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

성경 : 요한복음 20 : 30-31 /     2017.12.10.(성서주일)

세계 언론은 지난 1천 년 동안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발명품으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로 선정했습니다. 그가 만든 인쇄기로 가장 먼저 성경을 출판했고, 출판된 성경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게 했을 뿐 아니라, 잠자고 있던 중세 유럽인들의 신앙을 일깨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20: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구원자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 함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을 자기중심으로 억지로 풀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벧후3:16)“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오늘은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나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 말라.
신학자 스프 라울은 “성경을 아는 지식”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여자 청년이 결혼을 앞두고 기도했지만, 확실한 응답이 없자,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소위 “손가락으로 성경 찍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로 했습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찍은 성경은 스가랴 9장 9절이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본문은 스가랴 선지자가 장차 오실 메시아가 나귀를 타신 것을 예언한 말씀을, 여자 청년은 이 성경구절을 “왕자가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 믿고, 왕자와 결혼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어떤 가난한 소년은 학교에 다닐 돈도 없었고, 공장에서 일할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사진기술을 배워 사진작가가 되려고 사진기술에 관한 책을 서점에 주문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진기술에 대한 책이 아닌 발성법에 관한 책이 배송되어 왔습니다. 소년을 책을 보고 실망이 컸습니다. 그러다가 소년은 하는 수 없이 책을 가지고, 발성법을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음악책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차리맥카시”입니다.
(잠16:3)“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 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하나님은 실수를 통해서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지만 그렇다고 성경을 자기 생각대로, 느낀 대로, 성경을 끼어 맞추는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무척 고민하며 기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번성과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참다못해 그는(창15:2)“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창15:8)“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싶어 질문하였지만 대답이 없자,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나이 많은 내가 하루 빨리 아이를 낳으려면, 나이 많은 아내 사라보다는 젊은 여자 하갈을 통해 자녀를 낳는 것이 낳겠다고 생각하고 하갈을 후처로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후사로 삼기를 원합니다.”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아니고, 네 아내 사라의 몸을 통해서 아들을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영어로 “Testament”라고 하는데, 라틴어 “Testamentum”에서 유래한 것으로 “계약”,“약속”이란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한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근거해서 믿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을 떠나면 샤머니즘과 철학, 괴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에 뿌리를 두어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세워진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 성경을 단편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전체를 보고 이해하라.
저는 주로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듣습니다. 성경 읽기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창세기부터 읽을 수 있고 신약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 권의 책이기 때문에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편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편지를 받고 부분적으로 읽는 사람이 없듯, 성경도 부분이 아닌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좋아 하는 “레고”나 “퍼즐”은 하나도 남김없이 짝을 맞출 때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처럼, 성경도 전체를 보아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보지 못하면,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네 소경이 코끼리를 본 것과 같이 성경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전체를 보고 이해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좋아하는 구절을 떼어 유리하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보다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매주일 설교준비에 부담을 느낀 어떤 목사님이 마태복음 10:19-20절을 읽다가 무릎을 딱 쳤습니다. (마10:19)“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목사님은 설교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앞에 있는 말씀 (18절)“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은 핍박을 당할 때 성령께서 필요한 말씀을 주시므로 염려 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성경은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는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만, 설교준비하지 않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은 아닙니다.

성경을 이해할 때 몇 가지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문맥을 따라 해석해야 합니다. 이단들이 하는 수법으로, 성경의 앞뒤를 떼어 버리고 해석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없다.”는 구절이 4번 나옵니다. 그러나 앞부분에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해야 하는데, 역사적인 해석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과거 상황을 무시하고 지금의 사고로 해석하면 충돌이 됩니다. 열왕기하 4장, 엘리사선지자가 죽은 아이를 고칠 때 “자기 입을 아이 입에, 자기 눈을 아이의 눈에 자기 손을 아이의 손에 올려서 고쳤습니다.” 오늘날 이런 방식으로 병을 고친다고 하면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세 번째 방법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성경만큼 정확하고 바른 것이 없습니다. 한국에 많은 목사님들은 단 지파가 한국에 와서 단군이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성경을 제쳐 두고, 추론과 경험한 것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경전입니다. 타종교의 경전은 기독교의 성경과 같은 개념을 동일하지 않습니다. 예로, 해인사의 8만 대장경은 불교의 경전이지만, 이 경전을 다 아는 사람이 없고 읽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항상 창고에 보관해 놓고 있습니다. 유교 사서삼경이나, 회교의 코란도 그 종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기독교는 성경이 절대적이며 성경을 빼 버리면 기독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승려들이 믿는 불교와 일반 신도가 믿는 불교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믿었던 하나님과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동일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동일하게 계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1: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므로 복된 성도들이 됩시다.

3. 성경을 저자와 원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라.
성경은 수많은 인물과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원저자인 성령님의 의도를 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모세 오경은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원 저자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벧후1:21)“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헨리 나우헨의 저서 “상처 입은 치유자”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마을에 한 청년이 적을 피해 도망쳐 오자 마을 사람들은 그를 숨겨주었습니다. 얼마 후 소년을 찾는 군인들이 몰려와 만약 내일 아침까지 청년을 내 놓지 않으면 마을에 불태우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지역에 있는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마을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서 눈에 뻔득 들어온 성경은 (요11: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목사님은 이 성경 구절이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 마을을 위해 주신 말씀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성경을 본 후 숨겨둔 소년을 군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 대 제사장 가야바가 한 말입니다. 가야바는 로마에 의해 유대민족 전체가 망하는 것보다 예수 한 사람이 죽는 편이 낫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가야바는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죽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가야바의 말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성경 저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현재 상황에 유리하도록 적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목사님이 성경 저자의 의도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이 성경을 마을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 저자들은 분명한 의도를 갖고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오늘 본문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성경을 내 생각에 맞추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거나, 성경 문맥을 무시하고 성경을 단편적으로 이용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저자와 원 저자인 성령님의 계획과 의도를 바르게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은 과거의 사건을 아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말씀을 통해서 현재 나에게 주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경은 과거에 기록된 말씀이지만, 말씀을 기록하신 성령님은 지금도 살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현재의 책이고,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영향력을 잃게 된 때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루터와 종교 개혁자들의 종교개혁은 “말씀이 가라고 하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머물라는 곳에 머물라.”고 말씀 중심의 삶을 회복하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