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8일 주일 설교 : 우리 동네에서 나가라

성경 : 마가복음 5 :15-20  / 2016.12.18

외국에 살면서 가장 큰 충격적인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가라”라는 말입니다. “나가라”는 말은 “추방을 뜻하는 명령어”입니다. 제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말은 저희들이 제 2성전 입당한 후에 허가가 나오지 않을 상태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시청에서 “한 달 안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거라사인은 집단적으로 주님을 향하여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거라사인들은 주님께서 군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준일로 인해 “우리 동네에서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결국 거라사인들에게 의해 추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거라사인들이 왜 예수님을 쫒아냈는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주님은 귀신들린 자를 고쳐준 일로 인해 추방을 당했습니다.

(20절) 거라사는 데가볼리에 속한 지역으로, “열 개의 도시 (Deca, Polis)”란 말로 알렉산더 대왕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운 10개 도시 중 하나를 뜻합니다. 데가볼리는 유대인은 살지 않은 곳으로, 헬라인만이 사는 곳으로, 그들은 유대인이 아주 싫어하는 돼지를 많이 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데가볼리 지역과 사람들을 혐오하였고, 근처에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데가볼리에 “의도적으로” 오셨습니다. 앞 절에서 주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건너오는 동안 큰 광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주님께서 바다를 건너 거라사에 오신 이유는 딱 한 가지, 군대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군대 귀신의 상태가 어떠합니까? (3-5절)무덤 사이에 살았고, 쇠고랑과 쇠사슬에 매여 있었고,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밤낮에 소리를 지르며, 자기 몸을 헤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였고, 마을로부터 격리되어 무덤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눅8:27)“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사람이 귀신들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 상실함은 물론, “악한 영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비극과 불행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이런 비참함을 알고 계셨기에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거라사까지 오셨어 귀신 들려 고통 받는 자를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라사인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15절)“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7절)“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귀신들려 고생하는 자가 고침을 받아 정신이 온전하였을 때 함께 기뻐하지 못하였고, 귀신을 고쳐준 주님마저 싫어하여 “이 마을에서 떠나가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했지만, 그의 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눅15:28)“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는 고통을 함께 잘 나누는 편입니다. 한국 세월호가 침몰 된지 2년 반이 넘었지만,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고통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반면, 타인의 즐거움에는 인색한 편입니다.

특히 남이 성공하고, 잘되는 것, 높은 자리에 올라 간 것, 남이 상 받는 것에 대하여 박수 쳐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같이 남이 잘되는 일에 시기하기가 쉽습니다.

오늘 성경은 거라사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자들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인 이유는 바로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롬12:15)“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이웃이 형통하게 되는 것, 우리 이웃이 잘되고, 잘 하는 것에 대하여 격려하며 박수쳐 줄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2. 주님께서 물질적인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하여 추방하였습니다.

거라사인들과 고침을 받은 자의 생각이 너무 달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이 마을에서 나가라”고 했지만, 고침을 받은 사람은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습니다. (17-18)“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돼지 2천 마리를 잃어버린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을 해도 아주 큰돈이며, 적지 않는 손해가 발생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거라사인들은 물질적인 손해 때문에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고, 더 큰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껏 거라사인들은 귀신 들린 사람으로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그가 쇠사슬을 끊고 마을로 내려 왔을 때 아무도 그를 제어하지 못하였습니다. “귀신들린 자가 언제 또 마을에 내려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며 불안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침을 받음으로 거라사 지방은 평안이 찾아왔고, 모든 불안이 제거되었습니다.

 

누가 가장 기뻐하고 반가워해야 합니까? 거라사 지방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거라사지방 사람들은 귀신들린 사람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것을 감사하고 기뻐하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없습니다. 반면, 저와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된 것보다 더 감사할 제목이 없습니다. (롬8:2)“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것보다 더 큰 보화가 없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가 가진 자산이 가장 값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빌3:8)“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해로 여긴다.”라는 말은 성경에 두 번 나오는 단어로, (행27:10,17)“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처음 배에 실은 짐과 화물들은 선주와 상인 모두에게 유익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풍랑을 만났을 때 화물은 모든 사람에게 해가 되었기에 모든 화물을 버리게 된 것입니다.

전도자는(전5:13)“소유주가 재물을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 큰 폐단이라고 했습니다. 롯의 처가 소돔고모라 성에 머물 때까지 재물은 유익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그 성이 멸망당할 때 그 재물과 소유는 그에게 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귀중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그리스도와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귀중한 자산이 아니라 해가 될 뿐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마16:2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주님이 행하신 일을 잘 몰랐기에 추방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유대 땅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가 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헤롯 왕을 포함, 예루살렘 백성들이 소동하였습니다. (마2:3)“헤롯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소동”은 “뒤흔들리다.”라는 뜻입니다. 누구보다 헤롯이 크게 놀랐습니다. “내가 유대인의 왕인데! 왕이 태어났다고! 이게 무슨 소리냐?”

 

헤롯은 태어난 예수가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자”라고 생각하고, 두 살 아래에 있는 모든 사내아기를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과 예루살렘 백성들은 예수그리스도가 “죄에서 구원할 자” “죄의 권세를 이기고 사탄을 통치하는 왕”으로 오신 사실을 몰랐습니다.

 

요한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예수님을 잘 몰라 영접하지 않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요1:10-11)“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마태는(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찬송가 96장 4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와 온 세상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여 심판하실 주님 되고 우리 영광되시네.”

 

거라사지방 사람들 역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기에 이 동네에서 나가라고 추방한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기꺼이 그곳을 떠났습니다. (21절)“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이후 주님은 다시 거라사 지방을 찾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마10:14)“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 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바울도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훼방을 받자 (행18:6)“바울이 옷에 먼지를 떨어 가로대 너희 피가 너희에게도 돌아갈 것이요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고 했습니다.

 

강줄기를 따라 흘러가는 물을 막으면, 물은 넘쳐 다른 곳으로 흘러가듯, 복음 또한 막으면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 복음을 받지 아니하고 박해했을 때 그 복음은 이방인에게로 넘어간 것이 성경원리입니다.

 

성도여러분! 복음이 값싼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값비싼 대가를 지불함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마7:6)“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웃과 함께 기쁨과 즐거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한 영혼이 회복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평안과 기쁨을 주기 위해 오신 주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