남아 있었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회당은 예수님 시대보다 50년 전에 세워진 것으로,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 거주지역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사진 7- 베뢰아 회당들어가 보지 못함)

 

바울은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같은 동족의 구원을 위하여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은 복음전파를 위해 외국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한인교회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회당 주변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집집마다 (시137:1)“우리가 바벨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는 성경구절을 기록해 놓고, 나라 잃어버린 아픔을 가지고 고국을 바라보며 기도한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진 8-베뢰아 회당 옆 가정집)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었다. (11절)“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거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인과 남자가 저지 아니 하니.” 옛날 성경은 “신사적”이란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진지하게 반응한 것을 “신사적”이란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으며,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헬라 귀부인과 남자들이 믿었습니다. 상류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주님에게도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과 실라가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들고는 베뢰아까지 건너가서 횡포를 부렸습니다. (13절)“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서 80km 떨어진 베뢰아까지 와서 횡포를 부렸습니다.

똑같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소동을 일으켰으나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베뢰아 사람들이 가담하였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오히려 베뢰아 성도들은 바울 일행이 큰 변을 당할 것이 예상하여 배편으로 바울을 아덴으로 피신 시켰습니다.

(사진9 A-바울의 말씀을 청종한 베뢰아 사람, 사진B- 빨리 베뢰아로 떠나라 소식 전하는 천사)

사진9- A , 베뢰아 사람들

사도행전을 영어 성경에는 “Acts”라고 했습니다. 행동이란 말입니다. 포탄이 언제 위력을 발휘합니까? 포구에서 나갈 때입니다. 아무리 강한 폭탄이라도 포구 안에 있으면 개미 한 마리도 죽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도 전파될 때 강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가장 힘이 있을 때는 복음을 전파할 때입니다.

 

유럽 최초의 빌립보교회는 루디아와 간수의 가정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가운데서도 굴하지 않은 “야손”의 가정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베뢰아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였습니다. 비록 부족한 저희들을 세운 교회이지만, 사람의 교회를 통해 더 많은 영혼들이 주님에게도 돌아오는 역사가 날마다 더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