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것과 취할 것[2018.1.7 신년주일]

성경 : 에베소서 4 : 22-29

2018 새해가 밝아 왔습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 중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지혜를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사람은 옛 것보다는 새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 새 결심, 새로운 목표를 가져 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새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시인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를 끼울 구멍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이는 모든 일의 첫 시작과 출발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2018년 첫 주일, “버릴 것과 새롭게 취할 것”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내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격을 낳고, 성격은 그 사람의 삶이 된다.”라고 하였고, 우리말에도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처럼 생각과 습관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22절)“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섞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과거 하나님 없이 욕심을 따라 살았던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에 대해 17절-19절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7)“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 “허망한 것”이란 “가치 없는 삶”을 말합니다. “허망”이란 말에서 “허무주의(Nihilism)”란 철학이 나왔습니다.

 

“허무주의”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공허한 상태”를 말하는데, “허무주의” 대표적 철학자가 “니체”인데, 그는 “신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며 가치 없다.”라는 생각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생각에서 시작 됩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없으면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공허함을 오락, 취미, 술과 마약, 욕심과 욕구로 채우고자 합니다.

 

서방교회 4대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하나님 없이 살았던 과거의 삶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16세 여자에게 임신을 시켜 아들을 낳았고, 반항 심리로 친구들과 어울려 도적질을 일삼았으며, 이단 종교 마니교의 혼합종교에 빠져들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에 “사람의 마음에 있는 공허함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채울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기 때문입니다. (고후3:5)“우리가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이 허무하게 됩니다. 공허함의 해답은 하나님이십니다.

 

(19)“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방탕”이란 “헛되게 소모한다.”는 뜻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달란트를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을 말하며, “방임”이란 내버려 두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 주름이 생기는 것, 피부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피부에 좋은 음식, 근육에 좋은 음식 등, 몸을 보호하고 관리하는데 많은 투자를 하며,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이렇게 예쁘게 다듬어서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모세는 (시90: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각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모세의 계산대로 라면, 40살의 인생 시계는 6시를 가리키며, 60살의 인생시계는 9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60살은 15분 정도 인생이 남아 있다는 말이 됩니다. 15분이면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하고 세수하면 딱 맞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유효기간을 정해 놓았습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도 고철소리보다 못할 때가 있으며,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힘센 다리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때가 있으며, 밝은 미소와 다정한 모습도 주름으로 채워질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낭비하고, 헛된 곳에 사용할 여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롬6:12)“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스도인은 마음도 바뀌어야 하지만, 몸의 용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몸과 마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달란트를 낭비하지 말고 바르게 사용할 수 있길 바랍니다.

 

  1. 내가 새롭게 취할 것이 무엇인가?

(24절)“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표현법은 마치 낡은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옷은 사람의 역할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을 통해 그 사람의 신분과 역할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옷은 중요합니다.

 

군인이나 경찰관은 그들이 입은 제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입는 옷을 통해서 법관과 죄수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바뀌면 옷도 바뀝니다. 군인이나 경찰관이 민간인이 되면 옷을 바꾸어 입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분이 되었기에 새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취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25절)“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첫째, 우리가 새롭게 취해야 할 것은 이웃에 대한 말의 변화입니다. 성경에서 말은 추상이 아니고 동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삭에게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남인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창27:26-29)“그의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너는 네 형제의 주가 되고…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이 사실을 알게 된 에서는(창27:34,36)“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내게도 축복하소서! 야곱이 네 복을 빼앗았나이다. 내가 그를 죽이겠나이다.” 에서가 왜 통곡하며, 야곱을 죽이려 하였습니까?

 

