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할 때

성경 : 사사기 1 : 1 – 3 / 2018.  4.29

 

 

최근 한국 결혼 정보센터에서 “결혼 기피 첫 번째 대상이 누구인가?”라는 조사에서 1순위를 공개했는데, “마마보이이라고 답했습니다. “마마보이”란 지나치게 어머니의 과잉보호로 자기의사가 없는 남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마마보이에 대하여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 만나면 후회할 사람이라고까지 경계하였습니다. 마마보이가 어떠하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주체성이 없다. 자기의 의견은 없고 엄마의 의견을 무조건 따른다. 책임지기 싫어하고 어린아이처럼 살려고 한다.”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 그대로 “마마보이”의 모습을 속 빼 닮았습니다. 가나안을 점령한 영웅,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크게 3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세 가지 반응 모두가 병적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할 때”라는 제목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책임한 사람이 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가장 위대해 보인 순간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죽는 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보다 모세가 위대해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홍해를 건넜고 광야 40년간 동고동락하였습니다. 이런 지도자가 세상을 떠난 것은 부모를 잃은 것보다 더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워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백성들은 모세가 세상을 떠났을 때와 똑같이 넋을 잃고 방황하였습니다. (1절)“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우왕좌왕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 “사람이 들어온 자리보다 떠난 자리는 더 커 보인다.”는 말과 같이 이스라엘에게 여호수아가 떠난 자리는 더욱 컸습니다. 여호수아는 난공불락 여리고 성을 시작으로 가나안 7족속, 31왕국을 차례로 정복해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여호수아가 요충지대는 대략 점령했지만, 산악지대는 점령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전쟁에서 최고의 장수가 죽었다는 것은 국가의 최대 위기라 할 만했습니다. 전쟁에서 여호수아는 절대적인 의지였고,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 적진 한 가운데 데려다 놓고 여호수아를 불러갔습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이스라엘은 한결같이 “누가 우리를 위해서 싸울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싸울까?” 이보다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살아있는 동안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자녀들이 우리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누가 우리를 먹여 살릴까?”이런 말을 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40일 만에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고, 낙심하며 전직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이 3년 동안 가르치고 훈련한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 것처럼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어떤 책임감도, 어떤 계획과 대책도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그들을 남겨둔 채 하늘로 떠났습니다.

사람은 위기를 당할 때 사람에게 매달리고 사람을 과잉으로 의지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변 상황과 상관없이 때가되면 사람을 불러 가십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은 새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옛 사람을 데려가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평생토록 “이르면 안 된다”“믿음의 생활 잘해라” 타일러 주는 분은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가 언제까지 내 곁에 계실 것이라 믿고, 부모가 챙겨주는 짭짤한 용돈과 안일에 빠져 있으면, 책임감을 잃게 되고, 결혼도 어렵게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임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부모 공부하라하면 마지못해 하는 척하고, 교회가자하면 못이긴 척 따라나서는 마마보이와 같은 모습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1. 주변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껏 여호수아가 없는 가운데 가나안 땅을 정복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라고 서로 눈치만 보고 미적 꺼리고 있었습니다. 무책임한 자의 태도는 “주변 눈치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마마보이의 또 다른 특징은 엄마 눈치를 본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마마보이로 자라 결혼을 하고 직장인이 되고, 군인이 되고, 심지어 장관과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에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결혼을 하면 아내의 눈치를 보고,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고, 군대에서 지휘관의 눈치를 보고, 장관이 되었을 때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심지어 북한의 눈치를 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눈치를 본다.”는 줏대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비극적이고, 가슴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여 서로 눈치만 보고 미적거리고 있을 때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지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앞장서라고 하셨습니까? 유다지파입니다.

