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에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

성경 : 창세기 46 : 27-34 /  2018. 5.13(어버이 주일)

헤밍웨이의 “세계의 수도”란 단편소설이 있는데, 스페인 마드리드를 배경을 썼습니다. 한 아들이 탕자처럼 집을 나갔습니다. 집을 나간 지 열흘이 지났을 즈음에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아들을 찾기 위해 신문에 “아들, 빠코야, 다음 주 화요일12시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광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 광고를 보고 화요일 12시에 호텔 앞에 모인 “빠코”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무려 800명이나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헤밍웨이는 이 책에서 “아버지를 떠난 자녀, 탕자가 이렇게도 많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야곱은 비교적 자녀를 많이 둔 아버지로, 자녀로 인하여 마음고생이 누구보다 많았습니다. 오늘은 야곱을 통해 부모의 마음이 무엇이며,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부모는 자녀들이 화목 하는 것을 원합니다.

양주동 작사, 이홍렬씨가 작곡한 “어머니의 마음”이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함께 불러보겠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야곱은 12남 1녀를 두었는데, 그 형제들이 요셉을 돈을 받고 판 후 아버지께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라고 거짓말까지 하였습니다. 이후 야곱은 자녀들로 인해 막내 베냐민까지 잃을까봐 겁에 질려(창42:38)“너희가 내 흰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또한 야곱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총리가 된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복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요셉에게 “형제들을 용서하라”는 유언까지 전달하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형제들의 잘못을 용서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거주할 거처와 양식까지 공급하므로,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습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화목한 모습을 보고 (30절)“내가 이제 죽어도 족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나는 이제 기쁘게 죽을 수 있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주님은 형제간의 화목이 제사보다 우선시 하셨습니다. (마5: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즉, 가족과 형제간 화목 없이, 분쟁 상태에 드리는 제사와 예배는 받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가인이 제사입니다. 더 적극적인 해석은 온 가족과 형제간이 함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부모공경과 하나님 공경은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고 동시에 나타난다고 교훈하였습니다. (롬1:28,30)“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부모를 거역하며” 부모를 거역하면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혹 형제끼리 미워하여 서로 말도 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부모는 좀 가난하고, 못 배워도 형제와 서로 화목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좋지 않는 형님과 동생이라 할지라도 부모에게는 모두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고 용납한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서로 화목한 것을 보고 “이제 내가 기쁘게 죽을 수 있다.”고 고백한 것과 같이 우리 부모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불화를 극복하고 형제와 이웃이 서로 화목하길 바랍니다.

  1. 부모는 자녀와 가까이 살고 싶어 합니다.

야곱이 130세에 애굽에 이민을 와 17년 살았습니다. 이제 연세가 147세 되었습니다. (창47:28)“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하였으니 그의 수가 일백 사십 칠세라” 그러니까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애굽에서 17년 동안 모셨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은 공교롭게도 (창37:2)야곱이 요셉을 17년 동안 양육했던 기간과 동일합니다. 요셉이 아버지를 어떻게 봉양했습니까?

 