야곱이 에서의 재산을 가로챘습니까? 아닙니다.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말, 아버지가 축복한 기도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기도와 아버지의 말은 실제였고, 보증 수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의 말대로 야곱이 그대로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부모의 말 한마디, 부모의 축복기도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아야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부모를 외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외면하는 것은 축복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며,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저주도 감수하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상처를 주는 말 한마디가 평생에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격려의 말, 위로의 말 한 마디는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나를 위해 축복을 빌어주는 말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금년에는 이웃에 대하여 덕을 세우는 말, 유익한 말을 사용하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둘째, 감정의 변화입니다. 인제대학에서 7천 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 무엇인가?” 1위가 “분노”라고 답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한 분노가 우발적인 범죄와 폭력, 다양한 범죄로 연결되는 경우가 50%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실제 요즘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살인, 상해, 방화, 폭력 등의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데, 헤어진 애인이 미워 자동차로 들이받고, 부부가 다투고 홧김에 불을 지르기도 하며, 부모에게 야단을 맞았다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기고, 경적을 울렸다고 앞으로 나가 급정거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도 하며, 미국에서는 걸핏하면 엽총을 발사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가장 먼저 사람을 죽인 사람이 가인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동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4:5)“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26절)“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은 바울이 (시4:4)“너희는 떨며 범죄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인용한 말씀으로 “분은 낼 수 있다. 그러나 죄는 짓지 말라.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풀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떤다.”란 “분노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직장과 일터, 많은 사람과 부딪쳐 화를 당하기도 하고, 모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 분노를 풀지 않고 잠을 잘 때,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밤이란 쉬는 시간이며 잠을 자는 시간인데, 화를 품고 자면 잠이 오지 않으며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밤에 잘 주무십니까?

하나님께서 안식하라고 평안히 쉬라고 주신 축복의 밤, 비록 화가 날지라도 밤에 만큼은 화를 풀고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셋째, 노동의 변화입니다.(28절)“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소극적으로 남의 것을 도둑질 하지 말라는 교훈이지만, 적극적으로는 “땀 흘려 일하며, 선한 일을 하라”는 교훈입니다.

 

누가복음 19장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기 전, 그는 스스로 남을 것을 착취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만난 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눅19:8)“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수전노로 살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물질의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삭개오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가난한 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가난한 자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비행기가 이륙 후 어느 지점까지 가게 되면 연료가 부족해 다시 출발지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나게 됩니다. 이 지점을 “귀환 불능지점” 이라 합니다. 우리가 세운 계획, 진로, 공부, 사업 등은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처음부터 “귀환이 불가능”합니다.

 

금년 2018년, 한 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먼저 우리가 버릴 것이 있습니다.

1)하나님 없이 살았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2)낭비했던 삶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취할 것이 있습니다. 1)언어가 변화 되어야 합니다. 2)감정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3)노동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2018년은 용기와 덕을 세우는 말과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며, 우리에게 맡겨준 것에 대해 땀 흘려 일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1. 7(신년주일)

2018 새해가 밝아 왔습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 중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지혜를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사람은 옛 것보다는 새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 새 결심, 새로운 목표를 가져 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새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시인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를 끼울 구멍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이는 모든 일의 첫 시작과 출발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2018년 첫 주일, “버릴 것과 새롭게 취할 것”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내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격을 낳고, 성격은 그 사람의 삶이 된다.”라고 하였고, 우리말에도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처럼 생각과 습관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22절)“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섞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과거 하나님 없이 욕심을 따라 살았던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 없는 삶에 대해 17절-19절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17)“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 “허망한 것”이란 “가치 없는 삶”을 말합니다. “허망”이란 말에서 “허무주의(Nihilism)”란 철학이 나왔습니다.

 

“허무주의”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공허한 상태”를 말하는데, “허무주의” 대표적 철학자가 “니체”인데, 그는 “신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허무하며 가치 없다.”라는 생각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생각에서 시작 됩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없으면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공허함을 오락, 취미, 술과 마약, 욕심과 욕구로 채우고자 합니다.

 

서방교회 4대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가 하나님 없이 살았던 과거의 삶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16세 여자에게 임신을 시켜 아들을 낳았고, 반항 심리로 친구들과 어울려 도적질을 일삼았으며, 이단 종교 마니교의 혼합종교에 빠져들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만난 후에 “사람의 마음에 있는 공허함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채울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없기 때문입니다. (고후3:5)“우리가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이 허무하게 됩니다. 공허함의 해답은 하나님이십니다.

 

(19)“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방탕”이란 “헛되게 소모한다.”는 뜻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달란트를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을 말하며, “방임”이란 내버려 두는 것을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 주름이 생기는 것, 피부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피부에 좋은 음식, 근육에 좋은 음식 등, 몸을 보호하고 관리하는데 많은 투자를 하며, 거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이렇게 예쁘게 다듬어서 무엇을 하려고 합니까?

