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30일(주일) 설교 : 너희 성전이 주님의 몸이 되게 하라.

성경 : 말라기 2 :17-3 : 6

제목 : 너희 성전이 주님의 몸이 되게 하라. 2016.10.30.(종교개혁)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했던 당시, 백성들은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성전을 완공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황폐한 데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을 짓기 위해 헌신하였으니 복을 주시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들은 성전 봉헌식을 할 때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큰 영광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왕상8:10-11)“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한 후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 성전에 가득하게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선지자, 제사장과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고, “하나님 살아 계시는구나! 우리가 성전을 지어 봉헌했더니 하나님이 이 자리에 임재 하셨구나!” 감격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성전을 지어 봉헌할 때는 구름이나 안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바쳤는데, 어찌 하나님은 응답하지지 않는가?”라며 실망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면서 뭐라 했느냐하면 (17절)“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즉,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무시당하지 않느냐?”라고 빈정거렸습니다. 이런 불신앙적인 태도에 대한 말라기의 답변을 통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너희 성전이 주님의 몸이 되게 하라.

말라기 시대 사람들은 저들이 성전을 재건한 후 공로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희생했는데,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백성을 향해 학개 선지자는 (학개 2:18-19)“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성전을 짓기 전에는 너희들의 창고에 곡식 종자기 있었느냐?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모든 곡식에 열매를 맞지 못했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제부터는 너희 창고가 가득 찰 것이며, 너희의 밭에 풍성한 열매들이 맺히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의 의도와 달리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은 건물 성전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건물 성전을 지어 놓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인 성전을 더럽힌 증거를 여섯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5절)“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 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성경은 우리의 몸이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전3:16-17)“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백성들이 주님의 성전인 자신의 몸을 더럽힌 것은 권모입니다. “권모술수”라고도 하는데, 권모는 힘과 권력, 능력을 잘못되게 사용하여 자기 이익이나 목적달성을 달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인 것이나, 형을 속인 것이 바로 술수입니다. 술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간음입니다. 육체적인 간음도 잘못이지만, 성도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도 간음이라 하였습니다.

 

셋째 거짓 맹세와 넷째, 약자를 압제하는 것입니다. (약1:27)“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다섯째,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 뜻입니다.

  1. 너희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차례에 걸쳐 성전을 지었습니다. 첫 번째, 솔로몬 성전, 두 번째가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 그리고 헤롯이 유대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B. C. 20년경에 착공하여 A.D.64년경에 완공한 헤롯 성전입니다. 유대인과 제자들조차 예수님에게 성전의 화려함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마24:2)“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말라기는 성전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성전을 깨끗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3절)“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말라기의 예언대로 주님은 두 번 성전청결을 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한번 하셨고, 그리고 공생애 마지막 주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막11:17)“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고 하셨습니다.

 

성전 안에는 제물을 파는 사람들과 그것을 사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팔고 사면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성전 안에는 하나님께 제사하는 마음보다는 인간의 이기주의가 우선되었습니다. 주님은 이기심으로 채워진 성전이 본래 모습인 “기도하는 집”이 되도록 성전에서 돈 바꾸며, 장사하는 자들을 채찍을 휘두르시고 그들을 성전에서 좇아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습니까? (말1:8)“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 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한마디로, 이들은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말1: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그들은 성전은 잘 지었지만 성전에서 드린 제사는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말라기는 (2:17)“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저들은 겉으로는 성전을 지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 마음대로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겉과 속이 다르게 예수 믿는 것입니다. 겉으론 성전을 지었다고 당당해 하면서, 실제론 그렇지 못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백성들이 각성하고 하나님께서 돌아오지 않고, 변화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말2:3)“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똥을 얼굴에 바른다.” “끝장” 이란 말씀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교회와 성도를 향해 “개독교” 라고 말합니다. 끝장난 것 아닙니까?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그래도 10년 전 쯤 만해도 목사가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2:9)“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마5: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우리는 맛 잃은 소금이 되지 않도록 힘서야 할 것입니다.

 

  1. 너희 성전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게 하라.

오늘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지 499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중세의 교회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종교개혁운동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5가지 슬로건을 갖고 교회를 개혁하였습니다.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루터와 종교 개혁자들의 종교개혁은 말씀 회복 운동이었습니다. “말씀이 가라고 하는 곳에 가고 말씀이 머물라고 하는 곳에 머물라” 개혁자들의 정신은 철저하게 말씀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독일 사람들아! 나는 교황청으로부터 속죄표를 가지고 온 사신이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친척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 있다. 속죄표를 구입하는 순간 불쌍한 영혼들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교황청에서 고용한 웅변가, 테첼이 독일과 유럽 지역을 다니며 면죄부 판매를 위해 설교한 말입니다. 그의 유창한 웅변을 들고 많은 사람들이 면죄부를 구입하였습니다.

 

루터는 이런 기가 막힌 사기꾼의 행동을 목격한 루터는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비텐베르크 교회당 입구에 95개 조항을 붙이고 잘못을 돌이키도록 촉구했습니다. 종교개혁은 루터 이전과 이후에도 있었지만, 루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의 범위가 가장 컸고, 영향력이 컸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2천년 기독교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짧은 120년 동안 무당종교와 불교와 유교의 박해를 이겨냈습니다. 또한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절하며, 공산주의를 순교로 대처했습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지금은 영적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켰던 다섯 가지 슬로건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선지자와 주님은 주님의 몸인 성전이 부패한 것에 대하여 채찍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집인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장사하는 집으로 바뀌어, 인간의 탐욕과 욕심에 대하여 채찍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은 교회와 자기 백성에 대하여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집도 수리 하지 않으면 물이 세기 마련이며, 차도 정비하지 않으면, 고장이 납니다. 우리의 믿음도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딤전4:5)“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우리의 믿음을 점검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날마다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여 능력 있는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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