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이 갖고 싶어 한, 세 가지

성경 : 시편 127 : 1 – 5  /  2018. 5. 6(어린이주일)

시편 127편은 솔로몬의 시입니다. 그는 세상 모든 부귀영화를 누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싶었던 모든 것을 가졌고,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다 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정과 기업과 그리고 자녀입니다.

본문은 “솔로몬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128편도 솔로몬의 시라고 말합니다. 시편127편과 128편은 화목한 가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행복한 가정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역설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갈망하면서 “나도 이런 가정을 가져보고 싶다.”고 소망한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솔로몬이 그토록 갈망하고 갖고 싶어 한 세 가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에서 쉼을 누리고 싶다.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한 솔로몬이지만, 갖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가정입니다. 그러기에 (2절)“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소망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출생부터 본처가 아닌 우리아의 아내에 의해서 출생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긴 했지만, 배다른 형, 아도니야와 치열한 칼부림을 하였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 7백의 왕후와 3백의 첩을 두었습니다. 1천 여 명이나 되는 여인들 사이에서 수 많은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시편 127편, 128편에서 그려놓은 소박한 가정을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천명이나 되는 아내들과 배 다른 형제와 한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것이나 한 집에서 잠을 자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솔로몬이 “여러 여자가 아닌 한 집에서 한 아내와 자녀들과 한 밥상에 둘러 않아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다.”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까닭에 솔로몬은 (1절)“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하였습니다. 솔로몬이 그토록 부러워 한 가정은 바로, 하나님이 세워주신 가장,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을 갖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우리가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정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에서 허락한 최고의 보금자리며,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이 세워 주신 가정이야 말로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안전한 곳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정보다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없으며, 가정보다 쉼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였을 때도 에덴동산은 빼앗았지만 가정은 빼앗거나 파괴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가인의 후손들의 가정도 진멸하지 않으시고 보존해 주셨고, 에서의 후손의 가정도 생존할 수 있도록 거처를 주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 하였을지라도, 이 땅에서 가정을 통해 안식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민족은 2천년 넘게 유랑생활을 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습니다.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자녀교육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 그리고 가정을 들고 있습니다. 세상이 요동쳐도 그들의 가정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입니다.

 

어떤 사람이 가정(Family)을 이같이 설명하였습니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어머니 아버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쉴 수 있는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고, 부모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적어도 솔로몬보다 행복한 자들입니다.

사회학 이론 가운데 “거울 자아이론”이란 것이 있습니다. 내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대로 반영된다는 이론입니다. 선입견을 갖고 “남편이 미워”하면 밉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볼 때 “한심한 놈, 아내를 잔소리꾼으로 바라보면 그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국속담에 “까마귀는 자기 새끼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가족에 대하여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을 용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소중하게, 가족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내 손으로 수고한 기업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싶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맞은편 집에 할머니 한분이 계신데, 매일 자기 딸이 직장에 출근을 하면서 어린 손녀(3-4살)를 맡기면,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서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런 후 밤 11시 쯤 되면 딸이 직장을 마치고 자기 딸을 다시 찾으러 옵니다. 어제는 토요일인데 여전히 오전 7시에 직장에 가기 전에 친정어머니에게 딸을 맡기고 직장에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11시에 돌아와 딸을 맞이할 때를 보면 아파트 전체가 떠들썩할 정도로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하루 종일 피곤도 할 것인데, 삼 부녀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 젊은 여인이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지키지 않는 힘이 바로, 저 어린 애기에게 있구나!”

 

솔로몬이 꿈꾸었던 행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수고하고 싶다.”라는 고백입니다. “무슨 이런 소원이 있는가?”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가족을 위해서 수고하고 땀 흘려, 얻은 소득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기쁨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 시대는 농경사회로, 온 가족이 일터에 나가 곡식을 심고, 여름이면 김을 매고, 가을이면 수확을 합니다. 수확이 적을 때, 서로 낙심하지 말라며 서로 위로합니다. 수확이 많을 때는 온 가족이 함께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가족과 함께 땀 흘려 일할 기업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가족을 위해 수고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이 이룬 기업에서 가장으로서 한 아내와 자식이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솔로몬이 꿈꾸었던 행복을 매일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자녀가 짐이라고 생각하고, 가족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수고와 땀을 나눌 수 있는 기업이 있으며, 가족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솔로몬보다 행복한 자들입니다. 고생하며 땀 흘리는 일터, 수고를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 때문에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으로 힘을 얻음을 알아야 합니다.

