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는 누구인가 ?

 

성경 : 출애굽기 3 : 1 14 [수련회 셋째 시간, 2018.3. 31] 톨레도 수련장에서

1)모세란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나의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2:1-10)

(1절)“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한국은 여자가 시집을 가지만, 남자가 장가를 갔습니다. (창2: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자녀를 낳는 것이 큰 기쁨이지만,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1:22) 아들은 “잘 생겼다.” 준수하였습니다. 3개월을 숨길 수 있었지만, 그 이상 숨길 수 없었습니다. 미리암과 요게벳이 아이가 울 때마다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히브리 기자는 (히11:23)“믿음으로 모세가 낳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스데반은 (행7:20)“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 히브리 기자는 양 (히11:23)“부모가 석 달을 숨겼다.” 하였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자녀를 위해 얼마나 기도 했겠습니까? 그리스도인 부부란 함께 잠자고, 밥 먹고, 함께 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부부는 함께 기도하고, 믿음으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부부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갈대상자를 만들어 나일강에 띄워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왔다가 그 상자를 보고 모세를 키우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10)“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는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물에서 건져내다.”

1)그의 이름에서 구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에서 건져냄을 받았다.” 하나님이 모세를 물에서 건져 주었습니다.

2)갈대 상자에서 구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갈대상자는 히브리어로 “방주”란 뜻으로, 노아가 만든 “방주”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노아 방주를 통하여 그 가족을 구원받았듯이, 갈대상자를 통해서 모세가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란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 할 자”“구원자”, “방주”란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방주이신 예수님을 통해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와 여러분은 모두 모세인 셈입니다.

 

2)모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2:15, 3:1):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모세 120년을 살았습니다. 세 시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왕궁에서 40년, 광야에서 40년, 지도자로 40년입니다. (3:1)모세가 부름을 받을 때의 나이는 80세였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 나이가 많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먹였습니다. 모세 40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는(출2:12)“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니라.” (행7:22)“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40세에 통달한 고상한 지식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을 때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는” 모세가 40년 갈고 닦은 학문의 수준은 겨우 “사람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안 보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무신론적 가치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그에 비해 요셉의 가치관은 하나님 앞에서였습니다. (창39:9)“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의 고백입니다.

3)모세를 부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3:14):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1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말씀 속에 기독교의 세계관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을 시인하는 믿음은 기독교인이 되는 기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고백 할 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로 시작합니다.

우주 만물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첫 단어가 “태초에 하나님이” (In the Beginning)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며, 신약은 (마1:1)“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구약은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신약 (계22:20)“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예수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납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마7:)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를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둘째, (눅12:)재물은 준비했지만, 영혼을 위해 준비하지 않은 자. 셋째, (마25:)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 넷째, (시14:1)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를 어리석다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마지막을 준비하지 않는 자입니다.

 

기독교는 개인과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믿습니다. 이것을 “종말론적 신앙”이라 부릅니다. 주님도 (계22:13)“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지혜로운 자란 자신의 마지막을 바르게 알고 준비하는 자입니다.

 

4)모세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가? (3:10): 나에게 주신 사명이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미디안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 양을 먹이던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출3: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였을 때 모세의 반응은 (3:11)“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2절)“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셨고, 모세는“지팡이입니다”라고 하자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졌을 때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바다위로 내밀었을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지팡이는 양을 먹일 때에 사나운 짐승을 쫓을 때 필요했고, 피곤하고 약할 때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동안 의지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뜻입니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부모가 밥을 안주겠다고 하거나 야단을 칠 때가 아닌, 핸드폰을 빼앗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물건을 살 때, 처음에는 눈으로 확인합니다. 다음에는 냄새를 맡아보거나 맛을 봅니다. 마지막으로 손으로 만져 본 후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우리가 “이것만은 놓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붙잡고 있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십니다. 그것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우리 손에 있는 것을 던지지 않고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습니다. 모세가 손에 있는 지팡이를 땅에 던졌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명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알게 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5)모세는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가? (3:11, 4:1:, 4:10) : 나는 누구인가?

“내가 누구입니까?”,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아니하며, 매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합니다.” 모세의 핸디캡은?

 

히브리어 성경에 “사람”이란 용어가 무려 4248번 나타나는데 크게 세 가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담”이라 했는데, 아담은 “흙”이란 뜻이며, 다음은 “에노쉬”, 이것은 “약하고 병든”모습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이쉬 혹 께베르”는 “능력”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약하고 병든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우리 인생을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 인간을 “질그릇”이라고 했고,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고, “그를 죽이는데 온 우주를 동원할 필요가 없다. 물 한 방울이면 족하다.”라고 했고, 셰익스피어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고 했습니다.

 

(고전12:9-10)“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약한 것들을 기뻐하고,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약함”이란 말이 네 번 반복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점을 부인하거나, 방어하고, 원망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뇌성마비로 태어난 송명희 시인은 “내가 가진 약함이 아니었다면 이토록 많은 사역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기꺼이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가진 약함과 아픔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으로 끝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언제 기도하게 됩니까?” 물으면 “어려울 때”라고 말합니다. 평소 기도하지 않던 사람도 어려울 때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약점을 가졌다면, 그것은 곧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가진, 부끄러움과 수치까지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하신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가장 소망이 담긴 책은 계시록입니다. 계시록은 사도요한이 황량한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도 삶 가운데 가장 큰 기쁨과 감사는 감옥에서 쓴 옥중서신 가운데 넘쳐 나고 있습니다. 존 밀턴도 실낙원의 작품을 옥중에서 썼습니다.

 

우리 중에 “나는 약점이 많다”생각하시는 분이 없습니까? “나는 잘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없습니까?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합니까?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무엇으로 만드셨습니까? 그 흔한 흙으로 최고의 걸작품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가 갈라지게 하실 때에 그 흔한 막대기로 하였습니다.

골리앗이 맞아 넘어 진 것이 레이저빔이 아니라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흔한 돌멩이였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 3천 명을 죽인 무기는 죽은 나귀 턱뼈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가 좋은 것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흔한 것들을 사용하였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나, 바울처럼 훌륭한 사람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어부, 세리, 아주 약점이 많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가 가진 약점에 대해 감사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약함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엎드리게 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약함 가운데서 주님을 강하게 의지하는 성도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