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믿음의 3대 과제”

성경 : 요한복음 20 : 24-29 /  2018. 4.  8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이런 편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자 경찰은 여자보다 범인을 잘 잡는다.”, “미국에 오래 살면 영어를 잘 한다.”, “면접을 할 때 복장이 좋지 않으면 불합격할 확률이 높다.”

 

우리 또한 예수님의 제자 “도마”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의심 많은 제자”입니다. 그것은 목사님의 설교와 함께 특히 작가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카라바조는 “도마의 의심”이란 그림이나 렘브란트의 “의심하는 도마”란 작품은 도마가 허리를 바짝 구부리고 손가락으로 예수님 옆구리에 넣어 확인하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도마에 대해서 세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11장, 14장 오늘 본문 입니다. 교회사의 기록을 보면 도마는 훗날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인도교회는 매년 7월1일 도마순교기념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도마에 대한 요한복음의 세 곳을 통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믿음의 3대 과제”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반드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도마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은 요한복음 11장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에게 “우리가 유대로 함께 가자”고 하였을 때 (요11:8)“제자들은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라고 모든 제자들이 반대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아주 적대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도마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요11:16)“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가지말자고 했지만, 도마는 주님이 “나사로가 죽었으니 그에게로 가자”라고 하였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나사로의 죽음과 남아있는 마르다 마리아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고, 결국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베다니에 도착하였을 때 나사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25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신 후에 나사로를 살려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제자들과 도마는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 많은 도마라고 생각한 도마는 다른 제자와 달리 나사로의 죽음과 유가족,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하여 누구보다 더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도마가 타인의 죽음을 깊이 생각했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전7:2)“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초상집은 잔칫집과 달리 슬픔이 있는 곳입니다. 잔치 집에 내가 줄 수 있는 기쁨은 크지 않지만 초상집은 내가 줄 수 있는 위로는 아주 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초상집보다 어려울 수 없습니다. 초상집에 갔다 왔을 때, 상대에게 위로를 주지만, 내가 더 많은 위로를 받고 돌아옵니다.

“토레이 목사는 설교를 잘 하시는 분으로, 그가 설교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자리가 꽉꽉 찰 정도입니다. 어느 교회 초청을 받아 몇 일간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목사님은 내일은 “죽음에 관한 설교를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다음 날 절반도 차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생활하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은 죽음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왜 내가 죽느냐 가 아니라 나도 역시 죽는다.” 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이해 못할 일이 아니라 이해할 수 있고, 그럴 수 없는 일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계14:13)“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시116:15)“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이 소망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반드시 천국에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두 번째 도마에 대한 기사는 성만찬 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14:3-4)“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고 하셨을 때에 도마가 나섰습니다. (요14:5)“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질문하였습니다.

 

도마의 질문은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천국에 대해 알고자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다른 제자들도 모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모르면서 가만히 있거나 아는 체 하지 않았고, 내세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알고자 하였습니다.

 

주님은 도마의 질문에 자세히 답변해 주었습니다. (요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잘 모르고 이해되지 않는 것에 대해 알고 하는 것은 결코 나쁜 태도가 아닙니다. 진리에 대해서 모르면 몇 번이라도 질문을 해서라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체면이나 나이 때문에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는 세상을 향해 말하기를 주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며, 사람들은 파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 후에 가게 되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이나 영화, 문학작품에서 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천국과 지옥을 잘못알고 있으며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나사로 사건은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천국과 지옥의 실제적인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자가 간 곳을 “음부”, (마9:47)“지옥”(Hell), (마8:12)“고통스러운 곳”, (계2:7)“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죽은 후 간 곳은 “아브라함의 품”, (요14:2)“아버지의 집”, (눅23:43)“낙원”, 계시록은 “천국”이라고 하였습니다. (고후5:1,2)“만일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니니”

 

(계21)“거기는 눈물이 없고 고통과 질병, 자시는 죽음이 없는 곳” 천국은 완전한 하나의 장소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종교가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구제, 성지순례, 하루에 5번 기도, 선행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도 스스로 노력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존 뉴턴 목사님은 82세로 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임종 직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천국에 갔을 때 3가지 놀랄 것이다. “첫째는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과 둘째, 기대했던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것과 셋째, 내 자신이 그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깜짝 놀랄 것이다.”

 

우리는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인생의 바른 길을 소개하는 것이 전도이며, 선교입니다. 다른 길,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우리 모두, 바른 길로 인도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1. 반드시 우리의 부활을 믿어야 한다.

본문은 도마에 대한 세 번째 기사입니다. (요20:19)“안식 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을 닫았더니”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때 도마가 없었습니다. 이후 제자들이 도마에게 (요20:25)“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하자 도마는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했지만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를 변호하는 입장에서 말한다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라고 말하자 믿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즉 제자들의 언행의 불일치가 도마를 더욱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부활을 증거하는 자의 삶과 믿음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거리에서 가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진짜같이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짓을 가지고 참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진리를 가지고 거짓처럼 보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도마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된 것은 주님께서 도마에게 (요20:27)“네 손 가락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하신 말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님은 도마에게 “나를 만져보라”고 했지만 도마가 직접 만졌다는 기록은 없으며, 요한 또한 “도마가 예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본 후에야 믿었다.”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도마에게 단 한 번도 “왜 의심하느냐? 의심 많은 자”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물위를 걸어오다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 붙잡아 주시며 (마14:31)“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도마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20:29)“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 되도다.”라고 하신 것처럼 도마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도마는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였을 뿐 아니라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요20:28)“도마가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마16:16)“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것과 동일한 고백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도마에 대하여 세 차례를 기록하였지만 일방적으로 “의심 많은 제자”로 부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한은 다른 제자들이 무관심하였던 죽음과 천국, 그리고 부활에 대하여 바르게 신앙고백을 한 것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15:51-52)“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우리 또한 죽음과 천국, 그리고 부활의 확신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