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너질 때에

성경 : 사도행전 16 : 25-34  / 2018. 4. 15

복음 성가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가사 가운데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라는 구절을 오늘 설교 제목으로 따 왔는데, 오늘은 본문을 통해 “마음이 무너질 때”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의 삶 가운데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한국 해군군함이 북한에게 피격되어 침몰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한국 해군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습니다. 군대에 보낸 자식들이 죽은 시체로 돌아오는 것을 본 부모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들의 시신을 쓰다듬으며 혼절하는 부모의 마음이 바로 “무너진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음이 무너진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마음이 무너질 만했지만, 기도와 찬송으로 극복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더니 옥터가 움직이면서 옥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 하였습니다.

 

(27절)“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간수는 죄수를 지키는 자입니다. 그런데 옥문이 열려 죄수들이 도망을 갔을 때 간수는 곧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죄수들이 탈출 하다니 그럼 나는 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 생각하고 스스로 자결하려 한 것입니다.

 

워처만니 목사님(20년간 감옥)이 사역하는 중국지역에 두 농부가 살았습니다. 한 농부는 부지런하였지만 다른 한 농부는 게을렀습니다. 두 농부는 똑같이 산비탈에 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부지런한 농부는 매일 물을 지고 비탈 밭에 올라가 물을 주었습니다. 반면 게으른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의 밭 아래편에 밭은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뒤늦게 밭에 나가 부지런한 농부의 밭에 구멍을 내어 자기 밭으로 물을 빼갔습니다. 이것을 안 부지런한 농부는 엄청나게 화가 났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에 당장 화풀이를 하지 못하고 워처만리 목사님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한 후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물을 빼간 사람과 다투지 말고 참으며, 내일 아침에 다시 물을 주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화가 났지만 다음 날에 다시 물을 져 날랐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도 계속하여 게으른 농부가 똑같이 얄미운 짓을 하였습니다. 그 순간 농부는 마음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아들압살롬이 왕위를 탐내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죽이려 했을 때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삼하15:30)“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 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누가복음 15장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유산을 받아가지고 집을 나가겠다고 하였을 때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우리 주님도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보시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시면서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마음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였을 때, 사업에 실패하였을 때에, 파혼을 당하였을 때, 시험에 낙방하였을 때, 불치의 병을 진단받았을 때, 자녀들이 믿음에서 떠났을 때 마음이 무너집니다.

저는 낙동강이 있는 곳에서 자랐습니다. 제 초등학교 때 홍수로 인해 제방이 무너져 집과 논밭이 모두 물에 잠기거나 떠내려갔습니다. 물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집어 삼켰습니다. 사람의 생각도 이와 비슷합니다.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거나 충격적인 일을 당하게 되면 생각과 감정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폭발하게 됩니다. 즉, 마음의 제방이 무너집니다.

 

간수는 마음이 무너질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부지런한 농부는 마음이 무너질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윗과 탕자의 아버지는 마음이 무너질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우리는 마음이 무너질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마음이 무너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간수는 마음이 무너질 때에 자결하려 하였습니다. 그때에 바울과 실라는 즉각적으로 외쳤습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그러자 간수는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31절)“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답하였습니다.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악한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 우리의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면 모든 것을 파괴시킵니다. 간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너진 마음이 다시 회복할 수 있었고 오히려 간수는 그날 이후 주님을 영접하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33-34절)

 

부지런한 농부는 게으른 농부의 얄미운 짓으로 마음이 무너지고,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지런한 농부는 억눌린 감정과과 원망을 게으른 농부에게 직접 폭발하지 않고, 목사님에게 찾아갔습니다. 그것은 게으른 농부를 찾아 가기보다 목사님을 찾아가는 것이 쉬웠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목사님께서 농부에게 (롬12:17)“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말씀을 주시며, 내일은 게으른 농부의 밭에 먼저 물을 져 나르고 자기 밭에 물을 주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울화통이 나서 내키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3일 지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게으른 농부가 부지런한 농부의 집에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마치 본문 간수가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한 말과 비슷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농부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마음이 무너질 때에, 자칫 그의 생각이 파괴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산적인 생각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집니다. 하나는 드물지만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변화시키는 경우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그를 변화 시켰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사도행전 2장, 베드로가 설교를 했습니다. 놀라운 것은(행2:37-38)“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며 3천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행7:54)“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사람의 차이 때문입니까? 아니면 설교의 차이입니까? 마음의 차이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었지만,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꼭 닫아버렸습니다.

 

간수는 마음이 무너질 때에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붙잡았고, 부지런한 농부는 마음이 무너질 때에(롬12:17)“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시19:7)“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신다.” 우리가 마음이 무너질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마음이 무너질 때에, 가족과 공동체를 생각해야 한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 개발기구, 35개국으로 아시아는 한국과 일본 2개국만 가입) 국가 중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로, 2017년 기준 하루 40여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타나났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자살한 사람의 공통점은 “주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간수가(30절)“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S.O.S”를 보냈을 때 바울과 실라가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31절)“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받으리라” “당신이 죽으면 당신의 가족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말입니다. 간수는 “네 가정이 구원을 받는다.”란 말을 듣고 자결할 수 없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 역시 마음이 소용돌이 칠 때 목사님이 “우리는 수십 년 형제와 가족처럼 살아왔는데, 지금 이 순간을 참지 못하면 우리 자녀들은 원수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롬12:20)“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농부는 “목사님은 하지 못하면서 나에게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주님의 말씀이기에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농부는 주님의 교훈에 근거하여 목사님의 가르침에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게으른 농부를 찾아 복수하고 싶었지만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생각하며 참고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가르침과 교훈 앞에 모두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도 때론 직장도 그만두고 싶고, 학업도 포기하고 싶고 신앙생활도 그만두고 싶고, 인간관계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자녀, 그리고 교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양보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소중한 인간관계를 너무 쉽게 외면하거나 포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요셉이 형제들에게 당한 억울함 때문에 그들을 외면했다면 지금과 같은 구약을 읽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다툰 일로 서로 등을 돌렸다면 오늘의 유럽은 없었을 것입니다.

 

소금은(Nacl) 나트륨과 염소가 결합된 결정체입니다. 소금이 참으로 유용하지만 나트륨(Na)과 염소(Cl)를 분리하면 둘 다 사람에게 해로운 물질이 됩니다. 모자라고 부족한 우리가 마음을 합치면 유익한 것으로 바꿀 수 있지만, 서로가 분리되고 나누어 질 때, 피차 해를 주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때론 간수와 농부, 그리고 바울과 실라와 같이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가족과 교회 공동체는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합니다. (빌4:7)“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너질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통해 다시 일어날 수 있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