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4일(주일), 설교 : 물이 포도주로 변한 표적의 의미

성경 : 요한복음 2 : 1-12 /  2016.12. 4

사도요한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얼마나 많은 기적을 행하셨는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21:25)“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많은 행적들 가운데 요한복음에 7개만 선별하여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행하신 수많은 이적들 가운데, 요한은 오늘 본문에 기록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표적을 가장 첫 번째 기록했습니다.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 요한이 예수님께서 첫 번째 행한, “물이 포도주로 변한 표적”의 의미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목수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된 표적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의 목적”을 (11절)“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한은 이 기적을 “처음”이라고 했는데, “처음”은 순서보다 “근원, 근본”이란 뜻이 있습니다.

즉 “물로 포도주로 만든 표적”은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가장 “근원이 되는 사건”이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표적을 행하신 이유는 바로 예수를 믿도록 표적을 행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였지만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본문 외에 기적을 통해 예수를 믿은 사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5병2어의 기적”입니다. “5병 2어의 표적”이 “양을 바꾸신 기적”이라면, 오늘 본문 “물로 포도주가 된 기적은 “질을 바꾸신 표적”이라 할 만합니다.

 

예수님께서 5병2어의 기적을 베푼 후에 백성들의 반응은 (요6:14)“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리고 오늘 본문에 기적을 행하신 후에 나타난 반응은 (11절)“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믿음은 기적을 봄으로 믿어지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수많은 기적을 보았지만, 믿음에 실패하였습니다. 요한은 1장에서 예수님께서 참 생명과 빛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믿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11)“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예수님께서 첫 공 사역을 때에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읽고, 전하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눅4:22)“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 나사렛 시골 사람”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 기적을 베푼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 구원자”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 적어도 세 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이라 합니다. (마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둘째,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행4: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도록 “아무 것이나 믿어도 상관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셋째는 주님이 심판주로 다시 오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종말관은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하여 주님의 재림으로 세상의 역사는 끝이 난다는 믿음입니다.

 

기독교는 신비주의가 아니지만,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비를 모두 제거한다면 우리가 가진 신앙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등은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 어린 아기로 오신 사건 또한 이적 중에 이적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확실히 믿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1. 제자들의 마음을 변화 시킨 표적입니다.

요한복음은 변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장에는 베드로와 나다나엘이 주님의 제자로 변화되었고, 3장에는 니고데모가, 4장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요한은 오늘 본문의 이적을 통해 예수님은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1절)“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이 표적을 통해 12제자들이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 자처했던 베드로에 대해 “레슬릭 크릭”은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 같은 사람”이라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같이 참으라면 성질부리고, 그리스도를 인정해야 할 때 부인하여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성질이 겁하고 불같았기에 붙여준 이름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불같은 성격이나, 1등이 되고자 하는 콤플렉스와 경쟁심이 강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이 표적을 보고 주님을 믿었습니다. 어쩌면 이 표적은 제자들을 위하여 행하신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벤허란 영화는 왈레스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왈레스가 이 작품을 쓴 동기는 그의 친구 “봅 잉거졸”이 예수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소설을 쓰면 베스트셀러가 되어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말을 듣고, 예수를 반대하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성경을 읽다가 왈레스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이 변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변할 수 있습니다. 노예 매매 상인으로, 가장 악한 일을 일삼던 존 뉴턴이 예수 믿고 변화된 다음,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랄 것인데, 첫째는 천국에 꼭 들어와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놀라고, 둘째는 결코 천국에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그리고 셋째는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것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주안에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주님 안에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화시킨 표적입니다.

오늘 본문에 “표적”이란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표적과 기적 혹은 이적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기적이나 이적”은 “깜짝 놀라다”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놀라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고, 태양이 머무는 것을 볼 때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뒤나미스” 영어로 “다이나믹”으로 “능력”이라 번역되어 있습니다. 기적과 이적은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기적과 이적을 “능력”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표적”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세메이온”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의미, 상징”이란 뜻입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해 주님의 뜻을 나타내려는 것이 기적과 이적이라면, 표적은 사건 배후에 있는 의미를 통해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의미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병을 주셨을까? 하나님이 우리가정에 시련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사건을 통해 의미를 찾을 때, 기적이 일어난 이후에 나타나는 반응이 표적입니다. 이런 표적은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 표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것은 분명한 기적과 이적입니다. 그러나 이 기적을 통해 나타난 반응이 곧 표적입니다. (11절)“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주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은 결혼식장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한 것이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함이 아니라,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려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물로 포도주로 만든 표적은 변화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던 것보다 더 큰 변화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많은 변화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믿음의 변화보다 더 큰 변화는 없습니다.

 

물의 화학기호는 H20입니다. 반면, 포도주는 C6H12O6입니다. 물은 수소 2, 산소 1로 되어 있는 반면, 포도주는 400가지 이상의 합성물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물로 포도주를 절대 만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삶이 이라고 비유한다면, 내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포도주로 변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이 스스로 포도주가 될 수 없듯이, 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기적이며, 이적이란 것입니다.

 

“믿음”이란 기적을 경험한 저와 여러분! 어떻게 변화되어야 합니까?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통해 물은 맛이 변화되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통해서 가치가 바뀌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통해서 존재가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와 가치, 존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을 만남으로, 옛 사람이 새사람으로 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삶의 방식, 태도와 생각과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동시에 추구하는 가치관, 좋아하는 관심도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가운데 첫 번째로 행한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은 제자들이 목수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제자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킨 표적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서 “물이 포도가 되는 표적”이 계속 일어 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