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와 직분과 사역, 어떻게 할 감당할 것인가? (2018.1.14)

성경 : 고린도전서 12 : 1 – 7

미국에 척 스미스 목사님이 계십니다. 캘리포니아 주 LA 근교 오렌지카운티에 갈보리 채플 교회를 개척하였을 때 히피족들과 장발의 머리와 맨발, 기타를 들고 교회당으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교회를 찾아온 저들을 받아들였지만 다수의 교인들이 반대하였습니다. 냄새를 풍기며 맨발로 들어와 교회당에 깔아 놓은 카펫을 더럽힌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카펫은 다시 사서 갈면 되지만, 저 영혼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라며 교인들을 설득하여 그들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가진 문화와 음악이 복음찬송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 음악의 한 장르가 된 CCM이란 노래가 그들을 통해서 탄생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누구에게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맡겼는가? 둘째 왜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맡겼는가? 그리고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입니다. 오늘은 본문에 소개된 세 단어를 중심으로 “은사와 직분과 사역,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누구에게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맡겼는가? (3)

오늘 성경은 우리가 은사와 직분 사역을 감당하기 전 확인 할 것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받은 확신”입니다. 많은 분이 성령에 대해 애매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누가 “당신은 성령 받았습니까?”라고 물으면 식은땀이 나거나,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서 “글쎄요”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 받은 확신이 없거나, 성령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대 선생인 니고데모도 성령 받은 것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3: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그러하니라.” 지금 이곳에 바람이 불고 있는지,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렵 듯이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것과 술 취한 것을 혼돈하기도 하였습니다. (행2:13)“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 (삼상1:13)“한나가 입술만 동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엘리는 술 취한 줄로 생각하고 포도주를 끊어라” 성경은 성령 받은 사람과 술 취한 사람의 외적인 모습이 비슷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엡5:18)“술 취하지 말라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술 취한 사람은 우선 판단력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며, 술의 영향력에 지배를 받습니다. 반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옳고 그릇된 것에 대해 분별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절제하며 통제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성령에 다스림을 받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말씀은 성령 받은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3절)“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면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요일5:1,7)“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자니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오늘 다시 한 번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성령 받았습니까?” 다르게 질문하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까? 두 가지 질문은 동일합니다. 내가 성령을 받은 확실한 증거는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으며, 내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내가 성령을 받은 증거가 된다는 뜻입니다.

제게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예수를 잘못 믿었나 봅니다.” 왜요? “저는 어떤 음성도 들은 적이 없고, 마음이 뜨겁지도 않으니 성령을 못 받은 것 아닙니까?” 성령 받은 증거를 느낌이나 감정으로 성령을 못 받았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행11:17)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여러분! 성령 받은 것을 확신합니까? 근거가 무엇입니까? 내가 주님을 구주로 믿기 때문입니다. 은사와 직분과 사역보다 앞선 것은 구원의 확신입니다. 구원의 확신, 성령 받은 확신을 가지고, 나에게 주신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왜 나에게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맡겼는가?

은사에 대한 세 가지 편견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아무 은사를 받지 않았다. 둘째, 내가 받은 은사는 우월하다. 셋째, 내가 받은 은사는 아주 보잘 것 없다.” 오늘 본문이 바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4절)“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절)“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절)“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하나님은 같으니”

 

위의 4, 5, 6절의 말씀은 12절 이후, 몸의 비유를 통해 다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며, 역할도 다릅니다. 그럼에도 독립되어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을 때 손이 가장 많은 역할을 하지만, 다른 지체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식당에 가기 위해 눈으로 지도를 보아야 하고, 발로 걸어가야 하고, 머리는 모든 것을 조정함으로 비로소 식사를 하게 됩니다.

 

신약에 19가지의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기록하고 있는데, 구분되기도 하지만, 서로 연결된 것이 특징입니다. 마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구분되어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은사와 직분과 사역, 세 단어는 모두 헬라어 “카리스” “은혜, 선물”이란 단어에서 왔습니다. 즉, 은사, 직분, 사역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이며, 선물”이란 뜻입니다.

 

은사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직분은 일할 수 있는 지위를 말하며, 사역은 임무, 오늘날로 표현하면 미션으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11절)“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누구나 은사와 능력, 지위를 받았습니다.

 

구약, 삼손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가공할만한 은사, 능력을 주셨고, 사사라는 지위와 직책을 주셨고, 그리고 압제받는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는 임무, 미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은사와 직분, 임무를 잊었을 뿐 아니라 육체적 소욕을 위해 잘못 사용하였습니다.

 

사사기 16장, 들릴라가 삼손에게 힘의 원천을 캐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나실인으로 폭로해서 안 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맞추어 봐라”며 수수께끼로 장난질하였습니다. 삼손은 또한 들릴라가 맞추지 못하자 낄낄되며 재미있어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사와 직분과 미션을 육체적인 놀이로 즐겼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은사와 직분과 임무”를 잘못 사용한 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왜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까? (히12:16)“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하나님께서 허락한 장자의 명분을 우습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롯의 사위가 멸망당한 것이나,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을 경고하는 것은 영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우습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직분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많으며, 우리에게 주신 임무, 미션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주님은 받은 은사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명백하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직분 그리고 사역을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나에게 맡긴 은사와 직분과 사역에 집중하라.

운동경기에서 “포스터 플레이”라는 전술이 있는데, 한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패스하여 득점을 꾀하는 공격 방법을 말합니다. 내가 골을 넣을 수도 있지만, 한 선수에게 패스하여 골을 넣도록 하는 전술입니다. 모든 선수는 자신의 이름보다 팀이 우승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제1 바이올린”을 수석 혹은 악장을 “콘서트마스터”라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제1 바리올린 수석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에 비해 제2 바이올린의 역할은 제1 바이올린 자리보다 덜 중요하지 않지만,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음악적인 재능과 기술을 제 1 바이올린을 위해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음악과 스포츠뿐만 아니라 은사와 직분,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엡4:11-12)“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사와 직분과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이 그토록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바나바, 실라,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은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혼자가 아닌 둘씩 짝을 지어 세상에 내 보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언제 넘어 졌습니까? 그가 홀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 속에 섞여 있다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하였습니다. 그가 혼자 있음으로 배반의 길을 너무 쉽게 갔습니다.

 

엘리야는 혼자 바알, 아세라 850명 선지자와 대결하여 승리하였고, 기도로 3년 6개월 동안 가뭄가운데 비를 내리게 한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로뎀나무 아래서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고 낙담하며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왕상19:10)“내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오직 나만 남았거늘” 혼자서 일하다 보니 낙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히10:24-25)“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큰 바위도 서로 합심하여 함께 박자를 맞추어 굴릴 때에 잘 굴러가듯이 교회도 나에게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고 서로 협력할 때, 이룰 수가 있습니다.

 

요즘은 “팔방미인”이나 “만물박사”가 될 수 없으며, 전문화 시대입니다. 내가 잘하는 것으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모두 다하겠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은사와 직분과 사역을 맡은 자는 먼저 구원의 확신, 성령 받은 확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것에 집중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