모세는 (시90: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각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모세의 계산대로 라면, 40살의 인생 시계는 6시를 가리키며, 60살의 인생시계는 9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60살은 15분 정도 인생이 남아 있다는 말이 됩니다. 15분이면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하고 세수하면 딱 맞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유효기간을 정해 놓았습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도 고철소리보다 못할 때가 있으며,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힘센 다리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때가 있으며, 밝은 미소와 다정한 모습도 주름으로 채워질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낭비하고, 헛된 곳에 사용할 여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롬6:12)“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스도인은 마음도 바뀌어야 하지만, 몸의 용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몸과 마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 달란트를 낭비하지 말고 바르게 사용할 수 있길 바랍니다.

 

  1. 내가 새롭게 취할 것이 무엇인가?

(24절)“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 표현법은 마치 낡은 벗고, 새 옷을 입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옷은 사람의 역할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을 통해 그 사람의 신분과 역할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옷은 중요합니다.

 

군인이나 경찰관은 그들이 입은 제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입는 옷을 통해서 법관과 죄수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바뀌면 옷도 바뀝니다. 군인이나 경찰관이 민간인이 되면 옷을 바꾸어 입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신분이 되었기에 새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취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25절)“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첫째, 우리가 새롭게 취해야 할 것은 이웃에 대한 말의 변화입니다. 성경에서 말은 추상이 아니고 동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삭에게 에서와 야곱,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남인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창27:26-29)“그의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너는 네 형제의 주가 되고…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이 사실을 알게 된 에서는(창27:34,36)“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내게도 축복하소서! 야곱이 네 복을 빼앗았나이다. 내가 그를 죽이겠나이다.” 에서가 왜 통곡하며, 야곱을 죽이려 하였습니까?

 

야곱이 에서의 재산을 가로챘습니까? 아닙니다. 말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말, 아버지가 축복한 기도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기도와 아버지의 말은 실제였고, 보증 수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의 말대로 야곱이 그대로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부모의 말 한마디, 부모의 축복기도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아야합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부모를 외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외면하는 것은 축복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며,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저주도 감수하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상처를 주는 말 한마디가 평생에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격려의 말, 위로의 말 한 마디는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나를 위해 축복을 빌어주는 말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금년에는 이웃에 대하여 덕을 세우는 말, 유익한 말을 사용하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둘째, 감정의 변화입니다. 인제대학에서 7천 명을 대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반응이 무엇인가?” 1위가 “분노”라고 답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한 분노가 우발적인 범죄와 폭력, 다양한 범죄로 연결되는 경우가 50%가 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실제 요즘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살인, 상해, 방화, 폭력 등의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데, 헤어진 애인이 미워 자동차로 들이받고, 부부가 다투고 홧김에 불을 지르기도 하며, 부모에게 야단을 맞았다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기고, 경적을 울렸다고 앞으로 나가 급정거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도 하며, 미국에서는 걸핏하면 엽총을 발사하여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가장 먼저 사람을 죽인 사람이 가인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동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4:5)“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8절)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26절)“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은 바울이 (시4:4)“너희는 떨며 범죄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인용한 말씀으로 “분은 낼 수 있다. 그러나 죄는 짓지 말라.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풀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떤다.”란 “분노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직장과 일터, 많은 사람과 부딪쳐 화를 당하기도 하고, 모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 분노를 풀지 않고 잠을 잘 때,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밤이란 쉬는 시간이며 잠을 자는 시간인데, 화를 품고 자면 잠이 오지 않으며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밤에 잘 주무십니까?

하나님께서 안식하라고 평안히 쉬라고 주신 축복의 밤, 비록 화가 날지라도 밤에 만큼은 화를 풀고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셋째, 노동의 변화입니다.(28절)“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소극적으로 남의 것을 도둑질 하지 말라는 교훈이지만, 적극적으로는 “땀 흘려 일하며, 선한 일을 하라”는 교훈입니다.

 

누가복음 19장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기 전, 그는 스스로 남을 것을 착취하여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만난 후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눅19:8)“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수전노로 살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물질의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삭개오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가난한 자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가난한 자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비행기가 이륙 후 어느 지점까지 가게 되면 연료가 부족해 다시 출발지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지나게 됩니다. 이 지점을 “귀환 불능지점” 이라 합니다. 우리가 세운 계획, 진로, 공부, 사업 등은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처음부터 “귀환이 불가능”합니다.

 

금년 2018년, 한 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먼저 우리가 버릴 것이 있습니다.

1)하나님 없이 살았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2)낭비했던 삶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취할 것이 있습니다. 1)언어가 변화 되어야 합니다. 2)감정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3)노동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2018년은 용기와 덕을 세우는 말과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며, 우리에게 맡겨준 것에 대해 땀 흘려 일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