(창47:11-12)“요셉이 그의 아버지와 형들에게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또 그의 아버지와 형들과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요셉은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거처와 식물로 공궤하였습니다. 이보다 소중한 것은 요셉이 아버지와 함께 살고자 했던 마음입니다. (창45:10)“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가깝게”란 단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자녀들은 부모를 모시는 것은커녕 가급적 부모와 멀리 떨어져 살려고 합니다.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고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기도합니다. 오죽하면 정부가 부모를 모실 때 세금 혜택과 부양비까지 지급하고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을 십계명을 통해 요약해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두 돌 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 1돌 판에는 1계명부터 4계명으로,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법입니다. 제 2돌 판에는 5계명부터 10계명으로, 이것은 사람과 사람에게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엡6:2-3)“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잘된다.”는 “내가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된다는 뜻으로, 주님은 내가 그려 놓은 것이 아닌, 하나님이 그려놓은 그것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많은 형제들 속에서 자신이 노력하여 아무리 큰 꿈과 계획을 가졌다하더라도 훌륭한 목축업을 하는 정도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그 이상의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을 때 양식을 사러 온 형제들에게 물어본 첫마디가 “아버지 야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너희들이 말하는 그 노인이 잘 계시느냐?” 부모를 공경한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조선시대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왕의 신하가 자기 어머니를 고려장하기 위해 등에 업고 깊은 산에 버리고 내려오려 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애야! 네가 길을 잃지 않도록 중간에 나무 가지를 꺾어 놓았구나. 그것을 보고 가면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어머니를 버릴 수 없어 다시 등에 업고 집으로 내려 왔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중국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조선에 훌륭한 인재를 찾기 위해 왔습니다. 지혜로운 인재를 찾는 방법은 똑같은 두 마리 말 중에, 어미 말과 새끼 말을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신하들이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집으로 와 자기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두 말에게 먹이를 주면 먼저 먹는 것이 새끼이고, 옆에서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어미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이후 이 아들이 재상으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한자에 “효(孝)”라는 글자를 보면 “늙을 노”자에 “아들자”로 되어 있습니다. 효란 “자녀가 부모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 효입니다. “황새는 그 어미가 날 수 없을 때에 그 새끼들이 먹이를 가져온다.”고 했는데, 사람이 부모를 저버리고 모른 채 할 수 없습니다.

 

송강가사 “어버이 살으실제 섬기기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 닮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 예수님도 30세 까지 목수로서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겨 부양하도록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부모가 자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를 지키려는 자존감이 있습니다. 어쩌면 자존심은 콘크리트 장벽보다 무너뜨리기 힘든 장벽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자존심을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은 자녀입니다. 부부는 서로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하지만 자식에게는 가능합니다.

 

마가복음 7장에 귀신들린 딸을 가진 한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머니는 “주여 옳습니다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어머니는 딸을 고치기 위해 모든 자존심을 버릴 수 있었고, 어떤 수치도 감수 할 수 있었습니다.

 

자녀가 잘되는 일이라면 좋아하는 술 담배도 끊겠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자녀를 위하는 것이라면 도둑질 외 다 하겠다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자식이 잘되는 일이라면 부모의 자존심이나 체면이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녀를 위해서 짓밟힐 수도 있고, 수모를 당하고 자존심고 버릴 수 있지만, 이마저도 할 수 없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하시는지 아십니까? (창37: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부모는 자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울게 웁니다.

 

부모의 가장 큰 아픔은 자식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지만, 정작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 때문에 부모는 자녀들 몰래 많이 우는 것입니다. 슬프고 아파서 우는 것도 있지만, 대신 할 수 없기에 우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방탕의 길로 갈 때, 자녀가 불신앙의 길로 갈 때, 자녀가 패역의 길로 갈 때에 그것이 곧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울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이 울었고, 다윗이(삼하13:37)“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울었고, 탕자 아버지가 울었습니다.

 

“존슨”이란 사람은 “어머니”(Mother)란 단어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M”은 어머니가 자식에는 주는 것이 수백 만 가지라는 뜻에서 “Million”의 약자이며, “O”는 어머니도 늙는다는 뜻에서 “Old”이며, “T”자는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Tears”이며, “H”는 변치 않는 어머니의 마음을 뜻하는 “Heart”이며, “E”는 사랑의 눈빛으로 감싸주는 “Eyes”이며, 마지막 “R”은 어머니의 진심을 의미하는 “Right”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부모를 울게 하지 않길 바랍니다. 형제가 불화하는 것은 부모를 울게 하는 일입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모른 채 하고 외면하는 것은 부모를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부모가 빨리 세상을 떠나야 내가 자유롭다는 생각은 부모를 지옥으로 내려가게 하는 일입니다. 이사야는 “소도 그렇게 하지 않고, 나귀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너희는 소와 나귀보다 못하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어버이 주일에 꼭 결심할 수 있길 바랍니다. 형제와 싸우지 않고 화목하겠습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부모님을 공경하겠습니다. 부모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여 이 땅에서 장수하고 축복받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