 

유다지파의 반응은 (4절)“유다가 올라가매” 참으로 모범적인 행동입니다. 전쟁에서 앞장을 선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유다지파는 참으로 용감한 지파였습니다. 유대지파의 용감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전투가 한창 치열할 때 유다지파의 족장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수14:12)“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갈렙의 용기와 희생정신으로 “헤브론”은 유다지파의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희생과 용기 있는 유다지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유다지파를 통해 메시아가 나온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약점가운데 하나는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머뭇하며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지식은 많으나 용기가 없고, 힘은 있으나 결단이 부족합니다. 결단은 항상 도전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전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인생은 선택과 결단의 연속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선택에 직면하게 됩니다. 5분을 더 누워 있을 것인가? 교회에 갈 것인가? 어떤 옷을 입을 것인가? 어떤 직장을 구할 것인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건강할 수 없으며, 항상 젊을 수만 없습니다. 봉사도, 섬김의 기회도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 결혼 이야기…]

 

우리가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 생활하는 것보다 안타까운 것이 없습니다. 놀랍게도 마귀는 교회가 활동적이고 부흥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합니다. “마귀는 너무 앞장서지 말고 적당하게 하라”“이 정도면 됐다.”라고 시시각각으로 주문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눈치를 보며 뒤에서 따라갈 것이 아니라 유다지파와 같이 “내가 먼저 하겠습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가시로 인해 눈물을 흘리게 되다.

스페인 RTV 방송에서 자주 “동물의 세계”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사자나 호랑이가 먹이를 사냥할 때 참으로 기가 막히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먹이 감을 선정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곳에 떼를 지어 있는 무리들을 추격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만듭니다. 다음은 가장 뒤에 낙오된 한 마리를 집중적으로 추격합니다. 대열에서 낙오된 동물은 곧바로 먹잇감이 됩니다.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후 12지파는 모래알처럼 나누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주신 명령을 따라 마음을 합해 가나안 땅을 점령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분배 받은 땅에 살고 있는 가나안 땅 사람들과 타협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다지파가 시므온지파에게 제안을 합니다. (3절)“유다가 그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나의 제비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유다지파와 시므온지파가 연합전선을 구축하였을 때 (1:17)“유가가 그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승전보가 전해 졌습니다.

 

대신 나머지 지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21)“베냐민 지파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므로 오늘까지 예루살렘 거주하니라.” 지금 예루살렘의 인구는 약 80만 명인데, 이중 유대인은 20만 명 정도이며, 그 외 60만 명은 아랍계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지금까지 가나안족속들이 가시가 되어 아픔을 당하고 있으며, 그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22절)요셉 가문은 벧엘에서 잘 싸웠습니다. 그러나 (27절)므낫세 지파, 28절)에브라임지파, (30절)스불론 지파, (31절)아셀 지파, (33절)납달리 지파 등은 전투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대분의 지파들이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전체 대열에서 이탈하므로, 훗날 가나안 족속이 올무가 되어 그들에게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2:3,4)“옆구리에 가시가 되어 백성들이 소리 높여 우니라”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아말렉군대였습니다. 아말렉은 전체 대열에서 낙오된 백성들을 후미에서 약탈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언제 주님을 부인하였습니까? 흩어졌을 때입니다. 사탄은 아담이 없는 틈을 타 하와에게 접근하여 유혹했습니다. 아무리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도 하나씩 떼어놓으면 곧바로 커져버리고 맙니다. 사탄은 대열에서 빠진 사람을 향해 공격합니다.

 

믿음생활도, 기도도 봉사도 교제도 함께 해야 합니다. 개미도 힘을 모으면 태산을 만들며,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를 내며 사자도 잡아먹습니다. 우리는 대열에서 빠진 사람이 없는가? 챙겨야 합니다. 나와 함께할 시므온이 누구인지 찾아야합니다. 가나안 정복의 역사가 주는 교훈은 우리가 “함께할 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할 때 무책임하게 되며,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며, 결굴 준비하지 못하고 무책임한 것이 결국 아픔이 되어 눈물로 돌아오게 됩니다. 히브리 기자는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히10:24-25)“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믿음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말고,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