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8일 주일 설교 : 우리가 맡은 직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성경 : 딤후 2 : 1 – 6

2016년 세계 최고 브랜드 1위로 선정된 기업은 애플, 2위 구글, 3위 마이크로 소프트, 4위 코카콜라, 5위가 페이스 북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중 구글은 10가지 경영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추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둘째,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셋째, 느린 것보다 빠른 것이 낫다. 여섯째,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 일곱째 세상에는 무한한 정보가 존재한다. 아홉째 정장을 입지 않아도 업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다. 열 번째 위대하다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그에 비해 오늘 성경은 교회가 2천년 동안 박해와 시련 가운데서 무너지지 않고 지속해 온 것은“충성된 사람, 즉 충성된 직분 자들”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직분을 맡은 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1. 직분자는 군인과 같은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3-4)

바울은 그가 쓴 서신에서 군사적인 용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 “전신 갑주를 취하라”,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오늘 본문 “예수의 좋은 병사”, “병사로 복무 하는 자” 등 수없이 많습니다. 바울은 군대가 절실한 시대에 살았고, 군대가 약하거나 없을 때, 찾아오는 불행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많은 장군과 군인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유다 족장인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최대 격전지인 헤브론전투에 나가도록 자원하였습니다. (수14:11)“내 나의 팔십 오세로되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 즉…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이때 갈렙의 나이는 85세였습니다.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걸핏하면 나이가 많아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갈렙은 갈렙의 고백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갈렙이 희생을 감수하고 전쟁에 나간 덕분에 (수14:15)“그 땅에 전쟁이 그쳤고” 헤브론이 유다 땅이 되었고,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하여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군인의 사명이 무엇인가? 한국에 군인복무규율 제4조 2항에 “국군의 사명”이란 것이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참 많이 외웠습니다. “국군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보전하고 국토를 방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한다.”

군인에게 요구되는 것이 많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책임감입니다. 책임감이 무엇입니까?

(삼상17:34-35)“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다윗은 양 한 마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행13:22)“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우리는 기관과 부서, 구역에서, 맡은 직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합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책임감을 갖고 일하려면 반드시 겪어야 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희생입니다.

 

지난 2016년 한국에서 5명의 군인이 참 군인 상을 수상했는데, 김경렬 상병은 지난 7월 폭우로 한탄강 수문을 개방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지뢰가 폭발해 우측 발이 잃었습니다. 유성재 상사는 생명이 위독했던 동료를 간호한 일, 5사람 모두 자신을 희생한 것 때문에 상을 받았습니다.

(3절)“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사람들이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견뎌 낸 나무로 집을 지듯 주님도 희생하며 충성된 자를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맡기길 원하십니다. 이 때문에 주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습니다. 군인과 같이 희생정신으로 우리가 맡은 직분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직분자는 경주자와 같이 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5)

고대 헬라와 로마는 운동경기에 열광적이었고 올림픽은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운동선수가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5절)“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경기”는 마라톤을 뜻합니다.

 

마라톤의 특징은 혼자서 달려야 합니다.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며, 최고의 인내가 요구되는 경기입니다. 운동선수는 무엇보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잠과 음식과의 싸움, 게으름과의 싸움, 고난과의 싸움 등 많은 장애요소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마라톤을 올림픽의 꽃이라 부릅니다. 마라톤 우승자는 다른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과 달리 모든 관중이 모여 있는 주 경기장에서 상을 받습니다.

 

사람에게 동기부여가 중요합니다. 어떤 기자가 조련사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동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힘이 무엇입니까?” “동물을 보상해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조련사가 보상을 해준 동물은 결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조련사가 동물을 훈련하면서 보상해 주지 않으면 동물은 속았다고 생각하고, 조련사의 말을 듣지 않거나 불신한다는 것입니다.

 

(고전 9:7)“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딤전 3:13)“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아름다운 지위”란 “계단을 오르는 걸음”이란 뜻으로, 한 단계씩 나아지는 것을 말하며, “믿음의 담력”이란 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말합니다.

 

제가 가진 직분은 저를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한 “목사”라는 직분 때문에 제 인생을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내할 수 있고, 담대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능력 있게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집사, 권사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돈 많은 어떤 사장 부인을 향해 “아줌마”라고 부르자 버럭 화를 내면서 “나는 아줌마가 아니야” “나는 사장 부인이야”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사의 직분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별것 어닌 것으로 생각해서야 되겠습니까?

 

히브리기자는 11장에서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11:4-6)“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애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노아는 믿음으로 120년 동안 인내하며 방주를 만들었다.” 직분을 감당하는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인내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경기자입니다. 운동선수가 올림픽 출전을 위해 훈련과 고난을 극복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신앙의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신앙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딤전4:8)“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최후의 승리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경주자입니다.

 

  1. 직분자는 농부와 같이 부지런해야 합니다.(6)

(6절)“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성경에서 농부란 단어를 사용할 때 주는 교훈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농부는 한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동시에 “농부는 수고한 대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놀랍게도 마귀는 부흥을 막으려고 노력합니다. “음식준비하기 어렵다”, “교회가 멀다” “주차하기가 힘들다.” “사랑이 없다” 원망과 불평만 한다면 마귀만 좋은 일 시킵니다. 교회가 마음 맞는 사람끼리 교제나 하고, 희로애락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크게 잘 못 생각한 것입니다.

 

초창기 한국교회에 직분은 힘들었습니다. 직분을 맡는 다는 것은 교회 모든 살림살이와 굳은 일을 도맡아 한다는 그런 의미로 통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적으로 겸손과 순종, 섬김, 기도의 생활, 교인들을 돌보며, 모든 성도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직분이 감투처럼 생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 직분자는 사회에서도 제법 알아주며, 직분이 신분을 올려 주는 역할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직분을 영적인 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에 희생에 관한 두 비유는 소금과 밀알입니다. 주님께서 (마5:13)“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라고 하신 교훈은 바로 “소금과 같이 자신을 희생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밀알입니다. (요12:24)“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어떤 밀알도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썩어지는 씨앗의 방법으로 복음이 우리에게 전파되어 왔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십자가에서 희생이 됨으로 12제자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12제들이 희생되어 120명의 열매를 맺혔고, 120명이 예루살렘 교회는 만들었고,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 교회를 낳았고, 안디옥 교회의 희생을 통해 소아시아와 유럽, 로마와 지중해 연안에 교회를 낳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교회는 미국교회를, 미국교회는 한국과 전 세계의 교회를 세우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군인과 같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상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준 직분을 잘 감당하므로 면류관을 받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