 

르무엘의 어머니는 현숙한 여인에 대해(잠31:10, 13,15)“누가 현숙한 여인을 얻겠느냐?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주부가 자기 개발을 통해 남편을 도울 것을 제안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위한 수고의 기쁨이 얼마나 큰가를 맛 볼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나는 언제 자녀들을 다 키울까?”“언제 시집장가를 다 보낼까?” “빨리 가정에서 탈출하고 싶다” 나도 빨리 식과 남편,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취미생활도 좀하고, 친구도 자유롭게 만나고, 여행도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중년기나 갱년기 때 찾아오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중년기, 갱년기라는 함정에 빠져 소중한 가정과 가족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고린도교회 여성도 브리스길라는 남편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에 동참하였습니다. 우리 주님도 가족의 구성원으로 가족의 부양위해 노력을 아끼기 않았습니다. 부부가 함께 일하고, 가족이 함께 일하는 것은 단순히 수입을 더 얻겠다는 경영의 차원이 아니라, 온 가족이 결속되고, 서로 신뢰하고, 기쁨과 평안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가정에 주신 기업을 온 가족이 함께 동참함으로, 더욱 큰 기쁨을 소유하길 바랍니다.

 

  1. 화살과 같이 곧은 자녀를 얻고 싶다.

솔로몬은 자식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3절)“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절)“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솔로몬은 일찍이 자식보다 큰 기업이 없으며, 큰 상급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약에서 기업이란 두 가지를 말합니다. 땅과 자녀입니다. 자녀는 땅과 같은 속성이 있는데,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가장 갈망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4절)“여호와께서 주신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자식은 화살이다.” 장사가 전쟁터에서 화살이 없으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자식이 없으면 부모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라는 말입니다.

 

화살은 곧아야 목표물을 맞힐 수 있습니다. 화살이 목표물에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구부러진 화살로는 목표를 맞힐 수 없듯이 구부러진 자녀, 바르지 못한 자녀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빗나간 화살이 사람을 해하고 죽일 수 있듯이, 성경은 구부러진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고 통곡하게 했는가를 수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엘리는 제사장이었지만 두 아들은 불량자였습니다. (삼상2:22)“엘리가…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24)“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엘리는 자녀들이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25절)“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잠13:24)“매를 아끼는 자는 자식을 미워함이라”, (엡6:4)“아비들아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훈계”란 현재 능동형으로, 아이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자라지 않는 것을 지적한 말입니다. 사람은 지속적으로 교정해 주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 자녀는 내 말을 잘 듣겠지? 착각입니다. 미운 7살보다 힘든 것은 장성한 자녀입니다. 6살 때 “유치원 안가?”, 7살 때는 “학교 안가” 중학교 때는 “교회 안가?”부모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러다가 청년 때는 “백 댄스 하는 여자를 데리고 와, 엄마, 아빠 나 이 여자와 결혼할 거예요”입니다. 그러면 “내 숨넘어가는 꼴 보려고 이러나”하면 “숨넘어가세요!” 합니다.

 

(26:35)“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이삭과 리브가도 몇 번이나 숨넘어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자녀에 대해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 가정을 보라”“저 집 아이를 보라”자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지런히 가르치고 기도할 뿐입니다.

 

웨슬리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세 가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첫째 “네게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둘째는 “네게 준 돈을 어떻게 썼느냐?”그리고 셋째는 “네게 준 자녀를 어떻게 가르쳤느냐?” 당연히 저와 여러분들도 답변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정도, 솔로몬이 갈망하고 소망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통해 온 가정이 평안을 누리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빗나가지 않고, 올 곧게 성장할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